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 한국 영화판의 으뜸 특징 중 하나는 그 단명성이다. 몇몇 흥행 성공작들을 제외하면, 국적을 불문하고 대부분은 개봉한 뒤 2주도 버티지 못한 채 관객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며, 심지어는 그 흔한 기억의 창고에조차 머물지 못한 채 아예 잊히곤 한다. 이른바 ‘광역 개봉’(Wide Release)이 규범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첫 주 스코어가 보잘 것 없거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단명성은 한층 더 확연해지기 마련이다.

<왕의 남자>를 연출했던 이준익이 감독하고 두 ‘국민배우’ 안성기, 박중훈이 주연한 <라디오스타> 역시 그런 운명을 겪을 뻔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선보인 화제작치고 전국 21만 명(www.film2.co.kr 박스오피스 집계 참고)은 극히 초라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특히 한가위 흥행전의 최종 승자인 최동훈 감독의 <타짜>가 같은 기간에 전국적으로 116만 9천여 명을, 그 전 주에 개봉된 <가문의 부활>은 그보다도 8만 명 많은 125만 여명을 동원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초라함은 더욱 도드라졌다.

대물지상주의ㆍ한탕주의가 대세로 굳어진 이 땅의 배급ㆍ상영 풍토 속에서 <라디오스타>가 100만 선을 돌파하는 건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이나 다름없었다. 현실은 그러나 달랐다. 저널 및 평단의 폭넓은 지지에 관객의 성원까지 가세해 영화는 무려 6주 동안이나 박스오피스 10위 권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이 지나는 시점인 지난 11월 27일까지 187만 여명이라는, 단연 주목할 만한 성적을 일궈냈다. 그러니 어찌 ‘조용한 파란’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라디오스타>의 (영화)문화적 의의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거창한 감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 생명력이다. 상영관 확보는 말할 것 없고, 설사 확보했더라도 유지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 현 영화 풍토를 상기한다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끈질긴 생명력!

위에 언급했듯 그 생명력은 물론 관객의 힘에 의해 가능했다. 대중이 으레 좋은 영화를 선택ㆍ사랑하는 건 아닌데다 늘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번엔 달랐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 <왕의 남자>처럼 관객들은 혜안을 발휘해 배급 및 마케팅 등 여러 측면에서 절대적ㆍ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영화에 남다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로써 하마터면 이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을 영화를 ‘구원’해냈다.

이렇듯 ‘입소문’으로 대변될 관객의 힘을 바탕으로 텍스트 외적 즉, 산업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는 건, <라디오스타>의 또 다른, 아름다운 문화적 의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였을 게다. 개봉 17일 만에야 겨우 100만 고지를 넘었음에도 제작사(아침)가 “1천만 같은 100만”이라 자평한 까닭은.

그 어느 것 못잖게 눈길을 끄는 영화의 문화적 의미는 그 동안 대다수 우리 영화들에 결여되어 왔던 덕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채플린의 걸작 코미디에서 목격되곤 하는,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 등 극소수 예외 말고는 국산 코미디 영화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던, 그 유머 어린 짙은 페이소스다. 당장 안성기, 박중훈이라는 두 '위대한' 배우의 표정에서부터 그 페이소스가 우러난다. 그것도 강렬히. 도저히 잊을 수 없을, 크나 큰 감격, 감흥을 듬뿍 안겨주면서.

자꾸만 변질ㆍ상실되어만 가는 세상의 모든 인간, 모든 사물, 모든 현상에 바치는 꿋꿋한 찬가인 이 영화는 무엇보다 그 페이소스로서 다분히 진부한 감이 없지 않은 스토리나 다소 과하게 비칠 수도 있을 일말의 극적 감상주의, 때론 작위적으로 비치기도 하는 플롯 등의 한계들마저도 미덕으로 승화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고픈 <라디오스타>의 문화적 의의는 영화가 선사하는 폭넓은 정서적 공감대와 영화의 전 층위에서 감지되는 어떤 진심과  진정성이다. 영화는 새삼 환기하고 확인시킨다. 우리 영화,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덕목들은 다름 아닌 그 공감대, 그 진심과 진정성이란 것을. 감사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