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은 셰익스피어, 4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희곡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에 속한다. 특히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450년이 되는 해다. 그의 고향인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 450년’을 기리는 행사와 공연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질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아직도 셰익스피어인가? 이것이 지난 4월 말 파리 오데옹극장에서 열렸던 ‘셰익스피어 450’ 총회의 주제였다. 영미와 유럽의 학자, 연극 연출가, 평론가들이 대거 모인 이 행사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왜 현대에까지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강연과 토론, 워크샵 등을 통해 재조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초부터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등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국립극단에서 <맥베스>(이병훈 연출), <노래하는 샤일록>(정의신 극본·연출), <템페스트>(김동현 연출)를 공연했고 명동예술극장은 김광보 연출로 <줄리어스 시저>를 올렸다.

이 공연들의 특색은 연출가가 자기표현 욕구에 의해 작품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극장의 의뢰를 받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무대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재일한국 작가 정의신의 <노래하는 샤일록>은 약간 예외적이다.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이 작품은 작가 정의신에 의한 셰익스피어의 사적 전유에 가깝다. 이전에도 <맥베스>를 인용하여 <적도 아래의 맥베스>를 썼고 체호프 작품들을 모티브로 현대극을 창작했던 정의신은 이 작품을 통해서도 자신의 세계를 관객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그것은 연출적인 자기표현이라기보다는 작가로서 셰익스피어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설을 수행한 것이었다. 이병훈, 김동현, 김광보 등 국내 연출가들의 공연들은 스타일의 차이는 있었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원작에 충실했다.

플루타르코스, 셰익스피어, 김광보

김광보가 연출한 <줄리어스 시저>의 텍스트는 극작가 고연옥이 윤색한 것(김종환 번역본)이다. 윤색은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지 특별히 현대적이거나 한국 상황과 연관해 각색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김광보 역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간결하게 무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치밀하게 정리한 공연은 휴식 없이 두 시간 동안 완결된다. 마흔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을 16명의 배우로 경제화하면서 시저의 부인인 칼퍼니아와 브루터스의 부인 포샤가 등장하는 장면이 없어지고 남성배우들만 등장하는 연극으로 바뀌었다. 철제 빔과 철조망 벽만으로 구축한 사각의 검은 무대에서 의상도 무채색이며 예외라면 시저가 양복윗주머니에 꽂은 빨간 행커치프다.

고대 로마의 시저 암살을 모티브로 한 <줄리어스 시저>는 1599년에 당시 새로 지은 글로브극장에서 초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사에서 보면 창작 중기 정도에 해당하며 <햄릿>보다 한두 해 빠르다. <로미오와 줄리엣>(1595)은 이 작품보다 먼저 쓰였지만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인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는 모두 이 이후에 나왔다. 비극으로 부르기도 하고 로마극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 작품은 플루타르코스가 기록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이하 영웅전)』을 출전으로 한다. 정복을 통해 로마를 제국화하면서 독재적 인물(왕)이 되어가는 시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시저 암살을 감행하는 브루터스, 그리고 브루터스를 몰아내고 시저 사후 정치적 실권을 잡는 안토니 등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또 다른 주요인물로 브루터스를 끌어들여 시저 암살을 정당화하려는 카시어스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모든 작품에 출전이 있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영웅전』의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의 각색이라고 할 만큼 이 책에 충실하며 등장인물, 시저와 브루터스의 많은 대사들, 모든 에피소드가 여기서 나왔다. 희곡에 왜 이렇게 단발적인 등장인물과 분절된 에피소드가 많은지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영웅전』을 읽어보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적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브루터스와 안토니의 연설 장면이 없었다면 작품은 이렇게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플루타르코스가 기록한 역사에 의거하여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두 연설은 놀랄 만큼 역동적이며 특히 안토니의 연설은 대표적인 정치선동연설로 인용될 정도다.

