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미술시장에 인도바람이 거세다. 경매시장에서 중국현대미술이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가운데, 서구거대자본은 블루칩으로 부상한 인도현대미술로 손길을 뻗고 있다. 경매가 기준 상위 12위 안에 드는 제3세계 작가 중 1~3위를 차지한 중국작가들 다음으로 인도 작가들이 4~6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작품가격은 지난 2년 사이 14배나 뛰었다.

이 열풍 속에서 한국에도 인도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혼성>展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06과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기획한 <인도현대미술전: 헝그리 갓Hungry God>부산시립미술관, 2007의 개최는 인도현대미술의 한국 상륙을 알렸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중국현대미술 열풍을 주도했던 아라리오 갤러리는 일찌감치 인도의 젊은 작가 탈루(Tallur L. N.)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의 개인전이 3월에 아라리오서울에서 열렸다. 탈루는 인도에서 회화와 박물관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즈메트로폴리탄(Leeds Metropolitan)대학에서 유학했다. 그리고 현재 대구와 인도 쿤다푸르(Kundapur)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사실 인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18~19세기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서구자본은 그들이 보아왔던 것과는 현저히 다른 이국적인 요소를 현대적인 요소와 적절히 배합한 작품을 원한다. 여기에 철학적 배경과 개념적인 탄탄함을 갖추었다면 금상첨화다. 이국적이고 독특한 것에 대한 요구는 탈루의 작품에서 보이는 인도적 아이콘과 부합한다. 고대문명의 발상지 인도가 고고학적인 형태, 세밀한 수공예 스타일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는 유물보존처리방식을 빌어 오래돼 보이는 낡은 질감의 형상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는 박물관학을 전공한 탈루의 이력과도 연관이 있다. 박물관 수집품 관리시, 수시렁이를 활용해 해골을 처리하는 방법에서 착안하여 흰개미가 갉아먹은 나무로 만든 조각 <알츠하이머스Alzheimer’s>는 인도적 아이콘으로 읽힐 수 있다.

인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조금은 거칠지만 직설적으로 시각화해 발언하던 초기 작업에 비해, 전시된 작품을 포함한 탈루의 최근작은 좀더 상징화되고 은유적인 양상을 띨 뿐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매끈하고 장식적인 이미지로 변화해 나갔다. 이러한 변화는 시장의 흐름에 대한 대응이자, 그 경계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한편 탈루는 작품과 함께 텍스트를 병치해서 보여준다. 거식증(anorexia), 식도역류(esophageal reflux), 폭식증(bulimia) 등은 그의 작품이나 텍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탈루의 작품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현대사회의 욕망과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인도사회의 혼란과 부조리, 종교와 관련된 우화, 정치적 풍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욕망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매끈하고 화려한 표면에 이질적인 재질의 형상을 덧붙이고, 비판적인 텍스트를 배치해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현실을 함축하는 것이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표정으로 신문지를 강간하고 있는 호랑이 조각 <페이퍼 앤 타이거Paper and Tiger>, 은색의 똥을 힘겹게 배설하고 있는 코끼리 조각 <이서퍼지얼 리플럭스Esophageal Reflux PartⅡ>는 이러한 역설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거대한 욕망에 대한 작가의 공포심은 말린 코코넛껍질과 흙으로 만든 <행오버Hangover>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글로벌리즘의 일상적 작동방식은 여타의 동시대 작가들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화두다. 인도사회 내부의 종교, 계급, 이주, 식민, 근대화, 산업화, 고도성장, 분쟁과 같은 복잡한 문제가 글로벌리즘과 충돌해 발생하는 혼돈은, 탈루 작품의 분열을 야기한다. 또한 성(性)과 속(俗), 내세와 현세, 토착문화와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인도의 문화적 다원성과 얽히면서 그 분열의 스펙트럼은 더욱 확대된다. 욕망의 여러 얼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텍스트와 조각의 독자적 조합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거대자본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가득한 작품이 시장에 나가 히트상품이 되어 돌아온다. 새로운 얼굴, 작품을 찾아 헤매는 서구 자본은 결국, 비판과 성찰마저도 먹어치우고 마는 것인가? 일부 작가들은 세계미술시장의 활황과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자본이 무엇을 보고싶어 하는지, 그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를 잘 알고 기민하게 대응한다. 작품의 유통시스템은 결국 작가를 스타로 만들고, 작가는 그에 영합해 왜곡된 가치를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탈루는 시장에 영합하기 위해서보다는 글로벌리즘 속에서 역으로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인도적 아이콘을 내세운 것이 아닐까? 탈루의 행보에 주목하고픈 이유는 이 가능성 때문이다.

과연 ‘인도적인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인도적인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에 대해 탈루는 어떤 지점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혼돈으로 가득한 현실 속의 인도와 박물관에 박제된 ‘인도적인 것’, 탈루는 그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만간 개관할 아라리오 뉴욕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시험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