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극적인 죽음

IQ149에 외모가 반듯하고 일류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아홉 살 이 군은 엉뚱한 사람을 죽였다. 그의 칼에 찔린 사람은 이 군의 중학교 은사 임정자(29세)와 사별한 남편의 새 부인이었다. 이 군은 열일곱 살 중학교 재학 중에 국어선생인 임 교사를 여자로서 연모했고 그의 연정을 스승이 몰라주자 음독자살까지 시도했다. 임 교사는 자신을 향한 이 군의 열렬한 감정과 진정성을 알게 되었고 이 군이 일류 K고에 합격하던 날 함께 축하하자며 청평유원지에 놀러가 산장호텔서 하룻밤을 보낸 후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들의 애정행각은 점차 대담해졌다. 이 군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에도 임 교사의 하숙방과 여관을 전전하며 이들은 욕정을 불태웠다. 이 군의 학교성적은 엉망이 되었고, 마침내 이 군은 학교마저 자퇴를 하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임 교사는 집안의 권유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문제는 임 교사의 남편이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 후에도 의남매인 척 집안을 드나들던 이 군과 임 교사의 애정행각을 목격하고 남편은 즉각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과 별거하고 혼자 아파트서 살던 임 교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 교사가 죽은 후 남편은 곧장 재혼을 하였고, 그 사실에 분노한 이 군은 칼을 들고 남편을 죽이려 했으나 집에 혼자 있던 남편의 새 부인만 이 군의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요약한 것이다.1) 이러한 사건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현실에서조차 심심찮게 재현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불륜의 속살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사람들은 더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금 불륜증후군을 앓고 있다.

자율성의 윤리와 공동체의 윤리 사이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불륜은 길바닥에 널린 유흥업소 광고지만큼이나 흔하고 버젓하다. 불륜의 대명사인 간통마저 세계화(?) 추세에 걸맞게 폐지가 논의 중이다.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의 도덕성을 인격적 올바름의 척도로 삼는 나라에서 정작 자신의 부도덕함은 상황 혹은 진실함의 논리로 정당화된다. 타인의 불륜은 엄격하게, 자신의 불륜은 너그럽게 대하는 이 분열증적이고 이중적인 잣대는 누가 만들었고, 왜 만연할까. 문화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도덕성을 ‘자율성의 윤리, 공동체의 윤리, 신성함의 윤리’라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눈 리차드 슈웨더Richard Shweder의 개념을 차용하여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는 자율성의 윤리를, 관습을 강조하는 사회는 공동체의 윤리를,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는 신성함의 윤리를 도덕성의 판단기준으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덕적 판단을 수행하는 직관이 감정적으로 먼저 표출되고 이후에 자신의 직관적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적 추론을 수행하는데, 이때 슈웨더의 세 가지 도덕성 범주 중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 혹은 집단의 문화적 성향에 따라 도덕적 추론방식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특히 개인주의적 사회 혹은 집단에 속한 사람은 도덕적 직관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적 차원으로 드러나는데 반해, 관습과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 혹은 집단에 속한 사람은 도덕적 직관이 타인(혹은 신)과의 관계를 우선하는 범위 내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드러난다고 강조했다.2) 이처럼 조너선 하이트와 리차드 슈웨더의 문화심리학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도덕성에 대한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다르게 말해서 한국 사회가 자율성의 윤리와 공동체의 윤리 사이에서 문화적 분열 혹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을 암시해준다. 또한 도덕적 직관이 상황 혹은 대상에 따라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널뛰기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러한 도덕성의 문화적 유형에 따른 도덕적 직관과 추론 양상을 고려해 볼 때 한국 사회의 불륜증후는 단지 인터넷 동호회나 등산모임에서나 일어나는 해프닝을 꼬집는 냉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2014년 상반기 TV 드라마로 적잖은 열풍을 일으킨 <밀회>(JTBC)와 <빅맨>(KBS2)은 문화적 분열과 변화 속에서 한국 사회의 치부가 불륜 문제로 어떻게 드러났는지 보여준다.

