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관심
코리아문고는 센다이(仙臺) 시청과 미야기현(宮城縣) 현청과 5분 거리에 위치하는 빌딩 9층에 있습니다. 수요일 오후 1시 반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며 자그마한 도서실 겸 교실로 들어온 한 학생이 제자리에 앉자마자 책 말고 먼저 과자점 이름이 찍힌 포장지를 끄릅니다. ‘자 어서들 드세요’ 하는 그는 여유만만합니다. 수요일은 한국어교실이 있는 날인데 그가 예습 복습을 충분히 해왔고 오늘 실시될 ‘복습 시험’도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요. 다른 한 학생이 ‘오늘도 시험을 봐야 되나요?’ 라며 교과서로부터 과자로 시선을 옮겨 항의하지만 다들 미소로 묵살합니다.

이 교실에 다니는 학생들은 오랫동안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코리아문고가 문을 열자 참석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자유로움뿐만 아니라 그 한계도 잘 아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시험이나 숙제가 독학에서 맛볼 수 없던 어학공부의 즐거운 부자유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가다가 ‘시험은 그만!’하고 싶은 것이 ‘정상적인 학생’의 반응이겠지요.

지금 이 교실에서는 40대에서 70대 후반까지 비교적 연령층이 높은 일본 여성들이 공부하고 있고 2년 전 일본에 시집온 한국인 여성 한 분도 틈 날 때마다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지만 말이 안 통하니까 선생님 설명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여기 오니까 모르는 말은 한국말로 다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제가 막낸데, 말씀 좀 낮추세요”라며 수업 끝나면 찻잔 씻고 뒷정리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인 학생들은 한국식 예의를 접하게 되고 어학 공부 이상의 문화적 자극을 주고받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신문 잡지를 통해 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입니다. 한국을 직접 체험하고 싶었던 남편이 ‘부관(釜關) 페리’에 몸을 싣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 서울, 여수를 혼자 자전거로 여행했을 때가 1971년이었습니다. 그 때 일본어를 아는 분들로부터 한글을 배웠는데, 언어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시민 차원의 한일교류가 중요하다는 것도 통감했다 합니다. 그 후 우리는 한국에 20년 정도 살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센다이, 숲과 배움의 도시
코리아문고가 있는 센다이(仙臺)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직행)로 두 시간 정도, 도쿄(東京)에서는 북쪽으로 약 300㎞, 신칸센(新幹線)으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합니다. 인천과 거의 같은 위도에 위치하는 센다이는 바다에 면해 있기 때문에 연평균기온이나 강우량도 인천과 거의 같습니다. 주변지역을 합병하여 현재는 인구 100만으로 토호쿠(東北) 지방에서 제일 큰 도시가 되었으며 또 바다와 산이 가까우므로 신선한 해산물과 야채 등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곡창지대 안의 소비도시라는 점에서 한국의 광주와 비슷하고 그 자매도시이기도 합니다. 시가지에는 공원이 많고 가로수도 정비돼 있어 ‘숲의 도시’라 일컬어져 왔고 최근에는 ‘건강 복지 도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관광지를 보면 센다이 해안 50㎞ 반경 내에는 ‘일본 3경’의 하나인 마쯔시마(松島)가 있고 산에는 스키장으로 유명한 자오오(藏王), 그리고 아키우(秋保), 나루꼬(鳴子) 등 오래된 온천들이 있습니다. 8월 초에 개최되는 ‘타나바타마츠리(七夕祭)’는 매년 200만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전국 규모의 축제입니다. 그 밖에도 봄에 열리는 ‘아오바 축제’, 가을의 ‘재즈 페스티벌’이나 ‘요사코이 춤 축제’ 등이 있습니다. 갈수록 관광상품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모두 시민들이 자주적으로 참여하여 개최하는 축제입니다. 

1600년 아오바(靑葉) 성이 축성된 후 형성된 도시가 1889년 센다이시의 기원입니다. 1907년 토호쿠(東北) 제국대학의 개교는 센다이시가 근대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호쿠제대는 일본에서 세 번째로 만들어진 대학입니다. 이곳이 ‘배움의 도시(學都)’라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도쿄제대와 교토(京都) 제대가 국가관료 등 인문계 엘리트 양성에 그 목적을 두었다면 이 대학은 처음부터 산업발전을 짊어질 이공계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여 산업용 기계나 무기 개발에 필요한 금속연구소를 중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의 유학생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토호쿠제대의 전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다녀간 루쉰(魯迅, 1881~1936)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문학에 뜻을 두고 귀국을 결행했습니다. ‘환등기 사건’1) 루쉰이 센다이 의학전문학교 재학 시절, 수업 시간에 본 슬라이드필름에 충격을 받고 귀국한 사건. 필름에는 동포의 죽음을 둘러서서 무덤덤하게 구경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잡혀 있었고 루쉰은 거기서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꼈다. -편집자 주이라는 부정적 계기가 결정적이었습니다만, 「후지노(藤野) 선생」 같은 글에는 국적이나 인종적 편견 없이 학문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학자 상이 잘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개인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청년 루쉰의 고뇌가 잘 드러난 이 작품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후 30년 뒤 토호쿠제대에 유학왔던 김기림(金起林, 1908~?)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센다이와 한국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면서 코리아문고 친구들과 같이 고민해보고 싶은 과제입니다.

떠난 지 30년 만에 돌아온 센다이. 이제는 고향인데도 낯선 땅이 되었습니다만, ‘자유와 평등 속에 우애하는 열린 도시’ 인천과 센다이 시민이 행복하게 만날 날을 꿈꾸며 노력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