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鳶 : 나는 날 수 없지만, 너는 날 수 있는 그 무엇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라이너스, <연>(1979년 대학가요제 금상곡)

어린 시절부터 심각한 몸치였던 나는 몸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 해내지 못해 남몰래 자학하곤 했다. 체육시간에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뜀틀이나 높이뛰기를 할 때 아이들이 ‘저것도 못해?’라는 표정으로 내 굼뜬 동작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팠다. 체육시간의 압박감 때문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정말 잘 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바로 연날리기였다. 내가 만든 연은 한 번도 하늘 높이 힘차게 비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서툰 솜씨로 얼기설기 만든 연은 얼마 못 가 땅으로 거꾸러지거나 나약하게 흐느적거리며 낮은 허공만을 허무하게 서성거렸다. 바람을 가르며, 때로는 바람을 등진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바라보면 엄청난 질투심이 일어났다. 왜 나는 안 될까. 그 가벼운 질투심보다 더 뜨겁게 불타오르는 감정은 바로 경외감이었다. 사람의 두 발은 여기 땅에 붙박고 있는데 사람이 붙든 연은 우리가 맨몸으로는 결코 날아오를 수 없는 높이로 하늘이라는 또 다른 바다를 마음껏 유영遊泳하고 있었으니.

언젠가 연날리기의 기원이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역사 속에서 연날리기의 기원은 본래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적들의 동태를 살피거나 상대편 군대를 교란시키기 위해 사람이 아닌 연을 날려 보냈던 것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군사작전으로 연을 사용한 김유신의 전략이 등장한다. 647년 선덕여왕 때 염종과 비담의 반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김유신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풍연風鳶에 실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만들어 군인들의 사기를 드높였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고려 장군 최영이 탐라를 공격할 때 연을 이용하여 사방이 절벽으로 딸린 섬에 상륙했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 최영이 몸 가벼운 소년들을 모아 거대한 연에 태워 성 안에 쳐들어가 성을 함락시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한 고조가 진희를 공격할 때 한신이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연을 만들어 띄워서 미앙궁의 멀고 가까운 거리를 측정한 뒤 땅을 뚫고 궁중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혹은 양나라 태청 시기에 후경이란 자가 대성을 공격해 포위하자, 양간이 어린아이를 가르쳐 종이 연을 만들게 하여 연에 문서를 매달아 바람에 날려 연락을 취함으로써 구원병을 부를 수 있었다.

-고승高承, 「사물기원」 중에서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연날리기가 그렇게 삼엄한 목적으로 사용되다니, 조금은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기록일 뿐, 원초적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최초의 연날리기는 이카루스의 모험처럼 하늘을 향한 강렬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새처럼, 나비처럼, 꿀벌처럼, 나비처럼 날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연鳶이라는 눈부신 발명품을 낳게 한 것이 아닐까.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나는 날 수 없지만 너는 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모험과 유희는 이미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며, 옛사람들도 ‘우리도 저들처럼 날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연은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날아오름의 방식이 아닐까.

연은 창공을 가르는 자유, 땅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유토피아의 상징이자 억압과 차별에 길들지 않는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의 선교사로 한국 땅에 왔던 독일인 선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고개를 빳빳이 들 일이 별로 없었던 식민지 조선인들이, 연을 날릴 때만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저 높은 하늘을 당당히 쳐다보았다고. 그렇게 세상 밖으로 펼쳐 보이지 못한 소원의 빛깔이 연날리기로 표현되는 것을 식민지 당국은 예민하게 포착해버린 것일까.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의 연날리기는 한때 엄격하게 금지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상상해본다. 연날리기조차 금지된 상황 속에서도 어린 소년이 한밤중에 남몰래 소중히 간직한 방패연을 들고 홀로 뒷산 언덕배기로 올라간다. 소년은 징용에 끌려간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어려운 살림 때문에 저 멀리 아라사(러시아)로 밤도망을 간 친구네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늘 높이 방패연을 날렸을 것이라고. 이루지 못한 꿈을 실어,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을 실어, 다가갈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한 동경을 실어 연에 날려 보냈을 것만 같다.

2. 연날리기에 담긴 각양각색의 꿈들

우리 집의 모든 액운일랑 네가 가져가서, 인가에 떨어지지 말고 들판 나무에 걸려라. 그러면 봄 하늘에 비바람이 칠 때에, 자연히 액운 소멸해 찾을 곳도 없어지리.

-권필(權韠, 1569~1612), 「석주집」 중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종이 연이 민가에 추락하는 것을 기피했다고 한다. 권필의 「석주집」에는 날아오르는 연에게 ‘인가에 떨어지지 말고 들판 나무에 걸려라’고, ‘우리 집의 모든 액운일랑 네가 가져가라’고 소원을 비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연날리기를 통해 일종의 액막이를 꿈꾸기도 한 셈이다. 1566년 1월 15일 「명종실록」에는 백성들이 멋대로 연을 날려 궁중에 연이 추락하게 된 것에 대해 잘잘못을 확실히 가려 벌을 줄 것을 명하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백성들은 자유를 꿈꾸며 신나게 연을 날렸고, 궁중에서는 혹시나 액운이 궁궐에 들어올까 전전긍긍했다니. 정월대보름에 연을 날리는 것은 면면히 내려오는 풍속인데, 의심 많은 임금이 백성들의 순수한 연날리기 놀이조차 징벌의 대상으로 삼았다니. 이에 비해 고려의 충선왕은 연을 날려 호연지기를 기르는 아이들의 심성을 잘 이해했던 임금인 것 같다. 『고려사』 충선왕 편에는 궁노가 아이들이 날리던 연을 빼앗아 왕에게 바치자, 왕이 다시 아이들에게 연을 되돌려 보낸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도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자 연날리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어른의 따뜻한 마음이 소복하게 담겨 있다.