드라마 <밀회>와 <빅맨>의 경우

<밀회>의 오혜원(김희애 분)은 정의로운 관계와 불의한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안한 존재다. ‘서한예술재단’이라는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한 조직 내에서 그녀는 승승장구하지만 그녀의 도덕적 추론은 자신의 임무(판단)를 도덕적으로 변호할 열정을 잃은 채 살아왔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 날 문득 나타난 이선재(유아인 분)는 불의한 관계들을 청산해야겠다는 도덕적 직관을 되살려준다. 결혼한 유부녀로서 제자와의 밀회는 분명 불륜이지만 선재와의 관계는 ‘진정성’이란 도덕적 추론으로 변호할 수 있는 정의로운 도덕의 편이었다. 반면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과 맺은 부부관계는 비록 사회적 규범에 준하지만 출세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속물적 관계라는 점에서 선재와의 불륜보다 더 도덕적이지 못한 불의한 관계일 뿐이었다. 혜원은 재단과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윤리를 따르는 도덕적 추론과 선재라는 자율성의 윤리를 따르는 도덕적 추론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였지만, 예술과 열정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 직관을 변호하는 도덕적 추론을 세움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불륜조차 도덕적 강박으로 정당화한다. 그녀의 도덕적 강박은 너무나도 집요해서 선재를 선택한 자신의 정의로움조차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고 자신을 교도소에 가두고 나서야 끝이 났다.

<빅맨>의 소미라(이다희 분) 역시 혜원처럼 정의로운 관계와 불의한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안한 존재다. ‘현성그룹’이라는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한 조직 내에서 그녀는 회장 아들인 강동석(최다니엘 분)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사랑과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지만, 그녀 앞에 문득 나타난 김지혁(강지환 분)을 통해서 애인 동석으로 대표되는 상류사회의 속물성을 깨닫고 갈등하게 된다. 그러다가 ‘현성그룹’과 동석에게 이용당한 지혁이 시장상인과 노동자들과 같은 소외계층과 함께 연대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미라는 동석과는 달리 공동체의 윤리를 따르는 지혁의 도덕성을 선택한다. ‘현성그룹’과 동석을 몰락시키기 위한 지혁의 고군분투를 돕고자 조직의 보스이자 자신의 애인이고 장차 결혼할 배우자였던 동석을 배신한 미라의 극중 스파이 행위는 분명 불륜이라 할 수 있다. 미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동석과 자율성의 윤리를 따르는 대신 사회적 차원에서 지혁과 공동체의 윤리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도덕적 직관에 따른 판단을 스스로 설득하기에 정당한 도덕적 추론임을 인식한 것이다. 또한 그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현성그룹’의 부정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미라가 알게 된 것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윤리적 판단을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 기사에 가깝다

<밀회>의 혜원과 <빅맨>의 미라는 비록 다른 도덕성 유형에 속한 존재이지만 각자 자신만의 도덕적 직관에 따라 정의로운 관계를 선택했다. 혜원이 자율성의 윤리를 선택한 반면 미라는 공동체의 윤리를 선택했지만 그녀들이 보여준 도덕적 직관은 모두 속물적 윤리에 대한 저항이었다. 애정 없는 부부관계(오혜원 vs 강준형)나 공감 없는 연인관계(소미라 vs 강동석)가 사회적 평판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진 않지만 이러한 속물적 윤리는 도덕적 직관이란 개인적 감정과는 결코 공존하지 못한 채 자기모순을 일으키고야 만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혜원과 미라의 불륜을 불안해하면서도 지지하였던 이유도 바로 그러하다. 평판을 진실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적 직관으로 보면 그녀들의 불륜은 소위 ‘미친 짓’이지만, 시청자들은 평판을 위해서 불의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부도덕한 짓’으로 여기는 개인적 직관을 따랐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반전이 있다. 이 글 서두에 밝혔던 40년 전 사제불륜사건처럼 우리는 누구도 타인의 불륜에 감춰진 진실한 도덕성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자신의 불륜이 타인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윤리는 개인적 직관보다 사회적 직관이 우위에 있다. 그리고 그 격차와 괴리감만큼 한국 사회는 지금 속물적 윤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불륜의 속살이 드러나자 정작 부끄러워지는 것은 타인의 불륜을 비난하고 자신의 불륜은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과 문화적 분열이다. 진실한 불륜은 <밀회>나 <빅맨> 같은 드라마에나 있고 40년 전 사제불륜사건 기사는 그런 불륜이 없다고 말한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 기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