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것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비교적 포괄적 의미를 갖는 이 개념은 주로 ‘가족’에 집중된다. 가치와 도덕을 사수하는 최전선인 가족에 불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것이다. 반복된 불황과 노동유연화에 가족의 결집은 사유재산 축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가부장의 권위가 꺾이고 가족 내 젠더역할과 위계가 해체되는 가운데 느슨해진 가족규범은 내부에 불륜을 배태한다. 이상적인 가족모델은 제도와 문화에 파고들어 삶의 안정과 미래를 약속하지만, 매뉴얼에 충실해온 삶은 가슴 깊이 박힌 삶의 권태와 고독을 깨우고 가족의 방벽에 억눌려온 욕망을 산개한다. 지긋지긋한 삶의 고착된 궤적은 늙어감의 회한을 키우며 열패감에 몸부림친다. 불륜이 청년보다 중장년에 어울리는 언어인 까닭이 여기 있다.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치환되어 일탈의 비명을 날린다.

‘상실한 꿈’의 업보는 순수한 사랑의 동기가 된다. 하지만 꿈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불륜이 ‘불륜’의 오명을 얻기까지 도덕률의 심판은 필수이다. 아니, 도덕적 오명과 금기야말로 운명적 사랑의 가치를 높여 불륜을 추동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미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파고를 높이기 위해 어떤 장애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지 않은가. 대개 불륜의 서사는 실체 없는 사랑의 이상을 둘러싸고 과잉 생산되는 진흙탕 쟁투를 담는다. 공주는 괴물을 물리칠 기사를 기다리지만, 기사를 찾기까지 공주는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기억 속 소설의 문장은 틀리지 않았다. 운명의 순수함은 주변 관계들을 부정하고 파괴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비밀이 생기고 질투와 의심이 싹트면서 배신과 복수의 치정극이 시작된다. 은밀한 추적과 우연한 폭로로 비밀이 밝혀지면 협박과 모략, 협잡에 소문이 돌고 뒷거래가 오간다. 공인된 서류와 임신사실은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껴둔 패다. 시중에 넘쳐나는 치유와 조정, 관계복구의 프로그램들은 플라시보placebo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하지만 복잡한 게임의 끝은 의외로 시들하다. 대상을 성취하고 운명의 승전보를 알리는 해피엔딩은 그간의 갈등과 긴장을 종식한다. 하지만 분홍빛 구원서사는 다시금 삶의 지루함과 불안의 덫에 포획될 수밖에 없음을 애써 감춘다. 또 다른 끝에는 금지된 관계를 포기하며 반성과 교훈을 남기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류의 초인간적인 절제와 지조의 표상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이면에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실패가, 다시금 불만을 누르고 현실에 안주할 것을 종용하는 자기합리화가 내재한다. 반대로 운명을 위해 관계 단절도 불사하는 서사는 어떤가. 일탈을 택한 이들은 고립된 공간에서 금지된 사랑을 향유하거나, 집단 밖으로 나가 무모한 사랑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온갖 장애를 넘어 다다른 운명의 상대가 이복남매로 밝혀지거나, 불현듯 불치병이 찾아오고 정사情死를 선택하는 주인공들은 금기의 심판에 무릎 꿇는다. 운명을 거둬갈 질병과 죽음은 신체에 반영된 사회의 주홍글씨이다. 하지만 불륜으로 낙인찍힌 실패에는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사랑’의 사후적 보상이 주어진다. 이는 운명적 사랑의 낭만과 가족규범이 어떻게 한 공간에 뒤틀린 채 공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불륜은 가치관을 비트는 저항과 일탈의 스캔들이지만, 기존 규범의 권력을 환기하고 더러는 회귀하는 것이다.

불륜에는 몇 가지 조건이 수반한다. 먼저 성적 욕망을 일정 수준에서 상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자유는 일탈의 꿈을 부추길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불륜은 귀족들의 난교와 다르다. 특정관계를 불륜의 족쇄로 결박하기 위해서는 일부일처제의 도덕률이 서로를 감시하고 검열하는 기제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불륜은 근대 부르주아 가치규범에 틈입한 일종의 증상이다. 여기에 속물주의가 개입한다. 불륜은 신분상승 욕망을 좇아 관계의 극단으로 치닫는 도구가 되지만, 반대로 특권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순수한 사랑의 낭만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금기에 대한 욕망은 소비사회에서 향유 가능한 하나의 문화자원이자 시장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대체로 혼외정사와 같은 ‘금기’는 ‘바람’처럼 순간적인 불장난에 그친다. 금지된 욕망에 따를 수치와 비난의 우려는 대도시 근교의 ‘궁전’에 감춰두고 방방곡곡 구비된 성性상품이 대체한다. 하지만 드라마와 문학으로 쓰이는 불륜은 불만의 수요를 보다 안정적이고 대중적으로 대리 충족시킨다. 소비사회에서 불륜은 도덕과 금기, 불안과 욕망, 불만과 체념을 가로지르는 신경증적 몸부림의 스크린을 제공하며 시장을 확대·재생산한다. 파고를 높이며 일상의 제도와 관계들을 변주하고 뒤엉켜놓는 과정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면서 불륜드라마는 갈등과 긴장의 극적 재미를 높이는 ‘흔한’ 서사로 자리매김한다. 불륜이 삶의 도덕률에 종속된 욕구불만의 현실을 적시한다면, 불륜드라마는 세속적 금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일상적 삶에 안착하기 위한 고통과 쾌락의 훈련이다.

영속적인 삶의 위기와 고착된 사회제도 양단을 반향하는 불륜은 욕망의 위험수위를 향유하는 가운데 허구적 문화자원으로, 사회적 현상으로 군림한다. 금기의 선을 넘는 데 실패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는 데 강박적인 쾌감을 느끼며 진부한 서사의 코드들을 과잉변주하고 대량생산하는 한국은 명실상부한 불륜의 왕국이다. 혹자는 가족제도와 불륜의 뗄 수 없는 상관성을 비판하며 다자간 연애polyamory를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일처제의 견고한 망령 위에서 열린 관계를 예찬하는 행위는 일종의 ‘스와핑’이자 '스캔들'로 오독될 수밖에 없다. 불륜을 하나의 증상으로 해석하고 읽는 것은 가족제도부터 경제구조에 이르는 전반적인 삶의 기반을 숙고하는 가운데 금기의 무게를 재고하고 새로운 관계모델을 발명한다는 것일 터, 변화를 고민한다면 적어도 삶의 근본적인 권태와 고독을 버텨내며 타인과 나의 불안을 안고 조율을 모색하는 관계의 기술을, 관계의 기술을 논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증상으로서 불륜은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불안과 불만, 분노의 온도는 뜨겁지만 찻잔 속 폭풍일 뿐, 식은 채 타오르는 열정은 끝없는 현실의 불만과 체념을 불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