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9일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의 274회 정기연주회는 지휘자 첸 주오황(陳佐湟)의 음악적 카리스마를 실감할 수 있는 인상적인 무대였다. 시벨리우스(J. Sibelius) 1865~1957의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이번 음악회에서 인천시향은 첸 주오황의 지휘 아래 전보다 한층 생기 있고 힘찬 연주를 들려 주었다. 진지한 태도로 성실하게 연주에 임하는 단원들의 표정에서 지휘자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감을 읽을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에 있어 지휘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천시향은 지난해 9월부터 중국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첸 주오황을 상임지휘자로 영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1966년 창단 당시 상임지휘자 김중석에 의해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은 인천시향은, 1984년에 국내 지휘계의 대부 임원식을 상임지휘자로 맞아 들여 그의 강력한 리드 하에 국내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인천시향은 1994년부터 10년간 상임지휘자 금노상 시대를 맞이하여 연주레퍼토리를 크게 늘리고 찾아가는 연주회 등의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해 안정된 조직으로 성장해 나갔다.

이제 초기 안정화 시기를 거쳐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는 인천시향은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중국의 첸 주오황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첸 주오황의 취임 이후 지휘자의 음악적 카리스마와 친화력 있는 성품을 조화시킨 중용적 리더십에 힘입어 인천시향의 연주회는 청중의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특히 이번 정기연주회는 각별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음악회는 북유럽의 거장 시벨리우스의 서거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음악회로서 한 작곡가의 음악세계에 집중하는 학구적인 면모와 기획력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출신의 민족주의 작곡가로, 그의 작품은 음악적으로도 뛰어나지만 핀란드의 독립운동을 여러 나라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휘자 첸 주오황이 시벨리우스의 서거 50주년을 계기로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집중 조명한 것은 단순히 위대한 작곡가의 서거를 기념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작곡가인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통해 같은 동양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악단과 중국인 지휘자 간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첸 주오황은 첫 곡으로 연주한 <교향시 핀란디아>(op.24)에서부터 마지막 <교향곡 제2번 라장조>(op.43)에 이르기까지 확신에 찬 지휘로 단원들의 음악적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며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 주었다. 특히 우정은의 협연으로 연주된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op.47)에서는 독주자를 배려하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세심하게 이끌어가는 그의 섬세함이 돋보였고, 후반부에 연주된 <교향곡 제2번 라장조>(op.43)에서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그의 열정적인 음악해석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관현악법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동시대의 낭만파나 국민악파 교향곡들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다지 큰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현악파트의 색채감이 뛰어나 해외에서는 인기있는 레퍼토리에 속한다. 첸 주오황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보잉(bowing)운궁법(運弓法)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인천시향 현악파트는 전보다 한층 충실하고 생기 넘치는 음색으로 시벨리우스 음악의 아름다운 스트링 사운드(string sound)를 잘 표현해 냈다. 아직까지 금관악기의 음정과 앙상블에 아쉬운 점이 많았고 목관악기의 어택(attack)성악과 기악에서, 음을 발생·지속·소멸의 세 단계로 나눌 때 발생 부분 이 잘 맞지 않는 등 관악파트의 문제는 남아 있지만, 이제 새로운 상임지휘자 체제 하에 유능한 악장과 파트수석을 영입하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해 나간다면 인천시향의 사운드와 앙상블능력은 서서히 개선되리라고 믿는다.

첸 주오황은 지난해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향의 경우처럼 대대적인 오디션과 단원교체를 통해 조직의 구조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지금의 단원들과 함께 기획과 운용의 묘를 살려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혁과 독재보다는 안정과 친화력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성장기를 맞이한 인천시향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 우리는 첸 주오황 시대의 인천시향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