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야구 100년> 자료전이 열렸다. 늦었다 싶기는 했으나, 일단은 이런 전시회를 기획하는 분이 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었다. 야구 전래 100년 기념으로 재작년에 『인천 야구 100년사』가 출간된 바는 있으나, 일찍이 ‘구도(球都) 인천’에 이와 같은 유품, 기념물 전시회가 열린 적은 없었다.

옛 경기 장면 사진 한 장, 주인공들의 이름 석 자가 적힌 공 한 개, 낡은 글로브, 땀 묻은 유니폼들이 간직한 인천 야구 역사는 그대로 시민 모두의 감동이요, 애향심과 긍지의 원천이 될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회의 개막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었다.

더구나 인천은 한국 야구의 남상(濫觴)이라 할 만큼,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한성기독청년’ 회원들에게 전수했다는 1905년보다도 앞선 1899년에 ‘인천영어야학회’ 학생들이 야구 게임을 했다는 기록을 보유한 야구 선구지가 아닌가. 1920년대 이래 일제에 대항하면서 그 요원히 흘러내린 웃터골 야구의 물줄기는 또 얼마나 장했던가.
생각나는 대로, 저 웃터골의 주인공 곽상훈(郭尙勳, 1896~1979) 의장으로부터 유완식, 김선웅, 박현덕, 그리고 홈런왕 박현식의 모습, 이덕영, 이기상, 신인식 투수의 모습, 김진영, 김광택, 진원주 선수들이 떠오른다. 더불어 귓속에는 1950~60년대 활화산 같은 야구도시 인천의 열광과 도취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전시회는 기대에 썩 미치지 못했다. 이 인천 최초의 야구 자료 전시회가 인천 야구 한 세기를 옹골차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같은 사실은 포효하듯 울려퍼지던, 인천 야구의 활화산 같은 함성이 이제 사위었구나 하는 씁쓸한 느낌으로 전해졌다. 

한산한 전시장과 오자(誤字)가 보이는, 고증이 덜 된 자료들, 더구나 한국 최고(最古)의 야구도시에서, 그것도 처음으로 열린 자료전의 주최자가 인천야구협회가 아닌 한국장애인야구위원회라는 사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자료수집과 전시에 수고를 한 장애인야구위원회의 공로만큼은 기려 마땅하지만, 그렇다면 전문 협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가 하는 회의가 있었다.   

또 하나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자료가 체계적이지도 또 충분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천 야구 100년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하기에는 많이 부족했고, 그에 맞는 역사적 평가도 안목도 배열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교정이야말로 전문협회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프로야구에 관련된 근래의 자료는 어느 정도 갖추었다 하더라도, 1950년대에 ‘하이키킹’ 투구 폼에서 불같은 강속구를 뿜어내 전국을 열광시켰던 동산고등학교의 명투수 신인식의 경우 기록은 물론 사진 한 장이 없는 상태였고, 한국전쟁 후 숭의야구장을 정비해낸 인천 스포츠계의 높은 산맥 정용복(鄭龍福, 1910~1977)의 기록 한 줄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소루(疏漏)한 부분이 이것뿐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들어 주최자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부실한 전시회를  관람하러 온 시민들, 학생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그냥 덮을 수도 없는 일이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사설 단체인가, 인천야구협회인가. 또 실제 자료의 부족과 공백은 누가 끝내 감당해야 할 몫인가. 제주도 야구박물관에 상당한 수의 인천 자료가 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많은 자료들이 인천의 야구 명문 학교들, 혹은 당사자 개인이나 수집가들에 의해 각각 분산 보관되고 있다면, 이런 자료들을 취합해 영구 보존할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 인천야구협회는 벌써 상설전시관을 마련했어야 했다는 점, 그래서 분산된 자료를 아우르고, 유출되고 멸실되지 않도록 거두었어야 했다는 점을 차제에 지적하고 싶다. 더구나 장애인야구위원회는 이번에 전시한 자료들을 보관해둘 ‘수장고’ 하나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최초의 야구 도입 사실 외에도, 한국야구사의 상당 부분은 인천 야구 역사의 부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앞에 거명한 분들이 한국 야구를 짊어지고 온 사실만으로도 이미 인천 야구의 토양에서 한국 야구가 많은 양분을 길어올린 바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인천 야구의 크기와 긍지가 이만할진대 ‘인천 야구 100년 기념관’ 하나를 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천 야구의 사화산(死火山)이나 확인하는, 긍지도 사라지고 열광의 함성도 사윈 ‘인천 야구계’는 정녕 아닐 터인데 말이다.

이번 <인천 야구 100년> 자료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흡한 것이었지만 이 같은 시사를 통해, 값진 각성을 우리에게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