유월의 뜨거운 날에는 연을 보기 어렵더니

가을에 접어든 지 사흘 만에 한결 쌀쌀해졌네

이웃 아이들 모여서 부산하게 떠들며, 좋아하며

높은 하늘에 지연紙鳶을 날리네

-이규보, 「칠월삼일에 바람을 읊다」, 『동국이상국집』 중에서

3. 잃어버린 순수의 상징, 연날리기

연을 누가 더 높이 날리는지, 누가 남의 연줄을 더 빨리 끊을 수 있는지를 겨루는 연싸움 또한 추억의 세시풍속 중 하나다. 액막이연에다가 ‘액厄’이라는 글자나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문구를 써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 중 하나였다. 아이들에게 답답한 컴퓨터 화면에 하루 종일 눈을 붙박고 온라인 게임을 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멋진 가족 연을 만들어 함께 연싸움을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날리기의 묘미를 깨닫게 된다면 아이들은 분명 머리 아픈 온라인 게임보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연날리기를 더욱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상대편을 그저 ‘가상의 적’이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죽이거나 비싼 아이템을 구매함으로써 가상세계의 지위를 높이는 것보다, 연날리기를 통해 하늘의 높이와 넓이 그 측량할 수 없는 자유의 참맛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멋진 놀이문화가 아닐까.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에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와 함께 아버지 몰래 연을 만들다가 혼쭐이 나는 어린 소년 미륵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담겨 있다. 미륵의 사촌이었던 수암은 비밀창고에서 밤늦게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연을 만들어 자신의 힘을 시험했던 수암은 이제 생애 최고로 커다란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볼 궁리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장난꾸러기 수암은 천하의 모범생 미륵을 홀려 자신이 만든 연의 둥근 구멍 아래 검은색으로 나비를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대나무 살을 깎고, 연실에 먹일 풀을 끓이고, 화롯불에 인두를 달구는 동안 아이들의 꿈은 송글송글 익어간다. 대나무살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종이에 붙이며 생애 최고의 긴장감을 경험하는 순간, 아버지가 비밀창고의 문을 와락 열어젖힌다. 수암은 연을 황급히 숨겼지만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겁에 질린 아이들 곁으로 수북이 둘러싸인 종이는 바로 글씨연습을 위해 아버지가 나눠주신 종이였다.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신다. “둘 다 밖으로 나와!” 애지중지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연을 어쩔 수 없이 팽개치고 밖으로 끌려나온 두 아이들. 착한 수암은 사촌동생 미륵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변명을 한다. “이 아이는 그저 제가 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요.” 하지만 자기 아들만 쏙 빼놓고 혼을 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두 사람 모두에게 회초리를 공평하게 때린다. 연을 만든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글씨 연습을 하기 위해 받은 종이를 함부로 구기고 찢고 버리는 행위가 아버지를 진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까지는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무섭게도 굵은 회초리가 종아리에 닿는 순간, 미륵과 수암은 한밤중에 은밀하게 즐긴 자유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연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지만, 습자를 하기 위해서 받은 종이를 함부로 써버렸다는 소행 때문이었다. 훈장 앞에서 우리는 바지를 높이 걷어 올려 종아리를 맞아야만 했다. 훈장은 손가락만한 굵기의 회초리를 여러 개 놓고 있었으나, 이제까지는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평온한 학교의 표본으로서 선례를 보이게 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우리 말썽꾸러기가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동안 우리의 꼬락서니를 구경하기 위하여 뱅 둘러싸고 있었다. 훈장의 꾸지람-그것은 너무 엄숙하였다. 훈장은 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비행을 다시 한 번 상세히 설명하고는 회초리를 들고서 단단한지 어떤지를 살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마침내 수암을 보고 종아리를 걷어 올리라고 했다.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압록강은 흐른다』(범우사, 2013) 중에서

몰래 훔친 자유의 엄정한 대가로 회초리 세례를 맞게 된 아이들은 모든 학생들이 숨죽이고 구경하는 가운데 따가운 회초리를 맞게 된다. 뜨거운 눈물이 순식간에 분수처럼 쏟아질 정도로 따끔한 회초리였지만, 언젠가 어른이 되면 그 쓰라린 아픔조차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다. 회초리의 아픔은 금세 가시지만 친구와 함께 온갖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한밤중에 몰래 만들었던 종이연의 기억은 일평생 잃어버린 꿈의 상징으로, 순수의 상징으로 아이들의 영혼 속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은 자유의 상징만은 아니다. 연이 날아오름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은 단단히 땅에 붙박여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실을 자유자재로 살살 풀어 올리며, 감아올리며, 팽팽하게 당겨보며,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나와 세계의 거리를 가늠해보는 것. 자유의 머나먼 거리와 현실의 견고한 울타리를 냉정하게 가늠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열매가 탐스럽게 무르익는 시간, 마음의 수심水深이 한 뼘 한 뼘 자라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