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음악이 흐른다.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온다. 아니 거의 대부분은 의식하지도 못하게 일상에 내리깔린다. 초에 불이 붙듯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 떠오른다. 그건 연주이기도 하고 노래이기도 하고 사운드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들에겐 음악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 그들이 소비하거나 의견을 표명하는 움직임으로 일정 규모를 이룰 때 뭉뚱그려 한꺼번에 지칭한다. 대중은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진정한, 신선한 혹은 희귀한 것들을. 하지만 대중이 잉태되기 조금 전, 혹은 그 후에 훨씬 많은 것들이 살아 넘실댄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의 연주곡.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쓸어내려진 음音들이 낸 길을 마음속으로라도 다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감정은 고양된다. 기쁘고 아픈 노래를, 만든 사람이 붙인 가사 대로 혼자 혹은 둘이서 음악 없이 불러본다.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 문득 당신은 커다란 스피커가 뿜은 소리에 반짝 돌아본다. 이펙터가 걸린 전자악기의 묵직함이거나 나무냄새 나는 손 연주의 해사함이건 리드미컬한 시간의 초당 이합집산을 그린 분방함이건 그것들은 당신의 한 곳에다 뻥 뚫린 구멍을 낸다. 그렇다고 무엇을 가져간 것은 아니고 크든 작든 그 주변이 내내 떨리도록 공명통을 만든 것뿐이다. 당신은 멜로디와 사운드의 특징을 익힌 정도가 아니라 몸에 내려앉은 음악을 자기도 모르게 곱씹어 피부 밑에 감춘 사람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음악을 ‘저장’할 뿐 아니라 나와 그것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함께, 각자 속한 자리에서 우리는 그 음악과 교류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편견의 기울기를 조금 바꾸기도 하고 애정과 관심으로 새 물결에 일조한다. 이 시간들을 잊지 않는다. 잊지 않는 것은 추억 그리고 유행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다.

또 다시 계절이 돌아왔다, 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한다. 다른 해와는 달리 이상하게 놓쳐버린 계절들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고. 흘러간 게 아니라 놓쳐버린 계절 말이다. 사계절은 일종의 사랑노래 같다. 뮤지션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랑노래도 뜨겁거나 스산해진다. 정식 장르는 아니지만 우리 마음에는 사랑노래라는 형식이 분명 존재한다. 뮤지션 김창기는 아주 신실했던 2013년 솔로 앨범 작업과정에 대해 자신이 일상에서 한 생각들을 사랑노래라는 형식에 담기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만약 한 앨범이 통째로 사랑 노래인데 그 자리에 다른 것을 넣어도 어색하기는커녕 감흥만 넓어진다면 그건 사랑이 삶을 말하는 대표 형식이어서 그렇다.

올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엔, 라이너스의 담요가 미니앨범을 발매했는데, 그건 하얗게 으스러져버린 지난 계절들에 위로가 됐다. 지난 4월 어느 날부터 뒤바뀌어버린 시간들. 새로 핀 꽃과 나무 그리고 한가득 퍼진 온기보다, 되돌리기 불가능해져버린 사건이 앞서던 그 시간들. 라이너스의 담요는, 인디뮤지션 연진의 (지금은) 일인밴드다. 하지만 그간의 많은 연주자들을 빼고 그 음악을 떠올리긴 힘들 정도로 (줄여서) 담요는 밴드음악이다. 복고적인 장르들에다 굴절시킨 아기자기한 멜로디와 달콤한 무드를 보여줘왔다. 트레이드마크는 바뀌지 않은 채로 이번 앨범은 보컬 멜로디와 연주의 밸런스가 정말 훌륭하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파묻히지 않는다. 꿈결 같지만 낭만인 것만은 아니다, 듣기 편하지만 세세한 곳들을 챙겨 들으면 포착될 표현력과 감수성이 무수하다. 개인적으론 담요 최고의 음반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지극히 편협한 방식으로 음악가를 지칭하던 ‘인디계의 여신’이란 용어는 어느새 실제 여성 뮤지션들의 성장과 변화에 밀려 더욱 우스꽝스러워진 느낌. 연진을 포함해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앨범을 내는 ‘여신’들의 음악을 들어볼수록 한 해 두 해 그들의 변화와 깊이를 실감한다. 비록 현실의 시간에는 듬성듬성 이가 빠져있고 어떤 계절은 때로 윤기 없이 흐르다 잘린다 해도 이런 음악이 상처투성이인 세상에다 대신 일상적 사랑의 실을 잣는다. 당신이 담요의 노래로 잠시나마 행복해진 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어느새>의 다음과 같은 가사도 나와 함께 불러볼 수 있기를. ‘이름 한 자도 모르는 사람을/왜 그렇게 그리워했는지/더 천박해지지 않을 수 있으면/ 돌아오는 여름에는…’

그리고 우리가 이 해의 계절이 기이하게 돌고 돌아 다른 시간의 타래로 덩치를 불리는 것에 겁먹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생각한다. 곡명에서 뮤지션 이름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그러다 그/녀의 음악이 있던 시절에다 그/녀의 이름을 적어 붙이는 일에 대해. 라이너스의 담요가 음반을 발매할 무렵,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에는 26년차 뮤지션 신해철이 출연했다. 지난 초여름 그는 정말 오랜만에 신곡을 발표했다. 이어 총 네 곡이 담긴 음반이 공개됐다. <A.D.D.a>라는 곡은 《Reboot Myself Part.1》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았다. 그가 연마한 온갖 음역대의 목소리가 각 구간을 빼곡히 채워 아카펠라로, 댄서블한 록음악을 완성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미 솔로와 밴드를 넘나들며 쌓아온 음악성에, 영향력 큰 라디오 디제이였다는 이력을 포함시켜야만 제대로 이해되는 아티스트다. 6년간의 공백기를 충실히 보낸 그는 다시 ‘시동을 걸어’ 자신의 작업들이 쌓아온 색채를 전문화하겠다는 목표, 이 나라 중견 음악인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지닌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꿈도 갖고 있는 듯 했다. 특유의 단단한 음성엔 흥분과 성찰이 교차하고…그러다 이렇게도 말했다. 자신은 이젠 데뷔 초기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는 뮤지션이 아니지만 만약 그렇게 날카로운 감각에만 집중했더라면 ‘지금의 기술이나 마인드, 그리고 하트를 잃었을 것’이라고. 그와 팬들이 생활인으로서도 음악에 기대어 나누고 고민하고 버티고 좌절하면서 앞으로 밀어온 시간들이 그의 이름으로 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새삼 주어진 듯한 고마움. 그러니까 모두의 건투 덕분에 그 모두가 해프닝이 아닌 지속될 사건도 되는 것이다.

다음 해는 어떤 기쁘거나 아픈 일이 벌어질까. 한 가지, 새로움은 기성의 것들이 무엇을 잊었고 남은 것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반응으로서 ‘대중’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바야흐로 TV는 신인 발굴 음악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절이라, 우린 또 한 번 ‘옛날 노래’의 생명력에 놀라게 될 텐데, 나는 얼마 전 그 참가자들이 새로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며 한동안 무언가 망각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서글픔이 머문 많은 사람들의 얼굴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