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당신도 울었을 것이다. 혹은, 울게될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뜨거운 박수였다. 더는 이들을 관객이라 볼 수 없었다. 말하자면 열렬한, 영화 <비상>의 서포터즈였다. 필름포럼(서울 종로구) 단관 개봉, 그러나 소문만으로 3만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영화 <비상>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전기성적 2승 3무 7패. 부임해온 장외룡 감독이 세운 목표 7승 3무 2패. 이 기적 같은 수치의 반전을, 세상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영화는 훌륭하게 일궈냈다. 아마도,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일군 다큐멘터리는 처음일 것이다. 한국영화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건 그야말로 비상사태라고,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나 역시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단의, 그리고 영화 <비상>의 열렬한 서포터즈가 되어 있었다. 인유 파이팅! 장외룡 파이팅! 임중용 파이팅! 김학철 파이팅! 권혁준 파이팅! 오만석 파이팅! 임유철 파이팅! 모두 모두 파이팅!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감동이다. 낯설다. 혹은 매우 오랜만이다. 왜일까? 라고, 낙원상가 옆골목 순댓국밥 집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이 뜨거운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모두 울고야 말았을까? 비로소 뭉클해진 가슴 속에 소주 두어 잔을 흘려보내며 생각했다. 인천이 말이야… 당구만 짠줄 알았더니… 술국을 뜨며 동행한 서형이 중얼거렸다. 소금 간에 그만 새우젓까지 듬뿍 얹은 술국이 짜고 뜨겁게 식도를 타고 넘는다. 징하고, 진한 국물이다. 진한 것은 언제나 짜고 뜨겁다. 땀도, 눈물도, 인생도.   

라돈치치란 용병이 포함되어 있긴 해도(‘siba’라는 말까지 한다면 그도 이미 한국인이다), 영화는 완벽한 한국의 이야기다. 한국의 프로축구 리그, 그중 최하위였던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다. 한국인이므로,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감동이 낯설었다. 아마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실은 그래서 우리는 더 뜨겁게 운 것이다. 안 그래요, 서형? 하고 내가 물었다. 물 묻은 젓가락으로 얼굴 하나를 쓱싹 그리며 서형이 눈을 흘겼다. 뭐가?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아도 인유는 모르잖아요. 그러게. 그나저나 장감독 얼굴 같냐?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한국에 감동하지 않는다. K리그에 감동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에, 나 자신에게 감동하지 않는다. 감동하기가… 힘들다. 그건 아마도, 이미, 우리가 세계 레벨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서,일 수도 있고, 저 찬란한 월드컵 4강, 그런 걸… 또 인터넷 초강국이랄까, 모쪼록 세계화의 물결에 배를 띄운 지도 오래고… 해서 아무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 그런 거지, 뭐. 주목과 감동의 대상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지 인유가 아니었다. 스타는 유럽으로 진출하고, 유럽으로, 못 가 안달이고, 잠도 안 자고 중계를 보고, 즉 세계 정상의 축구에 익숙해지고, 유학을 가고, 이민을 가고, 능력이 안 되면 어학연수라도… 어떻게… 가서, 명품을 싸게 구입 할 수 있는 곳… 혹시 아세요? 

말하자면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 왠지 그러고 보니 찌질한 듯도 하지만, 그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AC 밀란의 경기도 볼 수 있는 우리, 동영상으로 다시 보기도 할 수 있는 우리, 지성이의 활약을 잘 봤지만 또 아침엔 출근해야 하는 우리, 하지만 K리그는 시시해서 안 보는 우리, 세계 4강에 한 번 든 적이 있는 우리, 잘하면 또 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미국의 미개봉작도 다운로드해버리는 우리, 뭔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 기분이 드는 우리, 그러나 원서를 들고 뛰어다니는 우리, 벼룩시장의 구인란을 뒤지는 우리, 해도 되는 일 없는 우리,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우리, 어깨를 나란히 할수록 어깨가 처지는 우리, 그런 우리, 그런 우리에 대한 감동에   말하자면 우리는 낯선 것이다. 낯설어진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우리가 우리를 주목하지 못하게 된 건. 왜일까? 우리가 우리에게 감동할 수 없게 된 건. 개인전을 앞둔 서형이 홀짝 소주를 넘기며 웃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해.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은 풍경’이라 말하거든. 실은 풍경이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건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랬다. 실은 풍경이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진하디 진한 진실. 짜고 뜨거운, 그리고 낯선!

영화 <비상>이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것은 그런 우리의 아름다움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주목할 리 없는, 뭐랄까 각이 안 나오는, 그림이 될 리 없는, 더군다나 영화화될 리 없는, 안타까운,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그저 풍경이라 여겨온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진하고, 징하고, 뜨거운… 그러나 대접 한 번 받지 못했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놀라워라. 우리의 삶이 이토록 뜨겁고 감동적인 것이었다니! 이토록 드라마 같고 영화 같은 삶이었다니!

그러니 당신 주눅 들지 마. 제발 고개 떨어드리지 마, 우린 피눈물 흘린다(인유 서포터즈의 플래카드에 적힌 문장이다)고, 영화 <비상>은 우리를 붙잡고 흔들어준다. 펑펑 급기야 울고 마는 우리를 서포트해준다. 스타와 조폭과 재벌이 진을 친 스크린의 빗장수비를, 묵묵히 단독 드리볼로 돌파해 공을 띄워준다. 이제 공은, 영화를 본 모두의 가슴으로 넘어왔다. 마음껏 느끼자. 그리고 날아오르자. 정말 서러운 일은, 이 질펀한 삶의 가치와 감동을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이 느낀 그대로 우리의 삶은 영화보다 아름답다. 땀과 눈물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비상>은 그런 우리의 자화상이자 기록이다. 뜨겁게 날아오르자, 비상이란 이름의 비상구를 향하여. 그리고 더는 고개 떨어뜨리지 말자. 삶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선수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