제가 두 사람을 만나러 갈 때마다 에릭은 우물쭈물하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런 망할 놈. 미안해하지 마.’라고 말해요.

그래도 에릭은 제 말을 믿지 않더군요.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상관없어.’

-조지 헤리슨, 1977년 『크로대디』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라던 처용處容을 연상케 하는 조지 해리슨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명언에서 알 수 있듯 당사자들의 입장이야말로 ‘뷸륜’의 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준점이다. 그래서 조지 해리슨과 그의 아내였던 패티 보이드 그리고 조지 해리슨의 절친한 벗 에릭 클랩튼의 ‘관계’는 각자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버전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들에게서 완벽히 자유로운 대중들은 당사자들은 차치하고 그들의 사랑을 내키는 대로 주물럭대는 특권을 누린다. 에릭 클랩튼과 패티 보이드의 자서전 그리고 영화 <조지 해리슨 : 물질세계에서의 삶>을 보면 에릭 클랩튼은 절친의 아내를 뺏어간 천하의 개자식도 아니요, 패티 보이드 역시 욕정에 눈이 멀어 남편을 떠난 게 아니고 조지 해리슨 역시 쿨한 남자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남의 사랑에 대해서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존재다.

누군가는 우리를 채워줘야 마땅하지 않겠나

불륜에 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오죽했으면 <현장고발 치터스>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겠나. 이미 국내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도 방영된 바 있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씨가 자신의 책 『보통의 존재』에 서술한 부분을 읽어보자.

의뢰인은 5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흑인 노인네로 다리를 절었고 아마도 일용직 노동자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가 힘들게 일하며 돌봐온 그의 여인은 예뻤지만 눈이 사시인 여자였다. 둘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양쪽 다 핸디캡이 있는 처지였으므로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며 커플이 되었음은 짐작해볼 수 있는 스토리였다. 제작진은 추적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륜은 사실로 밝혀졌다. (중략) 남자는 상처받았으되 무기력하게 슬퍼하고 여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 (중략) 내가 정말 슬펐던 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럴 수 있냐고 다그치는 진행자에게 던지는 그 여자의 한마디였다. “자기가 채워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말할 수가 없었어요.”

<현장고발 치터스>는 리얼리티라는 탈을 쓰고 시청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채워준다. 실제 처벌하기에는 복잡한 법적 절차가 필요한 ‘불륜’을 <테이큰>의 리암 니슨처럼 속 시원히 처리해주니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하지만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현장고발 치터스>가 밝혀내는 것은 ‘파편’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파편을 선과 악을 가르는 결정적인 증거물 ‘제1호’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선善 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할 때 잔혹한 본성이 나타난다. 이슬람 문화권의 일부 나라에서 간통을 처벌하는 땅에 파묻고 돌을 던지는-남성은 허리 까지 묻고, 여성은 목까지 묻는-방식은 이를 증명한다.

<현장고발 치터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유색인종, 이민자, 중하위 계층에 속한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일부일처제가 명문화된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은 사실혼에 기반한 오직 한 명의 상대에게서 모든 것을 충족 받아야 하며 반대로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힘에 부친다면-특정 계층에 더욱 힘들다면- 사회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부부가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 일주일에 과연 며칠이나 되는가. 자녀들을 믿고 맡겨놓고 연애 초기의 기분을 내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몇 번이나 되나? 부부관계 상담을 떳떳하게 받을 수 있는 센터가 자신이 속한 지역에 존재하는가? 이런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 이후에야 우리는 불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킬 수 있지 않을까.

배신이야말로 우리를 변하게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소설 『불륜』에서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과연 당신은 여기에 동의하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나의 비루한 일화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매듭지어 보고자 한다. 의무경찰로 경찰서 유치장에서 근무를 하던 어느 날 외국인 남성의 손을 꼭 잡은 한 여성이 유치장에 등장했다. 듣자 하니 남편의 신고로 밀회의 현장에서 체포된 것. 둘은 다른 방에 입감되었는데, 창살문 앞에 바짝 붙어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는 눈빛이 애처로웠다. 몇 번의 조사를 마친 후 어찌된 영문인지 외국인 남자만 풀려났고, 얼마 있지 않아 그는 여자를 면회 왔다. 나는 여자를 면회실로 안내하고 규칙대로 그들을 지켜보는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둘은 투명한 플라스틱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 발음에 나는 도무지 면회 내용을 일지에 기록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은 선임이 재촉할 때까지 최대한 면회 시간을 끌어주는 일뿐이었다. 어느새 다음 차례가 다가와서 면회는 끝이 났다. 얼마 후 선임이 면회일지를 들고 돌아오더니 하는 말.

“어떻게 면회일지에 온통 I love you 밖에 없어!”

그들의 면회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오직 그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말들은 오직 I love you를 말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는지. 며칠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가족들은 면회를 오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외국인 남성도 그 이후로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점. 그 이후로 ‘불륜’을 떠올릴 때면 나는 당시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힘줄이 팽팽히 드러나도록 꼭 쥔 두 손.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맞댄 손바닥.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슬픈 모습으로 창살 너머에 앉아 있던 여인.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슬픈 실루엣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배신이다. 아쉽지만 사랑은 그 다음이다.

패티 보이드가 조지 해리슨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조지 해리슨이 링고 스타의 아내 모린과 외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조지 해리슨의 곡 <So Sad>는 그런 자신의 부족함과 아내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는 전혀 ‘상관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원더풀할 것만 같았던 에릭 클랩튼과 패티 보이드도 결국에는 이혼으로 끝을 맺는다. 역시 원인은 에릭 클랩튼의 외도 때문이었다. 배신이야말로 우리를 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