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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적 많은 객석. 다소 예스럽긴 해도 세심한 공이 느껴지는 무대미술. 다년간의 레퍼토리로 쌓인 고른 연기력과 앙상블. 극단 십년후의 <소문>은 연극상주단체로서의 기본품을 한껏 선보였다.

<소문>은 오해를 골자로 한 한 편의 소동극이다. 하나의 상황에 여러 인물들이 몰입하며 만들어내는 상황희극-시츄에이션 코메디, 즉 시트콤이다. 한때 유행했던 ‘순풍산부인과’ 같은 방송드라마의 공간이 철거촌 달동네로 옮겨온 것이다. 선이의 헛구역질을 둘러싼 이웃들의 과도한 오해는 관객들에게 ‘혹시나’에서 ‘설마’ 같은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고, 그 속에서 임신설, 범인설, 칼부림설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이웃들이 택하는 설왕설래의 비합리적인 대응들은 해학을 한껏 가져다준다. 오해와 억측의 드라마가 인물과 상황 속에 잘 직조되어. <소문>의 성공은 분명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이면에 숨어 있는 극적 한계도 있다. 인물들이 상황 자체에만 매몰되다보니, 삶의 구체성이나 생활의 현실성은 점점 사라져간다. 아니 애초부터 극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분명 상황은 삶의 애환 속에서 출발한 것인데, 인물들은 어느새 그 애환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다. 철거 상황도, 인물의 생사도, 거대한 현실에 내몰려 진입도 못하는 사회적 탈각도, ‘오해’라는 상황 속에 점점 탈색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웃음의 대부분은 비웃음에 있다. 웃어야 할 내가 우스꽝스런 대상을 동일시하지 않는 전략에서부터 희극은 시작된다. 심지어 나와 동일한 조건이나 품고 보듬어야 할 연민의 조건이라 할지라도 그 인물의 행동들은 모자람을 택해야 한다. 흥부가 맞은 뺨의 밥풀때기를 뜯어먹고 다른 쪽을 때려달라고 해야 해학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하르트만이 ‘희극은 인간의 나약함과 자질구레함 속에 숨어 있다’라고 한 이유도 그것이다.

그래서 <소문>이 택한 희극 전략은 현실을 탈색시켜 동질성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야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로 대상화시켜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화 전략이다. 현실은 여전히 개발 천국의 사회에서 철거로 밀려나는 판국이지만, 여기 철거촌 달동네는 과거형을 재현한다. 대사들이 시점을 현시대로 놓는 듯하지만, 삶의 여건이나 양태, 생활방식은 과거형을 택한다. 지난 일은 비극도 희화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삶을 낭만화시키는 것이다. 철거 상황은 해프닝이 되고, 소시민적 영웅이 모든 사건들을 해결하며, 삶의 잔혹한 비극성을 지우는 것이다. 과거가 시간적으로 거리를 두게 한다면, 낭만은 현실을 비켜보게 하여 심리적인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다.

<소문>의 웃음이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나 나약함에 분명 자리 잡고 있지만, 그것이 통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처럼 ‘나는 저들과 다르다’라는 변별과 배척이 그 웃음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의 고전희극인 ‘맹진사댁 경사’를 보자. 이 희극에서 오해는 풍자를 만들어낸다. 절름발이 새신랑이라는 소문에 대응하는 맹 진사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 피해는 풍자 대상인 맹 진사를 한껏 비웃게 만든다. 멀쩡한 새 신랑이 규수로 돌변한 하녀 이쁜이와 맺어지는 과정에서는 이런 상황역전이 관객들에게 통쾌한 웃음마저 선사해주는 것이다.

그 옛날 스테디셀러 <전원일기>도 떠올려보자. 상황적 희극성 속에서도 농촌의 생활과 현장의 심각함을 탈각시키지는 않는다. 공감이 주된 목표였기 때문이다. 웃음거리가 되는 대상화전략을 택하기엔 현실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개의 시트콤이 독특한 시공간의 설정으로 대상화전략을 택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희극성의 뿌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문>의 웃음 양상이 대상에 대한 비웃음으로만 일관한다는 건 아니다. 내 삶의 닮은꼴을 정형화시켜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표제의 웃음도 있고, 비웃음의 대상을 자기화시키는 스스로의 반성적 웃음도 분명히 있다. 다만 지금의 시대현실이 그 웃음을 자꾸만 일그러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힘들면 누구나 낭만으로 도피하고픈 갈망을 가진다. 이 도피할 낭만마저 거세되면 예술은 점점 갈 길을 잃는다. 허나 도피된 낭만을 현실로 착각해버리면 상황은 그야말로 기괴해진다. 현실의 잔혹한 희극성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어, 허구 속 낭만희극이 그야말로 부조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다수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칭한다. 여전히 ‘개발만능’의 시대에서 개발에서 밀려나고 중간층에서 추락했음에도 스스로 중산층이라 자위하고 있다. 스스로를 낭만화시키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더 힘든 삶의 여건이나 범상치 않은-그래서 모자란 행동들을 더없이 웃음거리로 만들고, 심지어 조롱거리로 여기기도 한다. 언제가 그 웃음이 눈물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고. 폭주기관차 같은 열차에서 내가 탄 열차 칸이 잘려 나간 줄도 모른 채, 뒤쳐진 열차가 꼬리 잘렸다고 낄낄대며. 우리 현실은 해학적 희극마저 깔깔대고 볼 수 없을 만큼 힘든 시대로 돌입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