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의 불확실성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도 최근 불안정해지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핵실험 이후 북한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매우 차가와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북한을 주적으로 보던 냉전적인 관점이 90년대 이후 ‘동족’이라는 긍정적 방향으로 바뀐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상반된 입장을 둘러싼 혼선은 때로 개인의 사회인식을 분열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세대간에 날카로운 대립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요즈음 논란이 되는 ‘남남갈등’이라는 것도 그 바탕에는 이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과연 북한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새삼스레 제기된다.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으면서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기 방식을 고수하려는 북한, 보편적 근대문명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숭배의 사회체제를 비난하기는 쉬워도 그들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인 찰스 암스트롱의 저서 <북조선탄생>(The North Korean Revolution)은 북한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발견되는 특수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봄직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반세기 전 과거사를 탐구한 연구서이지만 바로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현재의 북한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재적 문제의식이 뚜렷한 책이라 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북조선의 형성은 동구권 사회주의 정권 수립 과정과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저자는 동구권이 ‘형식은 민족주의, 내용은 사회주의’였던 것에 반해 북한은 ‘형식은 사회주의, 내용은 민족주의’였다는 말로 그 차이를 설명한다. 북한정권은 출범 당시부터 사회주의 이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요소들, 예컨대 신전통주의라 부를 수도 있는 위계적 사회계급화, 사회개혁을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언사로 강조, 가족 중시 이데올로기, 원시적 도덕성의 강조 등은 이러한 저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부분들이다. 한마디로 북조선의 형성을 뒷받침한 논리가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앞세운 사회주의 이념이었다기보다 ‘프롤레타리아트 민족주의’라 할 만한 북한적 논리였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북한의 체제형성과정에 불가피한 요소로 활용되었던 문화적 요소들이 현재의 북한의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보는 듯하다. 공산주의적 산업화를 위해 소련의 모델은 물론이고 민족주의적 야망과 전통적 유산들, 심지어 일제의 관행까지 독특하게 결합되었던 점을 저자는 주목한다. 지식인들 역시 유교적 전통이나 가부장적 관습들을 폐기하려하지 않았다. 인민들의 평등이 주창되는 한편에서 ‘옳은 사상’에 의한 지배층의 계도적 역할이 강조되었고 ‘문화의 생산과 구성’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강조되는 만큼 문화영역에 대한 정치적 압력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북한사회의 조밀한 통제와 감시를 가능케 한 배경이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그는 북한식 감시체제가 일제의 식민잔재와 소련의 영향력 및 전통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며 사상교육과 탄압, 사찰과 상호감시 등은 그로 인해 탄생한 감시사회의 특징이다.

김일성 개인숭배 역시 스탈린주의, 일본의 천황숭배, 기독교 유교적 가족주의가 결합한 것으로 저자는 파악한다. 김일성은 보편적 가부장으로 등극하였고 김일성 가족은 유일하게 경배해야 할 조상이 되었으며 일종의 국가적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부모, 국가, 김일성에 대한 충성은 상호 연계되고 서로의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이 되었고 어머니로서의 여성성을 활용하는 상징부호로 구성되었다. 이 글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전통적인 것이 파괴되지 않고 사회주의 건설의 문화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던 초창기의 역사과정이 사회주의 체제의 전면적 붕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사회원리가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는 비밀을 설명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흥미 있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 현재적 함의에 대한 입장은 불분명하다. 그는 북한을 이해하자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형성된 체제의 속성이 북한 주민과 현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적 지혜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소련주도가 아닌 ‘주체적’ 사회건설임을 강조하는 것은 탈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북한체제의 고집스러움을 부분적으로 설명해 주지만 그러한 과정 자체가 신화적인 가부장적 민족담론이나 일제 식민지 잔재마저 활용할 정도의 것이었다면, 또한 초기부터 보안의식을 내면화해야 할 정도로 개체성을 억압하는 감시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오늘 북한사회의 주체성이나 강고한 자기중심성을 평가하는 시선은 좀더 비판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저자는 외부 요인이 크지 않았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같은 시기를 똑같은 ‘북조선혁명’이란 개념으로 포착하되 소련의 외부 영향을 더욱 중시했던 박명림의 연구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설득력 있는 비판을 담고 있지 않아 두 입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적한 흥미로운 설명이나 주장들은 앞으로 좀더 엄밀한 자료와 비교론적 논증을 거친다면 북한 사회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20세기를 해명하는데 유익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사회에 대한 진지한 연구서는 그 시각과 방향이 어떠하든 많을수록 좋으며 진지한 독서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북핵 사태가 불러온 정치사회적 위기의식이 진지한 연구와 토론을 통해 북한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남북한의 신뢰와 한반도 평화 이행의 길을 앞당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