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시에 낯선 존재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배웠고, 매체들은 끊임없이 ‘북한’을 운운하지만 우리는 정작 북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혹자들은 그 이유로 “북한 놈들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라며 북한의 변덕스러움을 탓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는 우리의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의미할 뿐이다. 적어도 한 국가가 50년이 넘는 세월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고 예측할 수 있는 그들만의 일상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영진의 『평양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북한의 일상을 쉽게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그 동안 주적으로 혹은 통일의 파트너만으로 대상화되어 온 북한을, 경수로 건설 사업차 1년 반 동안 북녘 땅에 머물렀던 경험을 발판삼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평양의 일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한계를 지니고는 있지만 그의 시선 속 북한은 비교적 솔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 속에는 ‘왕따’가 존재하는 북한의 교실 모습에서부터 장마당이나 오토바이의 물결 등 변화하는 북한 거리, 다시 되살아난 명절풍습과 남한의 드라마 등 황색바람에 서서히 익숙해져가는 북한 사람들의 의식까지, 우리와 다른 사회에서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의 이야기 방식이 만화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작가는 항상 딱딱한 텍스트로만 접해야 했던, 혹은 <똘이장군>과 같은 무시무시한 반공만화로밖에 접할 수 없었 던 북한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시대의 무거움을 덜어놓았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통해, 이 땅에 산다면 누구나 알아야 할 북한의 일상을 쉽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기존의 시각처럼 남북의 차이를 비교하여 그 우위를 따지지 않는다. 통일 등에 대해서도 시대적 부담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그의 관점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우리와 다른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두 체제의 공존을 위해 옳은 일임을 주장한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맹목적인 이해보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것이 비록 때로는 언쟁을 일으킬지라도 충실히 나의 의견을 표현하여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더 빠른 치유의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에 매우 충실한 만화 속 주인공은 매번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때로는 민감한 문제까지 북한 사람들과 말다툼을 벌인다. 특히 「아! 아리랑」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대담함은 독자를 아연실색케 할 정도다. 평양의 거의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만큼, 북한 체제가 그토록 공을 들이는 아리랑축전에 대해서도 주인공은 ‘노력동원’이라는 표현과 함께  “이제 정말 그런 것 좀 안했으면 좋겠네요” 라며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뱉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군사독재 시절 북한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집단응원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남한의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북한은 계속해서 아리랑축전의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그 일사불란함을 자랑하지만, 정작 남한의 구성원에게는 카드섹션 도중 소변이 마려워도 움직이지 못하는, 집단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한 것이다. 물론 주인공의 대사가 곧 작가의 실제 경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남북이 추구하는 가치의 우열을 논할 수는 없어도 서로가 느끼는 불편함은 공유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상호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두 체제가 하나를 꿈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소통이 필요한 과정이며,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다양성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과정이다. 딱딱한 교과서에서나 존재했던 북한을 교화나 대립이 아닌 나와 다른 소통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킨 오영진의 『평양프로젝트』는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는 냉전의식을 치유하는 큰 발자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