<줄리어스 시저>를 보기 전이라면 시저 암살과 관련해 떠올리는 말은 시저의 마지막 말,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다른 말이 귓가를 맴돌게 된다. 바로 “브루터스는 고결한 분입니다Brutus is an honorable man”라는 말이다. “저는 시저를 묻으러 온 것이지 그를 찬양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시저의 장례 연설에서 안토니는 이 말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시민들의 마음에서 브루터스에 대한 신의를 몰아낸다. 이 연설에 앞서 브루터스는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시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절실하고 간결한 연설을 통해 자유를 사랑하는 로마시민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안토니는 ‘브루터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한다. 브루터스는 고결한 사람이다. 하지만 브루터스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시저는 억울하게 죽었다’는 연설로 브루터스의 말의 의미를 파괴해 버린다.

김광보의 공연에서 연출가의 해석이 가장 많이 들어간 인물이 이 안토니다. 올백머리를 한 안토니(박호산)의 검은 가죽 롱 트렌치코트는 청회색이나 녹회색 계열의 브루터스(윤상화), 카시어스(박완규)의 추레한 트렌치코트와는 다르며 가죽코트 안에는 윤기 나는 검은 셔츠와 보라색 조끼를 입었다. 일견 메피스토펠레스 같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조직폭력배의 복장이다. 그것은 시저의 흰 코트도 마찬가지다. 언뜻 게릴라 군복의 느낌을 주는 브루터스 일파의 복장과 달리 시저, 안토니, 옥타비어스 쪽은 조폭의 느낌이다. 연출은 안토니가 읽은 ‘시저의 유언장’이 거짓이라고 해석하여 안토니를 권모술수의 인물로 강조했다. 내전 승리 후 브루터스의 시체 앞에서 ‘브루터스가 모두를 위한 공동의 선을 행하려 음모에 참가했던 것이며 후에 사람들이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인정할 것’이라는 안토니의 대사도 권태로운 목소리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표현된다. ‘이 세상에 맞지 않았던 마지막 정의로운 자’라는 투다. 연출가는 공연 프로그램에서 이 작품을 ‘상식과 비상식의 관점’으로 해석했고 ‘상식적 인간의 고뇌가 죽음으로 순환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김광보는 브루터스의 선의善意가 몰락하고 악惡이 세계를 장악한 것으로 그린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정치성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원작 그대로 올리는 경향이 있는 영국에서는 주로 캐스팅과 무대 설정, 의상 등으로 동시대적 연관을 표현한다. 2012년에 두 개의 <줄리어스 시저>가 화제가 되었는데 하나는 스트랫퍼드의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였고 다른 하나는 런던 코벤트가든에 있는 돈마르웨어하우스의 공연이었다.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에서는 무대 뒤편에 거대한 흰 동상을 설치하고 배우 전체를 흑인으로 캐스팅하여 아프리카 내전 상황을 표현했다. 로마식 튜닉과 현대 아프리카 일상복, 군복을 섞어 시저 시대와 현대 아프리카를 이었다. 반면 돈마르에서는 전 배역을 여성 배우로 캐스팅하고 무대를 감옥으로 설정했다. 이 공연에서는 관객이 극장에 들어가는 과정까지도 죄수들이 수감되는 절차를 거치게 했다. 죄수들이 죄수와 간수의 연극을 보는 셈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줄리어스 시저>는 순수하게 권력투쟁을 다루고 있기에 군대, 감옥, 조직폭력(마피아)은 이 작품의 배경으로 쉽게 연결되는 듯하다.

셰익스피어는 17세기 당대에 가장 대중적인 극작가였다. 그런데 그 대중성의 근원에는 이야기와 언어의 자유로움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치성이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 정치경제적 이행을 하던 엘리자베스 시대에 셰익스피어는 영국 왕조의 권력 쟁탈로부터 소재를 발전시켰고 그가 다룬 권력투쟁, 욕망의 문제는 우리 동시대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셰익스피어는 동시대 정치사회적 현안을 비유하는 문제극으로 자리매김 된다. 김광보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브루터스가 매우 ‘비정치적’으로 보이고 희극적일 정도로 어처구니없이 몰락하는 것은 역으로 우리 정치의 속악한 정치성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미지 제공: 명동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