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쁜 중구

인천 중구는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로서 위풍당당하게 한 세기를 보냈는데, 신개발지가 늘어가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주민들은 새 아파트로 떠나고, 행정 등 공공의 기능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교육과 경제 등의 도시기능들이 따라 나가면서 인천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전형적인 원도심 쇠퇴의 과정을 겪었다.

그런데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원도심의 쇠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도심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생활공간이 획일화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 근대 도시경관이 곳곳에 남아 있는 중구의 가치가 급부상하였다. 지정문화재 17개소, 등록문화재 4개소, 기타 지역자산 21개소가 밀집되어 있는 개항장 일대의 역사성과 문화성에 기반을 둔 도시 정체성이 도시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고 경쟁력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이는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지역재생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 증대, 강한 도시이미지 창출을 통한 도시마케팅 효과 등 그 잠재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구는 핑크빛 미래를 꿈꾼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개항장 문화지구 지정, 차이나타운 특구, 역사문화거리 특화사업 등 중구 개항장 일대의 근대경관의 특성을 살린 지역 재생을 도모하고 있다. 인천시는 원도심의 종합적 재생을 위하여 개항장 일대를 중심으로 한 ”개항창조문화도시(MWM City)" 에 대한 종합적인 기본구상 및 “다시 개항하는 창조경제 도시모델 정립” 등에 기반하여 다양한 사업들이 실현 및 추진되고 있다. 중구청 역시 구정목표를 “역사문화! 중심도시. 비상하는! 관광중구”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정말 중구가 바쁘다.

진정성 없는 시뮬라크라 도시

중구청의 구정목표를 풀어 쓰면, 중구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도시인 만큼, 이를 관광과 연계하여 다시 비상하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중구청의 주도로 추진된 삼국지 및 사대 기서 벽화거리 등 차이나타운의 변화, 송월동의 동화마을, 그리고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각국 개항거리 조성사업 등에서 그 방향성은 확실히 드러난다. 또한 중구 미래 발전구상 및 종합계획 수립 그리고 권역별 발전계획 구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중구발전기획단’이 ‘관광진흥실’ 소속이라는 것에서도 중구청이 관광에 두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지역 정체성의 소중한 자산이며 장소성을 형성하는 중구의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의 잠재력을 관광에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의 현상학에 입각한 경험적인 장소에 대한 연구인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 1976, 김덕현 외 역, 2005)」은 현재 중구의 상황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에 따르면, 아무리 형태가 없고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우리가 공간을 느끼거나 인식할 때에는 항상 장소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간에 의미를 불어 넣음으로써 장소를 만들고, 이러한 장소는 사람들 사이에 경험을 공유하게 하고 시간을 넘은 연속성을 보장함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정체감 및 소속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인간 삶의 토대로서 귀속의식이 내포되어 있는 장소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특징을 무심하게 지워버리고 표준화된 경관을 만들어내는 무장소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장소와 무장소에 있어 핵심개념은 진정성에 있으며, 그 구분기준은 인간이 장소와 맺는 관계에 있다. 지난 세기를 압도했던 모더니즘은 단일 가치의 보편성을 지향하였던 만큼 대규모 개발 및 표준화된 설계의 과정을 통하여 획일화된 도시공간을 창출해내고 수동적이고 관습적인 장소경험을 유발함으로써 진정성이 결여된 무장소를 창출하였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다중 의미를 지향하고 지역의 전통과 맥락을 끌어들임으로써 역사주의의 특징을 가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가공된 장소를 통한 무장소의 창출이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뚜렷한 장소 정체성이 이윤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장소가 고유하다는 특성 자체를 왜곡하고 다른 장소의 정체성을 이식하여 장소의 차별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심을 유발하고 관광객에게 돈을 쓰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소를 이미지화하고 고유성을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예로 디즈니랜드 테마파크와 미국의 도시 라스베가스 내 호텔들을 들 수 있다. 인천의 동화마을과 개항 각국거리 사업은 모두 실존한 적이 없는 것을 모방하는 시뮬라크라를 도시 속에 구현해내는 것이다. 원본이 없는 것을 이미지를 동원하여 초현실을 창출하고, 그 대가로 준거로 삼을 만한 진짜 장소를 소멸시킨다.

한걸음씩 함께 하는 도시재생

동네와 전혀 맥락 없는 동화로 꾸며놓은 송월동 동화마을에는 주말에 5천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마을의 재생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조선인들의 마을이었던 신포동 일대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양식의 유럽풍 입면을 만들겠다는 계획 하에 착공식을 가졌다. 하지만 착공식 이후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유럽풍 입면’은 포기하고 보행환경 개선 및 진입부 상징 구조물 조성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구청의 공식적인 발표를 확인한 것은 아니며, 필자가 공사 현장에서 본의 아니게 공사 관계자 분들의 얘기를 엿들은 것이다. 사실이라면 다행이다.

시뮬라크라 도시인 동화마을에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허상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을 통하여 마을의 재생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도시재생의 의미를 경제적인 측면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며, 그 경제성마저도 지속가능성이 없는 일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도시재생은 커뮤니티의 유지와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어서,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기존 거주자의 지속적인 생활여건을 확보하여야 하며,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사회 문화적인 기능을 회복하여야 하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도시 경제 회복을 고려한 통합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거주민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장소경험을 유도하여 진정성을 가지는 장소감에 집중하여야 하며, 오랜 시간동안 중첩되어 온 지역 고유의 풍부한 내용과 모습으로부터 문화 향유의 기회를 창출하여야 한다. 이러한 도시재생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공사 성격의 사업과는 다르게 거주민들과 다함께 한걸음 한걸음씩 마음을 모아 움직여야 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 문화적 기능을 회복하고 경제 회복을 이끌어내야 만이 도시재생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가시적인 사업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어 너무 바쁜 중구가 아닌, 한걸음씩 함께 하는 도시재생을 도모하는 중구가 되었음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