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전문대 입구에 도착한 날, 흐린 안개 속에서 체육관이 보였다. 멀리 안개 속에서 이 건물을 보았을 때의 첫 인상은 반구의 돔 지붕 위에 여의도의 쌍둥이 빌딩 두 채를 뿔처럼 얹어놓은 것 같았다. 이 건물이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철거된다고 한다. 건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과연 흉물스럽다는 게 철거의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좀 의아했다.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 흉물스러운 것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잇 같은 요란한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은 빌딩들. 성냥갑 같은 무채색의 아파트들. 국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모방 건축물 등.

‘흉물스럽다’는 말을 들은 순간 프랑스 여행 갔다가 보았던 어떤 건물이 떠올랐다. 유리창이 다 깨지고 벽엔 금이 가 있던 그야말로 폐가와 다름없던 지방의 곡물창고. 그러나 그 안에 들어서자 상황은 달라졌다. 건물 안에는 여느 멀티플렉스 못지않은 훌륭한 극장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곡물창고를 극장으로 이용하는 발상의 전환, 꽤 신선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체육관을 둘러본 느낌을 정리해보았다. 출입문에 다가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아라베스크 무늬를 띈 커다란 창들. 높은 천장, 관공서에서 흔히 불 수 있는 녹색계열의 페인트칠 등, 그 때만 해도 건물에 대한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몇 군데 돌아다니면서 건물 내부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벽을 장식한 기하학 무늬의 창들은 단단한 무쇠로 만든 것으로 마치 철옹성을 연상케 했다. 이 건물을 세운 전 선인재단 이사장이 군 장성 출신이라는 점에서 군부의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건물 앞에 놓여있는 방어벽 같은 벽돌 구조물과 무쇠로 된 창, 인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대 등. 건물을 들여다볼수록 머릿속에서 “권력”과 “전쟁”이라는 테마가 떠올랐다. 높은 조망대 위에 서 있는 군사령관. 무쇠로 된 창가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사병. 우르르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장교들. 이 공간의 기운은 설계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물의 규모나 건축자재 등 여러 요소들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세트로 현실감 있게 재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체육관이지만 본래 용도와 달리 전쟁 영화나 정치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건물 내부, 체육관은 그 자체가 훌륭한 세트장이다. 일단 돔 형태의 천장에 수많은 관중석들. 여러 가지 테마로 활용될 수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은 경기장으로 통하는 선수 출입구. 이곳에 다가서자 글러브를 쥔 채 출전하는 권투선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출구를 통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들만의 신화를 이루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모퉁이를 돌자 요즘 건물에서 보기 힘든 천장이 높은 복도가 보였다. 흰 벽에는 폐곡선 모양의 이상한 창틀이 놓여 있었고 복도 끝에는 낡은 철문이 있었다. 마치 정신과 병동이나 교도소를 연상케 하는 공간. 당장이라도 철문을 열고 프랑켄슈타인이 튀어나올 것 같아 으스스했다.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단상일 뿐이나 어쨌든 인천 전문대 체육관은 영화세트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영화를 찍으면서 실물의 촬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돈을 들여 세트장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건물들이 철거됐기 때문에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블록버스터 규모의 예산을 들이지 않는다면 아예 제작을 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60- 80년대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이런 대형건물들이 점점 사라지는 게 영화인으로서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인천전문대 체육관은 군부정권 시절 사학비리 재단에 의해 만들어진 불온한 건물이므로 보존의 가치를 내세울 어떤 명분도 없다. 그러나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낡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부수고 새로운 걸 짓겠다는 발상이야말로 불온한 것은 아닌지. 그것은 대한민국이 아직 군부독재 시절의 개발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다. 정작 우리가 부숴야 할 것은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인 개발우선의 경제논리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건물은 죄가 없다. 건물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이 건물 역시 사학재단으로부터 시민들의 손에 넘겨진 순간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체육관이 꼭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시민들을 위한 복지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