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탁(본명 김동기)이 창작 · 연출한 연극 <황소, 지붕 위로 올리기>(극단 아름다운사람)가 학산문화원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2005년에 처음 시행된 제1회 함세덕희곡상 가작 당선작으로, 실직한 남편과 학교 교사인 아내 사이의 사소한 실랑이를 다루고 있다.

복장전도(transvestism, 이성의 옷으로 바꿔 입기)라는 극적 관습은 오랫동안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이의 한 변형인 ‘남녀의 역할 전도’는 현대에 와서 페미니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잔소리 많고 소심한 남편과 털털하면서도 유능한 아내 사이의 실랑이 또한 조일재의 <병자 삼인>(1912년) 이래 한국 연극사의 단골 레퍼토리다. 이번 연극은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에 가깝다. 모처럼 경주 불국사 여행을 떠난 부부는 여행길 마디마다 갖가지 난관을 만난다. 자동차가 고장나는가 하면, 갓길에 주차했다가 교통 위반 딱지를 떼이기도 하고, 고교 시절 수학여행 차 떠났던 불국사 여행의 좌절에 대한 기억들이 겹치면서 혼선을 빚기도 한다. 고교 시절 불국사 여행에 실패했던 것처럼 이번 여행도 실패할 것이라는 예감에 시달리면서도 부부는 덜컹거리며 불국사에 다다라 간다.

인생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생의 끝은 죽음뿐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의미는 인생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이것을 이 연극과 관련지어 말한다면, 이들 부부의 불국사 여행은 그 의미가 불국사에 있는 게 아니라, 불국사에 이르기까지의 도정에 있다. 이들 부부의 싸움은 사소하면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부부싸움과 화해 사이의 끝없는 반복은 마치 까뮈(Albert Comus)가 말한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부조리한 것이다. 시시포스는 바위를 높은 산 위로 끌어올리지만 그 바위는 결국 원점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 연극에서 아내는 황소처럼 미련한 남편을 지붕 위로 끌어올려보지만, 역시 남편은 다시 지붕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원점으로 되돌아간 바위를 다시 끌고 가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이들 부부는 그들만의 바위를 껴안고 덜컹거리며 인생이라는 길 위를 걸어가야 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 이번 연극은 덜컹거리는 로드무비에 가깝고, ‘유쾌한 부조리’의 연극에 가깝다.

배우 윤여성과 송희정은 연륜 있는 배우답게 남편과 아내 역을 다양하게 포착했다. 목소리 배우 출신인 안장혁은 1인 다역의 연기를 통해 단조로울 수 있는 이 연극의 무늬를 새롭게 그려냈다. 안장혁의 연기는 연극은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듣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김광탁의 희곡 「오장환과 이성복이 만나면」(「한국연극」, 2005. 9)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는 사소하고 무의미한 일상에서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불구가 된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장애인 청년의 꿈과 사랑을 그려낸 이 작품을 읽으며, 이 작가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며 매사를 낙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긍정적인 시각이 어설픈 타협으로 끝날 때, 연극에서 보여주는 화해와 희망의 메시지는 거짓일 수 있다. 부부간의 사소한 실랑이만으로 관객을 이끌고 가는 작가의 극작술은 놀랍고 신기하지만, 그러한 재미가 연극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인천 남구 인하대 후문에 자리한 학산문화원 소극장은 이제 본 궤도에 올랐다. 학생, 주부 등 자생적인 관객들이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 참으로 훈훈하고 정겨웠다. 기초 지방자치 단체에서 동사무소 내에 연극 공연장을 만들고, 상시 공연을 해내고 있는 것은 이곳 인천 남구만의 자랑일 것이다. 전국의 모든 동사무소에 연극 공연장이 만들어지고, 이곳을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통해 서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꿈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인천 남구청과 이곳의 문화인들은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05년 인천 남구청과 인천문화재단, 학산문화원의 노력으로 어렵게 탄생한 ‘학산젊은연극제’와 ‘함세덕희곡상’이 내년에라도 다시 출범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