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우주소년 아톰>의 만화가로 알려진 데즈카 오사무(手塚治?)1928~1989의 ‘전쟁’소재 첫 전시회가 도쿄에서 열렸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후 일본만화사의 선구자로, 만화작법에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극작술와 비극적 결말을 처음 도입해 중층적 이야기 구조의 스토리만화1컷 또는 4컷으로 된 만화에 대해 여러 페이지로 이야기를 갖춘 일본의 만화형식, 코믹이라고도 함를 완성했다. 그림의 기법에 있어서도 영화기법을 차용해 그림 전체가 약동하듯 기운넘치게 만들었고 같은 주인공을 여러 작품에 중복활용하는 이른바 스타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인물의 동글동글한 윤곽이나 여자주인공의 눈을 크게 그린 것도 데즈카 오사무가 처음이었다. 한편, 1963년 <철완(鐵腕) 아톰(Atom)>을 일본의 첫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너무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하는 바람에 이후 일본애니메이션 제작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 받는 등, 후대 만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데즈카 오사무의 이번 전시는 스스로 만화인생의 원점이었다고 밝힌 그의 전쟁체험과 관련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첫 기획전이다. 700편이 넘는 그의 전체 작품 수에 비해 전쟁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은 단편 중심의 17편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다뤄지지 않은 주제였다는 점에서 전시의 의미는 깊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쟁을 그가 보고 느낀대로 일으킨 권력을 고발하며 그 아래 뒤틀려가는 인간을 그렸다. 불행하게도 이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우리를 향하고 있다. 특히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개정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데즈카 오사무가 전하는 메시지는 특별한 울림을 준다.

전시는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입구 통로 양쪽 벽에는 테즈카 오사무가 태어나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의 사진자료와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전시실 안에는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 전시체제와 전후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이 당시를 묘사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다음 방에는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그린 전쟁만화원고들이 전시되어 있고, 끝방에서는 그의 행적을 담은 만화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전시실의 작품을 둘러보고 나니 1945년 데즈카 오사무가 학교를 다닌 오오사카(大阪)에 공습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이 풍요롭게 다가왔다. 부모와 교사들이 모두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을 좋아하는 후원자였고, 집 둘레 울창한 숲은 곤충들과 만나는 놀라운 우주였다. 그는 5학년 무렵 곤충수업에 몰두하며 곤충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데, 곤충도감에서 오사무시먼지벌레의 일종라는 이름의 벌레를 발견하고는 원래의 이름 오사무에 무시를 더하여 오사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에 열중하고, 친구들과 함께 곤충연구반과 과학연구모임을 만들어 곤충과 교감하는 세계에 더욱 심취한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중학교 때 만든 곤충도감인 『원색갑충도보(原色甲蟲圖譜)』에 실린 곤충그림이었다. 곤충도감 한쪽 면에는 무당벌레 같은 곤충들이 줄을 맞춰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데즈카 오사무의 진지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만고만한 곤충들의 색과 형태를 구분해서 그려내기까지 그 조그마한 녀석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을까? 그것은 섬세한 관찰력이나 손재주만으로는 안 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강제훈련이라는 억압적 현실에 내몰렸던 시절인데도 그의 내면에는 생기로 충만한 세계가 이뤄져 있었던 것이다. 뒤에 올 끔찍한 전쟁을 겪는 동안에도 이 내면의 세계는 현실을 극복해가는 든든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데즈카 오사무 만화의 원점인 전쟁체험은 생명이 충만한 내면세계와 파괴적 외부체험의 결합체였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생명존중의 메시지가 새삼 무게있게 느껴졌다.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그린 전쟁만화 원고(?) 11편이 전시되고 있었다. 자신의 전쟁체험담을 그린 『종이 성채(紙の砦)』,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휘두르는 폭력과 그것에 중독되어가는 인간을 고발한 『아돌프에게 고함(アドルフに告ぐ)』 등 사실적인 소재로 전쟁을 고발한 작품이 한 부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미래 또는 판타지 세계에서의 전쟁을 소재로 생명존중과 지구멸망을 경고하는 등 보편적 주제에 초점을 둔 작품도 반 정도 있었다. 그런데 이 보편적 주제의 작품들로 인해 데즈카 오사무의 전쟁관이 미처 다 드러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는 유일한 군대만화로 남부섬에서 적과 싸우던 일본군들이 스스로 분열하는 내용의 『식인골짜기의 결전(人食岬の決戰)』과 전투에서 실종된 병사를 전사영웅으로 만들었다가 그 병사가 돌아오자 다시 전장으로 보내는 군대권력을 비판한 『추락기(墜落機)』, 전장을 벗어나 숨어지내는 탈영병과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특수고등경찰을 다룬 『제피루스(ゼフィルス)』, 그리고 전쟁 중 시골마을 사람들이 헌병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그 헌병대는 공습으로 죽어 마을이 기묘한 평화를 맞는 이야기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동명 동화를 상하 2단으로 나누어 동시에 서술해 간 『똘배(やまなし)』 등 사실적 소재로 전쟁을 다룬 작품들이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진정성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가 데즈카 오사무의 ‘전쟁’에 초점을 맞추었던 만큼 좀더 작품을 잘 선별했더라면 그의 전쟁관이 더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데즈카 오사무가 보여준 따끔한 역사의식의 메시지를 보편의 이름으로 한 겹 둘렀거나 아니면 차마 보기가 아파서 외면하고 말았거나 하는 기획의도가 엿보이는 것 같아 전시장을 나오는 뒤끝이 불편했다. 전시를 기획한 쇼오와칸(昭和館)이 원래 역사인식 배제를 원칙으로 쇼오와시대의 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곳이라니 그들에게는 이미 자연스러운 편집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작업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히로히토 일왕 생전 경축일이었던 생일 4월29일이 사후에 ‘초록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올해부터는 슬그머니 ‘쇼오와의 날’이 되었다. 전후 부흥과 재건의 시기였던 쇼오와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으면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이웃나라들에 드리웠던 쇼오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처 간 불균형 해소 등을 이유로 새해 벽두부터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하고, ‘아름다운 일본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임기 중 헌법 개정을 선언하는 아베총리의 변(辯)도 마찬가지다. 한 곳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에게 데즈카 오사무의 진지한 경고에 귀기울이기를 바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에, 전시장을 나서는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