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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진실’ 속에 가려진 진실들
통권 : 03 / 년월 : 2007년 5,6월 / 조회수 : 1901
-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7)

▨ 진실이 동반하는 불편함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진실 한둘 쯤은 가지고 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보다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불편함’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들은 종종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회피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스 구겐하임(Davis Guggenheim)이 감독하고 앨 고어(Al Gore)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은 환영할 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편치 않은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영화에서 다루는 ‘불편한 진실’은 지구온난화다. 2000년 대통령선거의 패배 이후 앨 고어가 전세계를 돌며 천여 회에 걸쳐 했던 강의들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지구 온난화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경우 큰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이라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문제이고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와 그것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명 우리에게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잘 지적하고 있듯 어떤 집단에게 이 문제는 더 불편할 수 있다. 가장 낮은 효율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면서도 이 현실을 부정하려는 집단, 즉 미국의 지배집단이 그들이다.


영화의 주된 목적은 거짓 신화를 창조하며 자신들의 반환경정책을 정당화하려는 미국의 석유·자동차 산업과 이들과 유착한 미공화당정부로 하여금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들려는 데에 있다. 그 전략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들의 각성과 의식화를 통해 정책변화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이를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영화는 한 편의 훌륭한 지구과학 강의이자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비평적 성격도 지닌다. 간간이 유머도 섞여 있어 보는 이의 재미를 더한다. 이 과정에서 앨 고어는 풍부한 통계자료와 각종 그래프, 애니메이션, 영상화면 등의 비주얼(visual)까지 곁들여 지구온난화와 그것이 불러온 재앙을 에누리 없이 보여준다. 불과 10~20년 사이에 녹아내린 히말라야, 안데스, 알프스 등지의 빙하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남극과 북극의 얼음대륙, 그리고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묘사 앞에서 관객은 벌거벗은 채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라는 불편한 진실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더 많은 불편한 진실‘들’을 가리고 있기도 하다. 앨 고어는 두 해 전 미국 남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지구온난화와 연결시키지만, 허리케인이 1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던 배경에 인재(人災)가 있었다는 또다른 불편한 진실은 우회한다. 미국의 반환경정책을 재생산하고 있는 석유재벌들과 공화당 사이의 유착에 대한 폭로는 효과적이지만, 미국이 지구온난화에 관한 교토의정서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관한 의정서 의 비준을 거부한 것이 자신의 부통령 재임시절이었다는 또다른 불편한 진실은 가린다. 부시와 공화당, 그리고 그들의 반환경적정책에 대한 비판적 태도 뒤에는 과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억울하게 패배했던 그의 개인적 경험이 불편하게 또아리 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정보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유익한 영화다. 무엇보다 앨 고어가 거듭 주장하듯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대면하는 과정은 그동안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더 많은 복수의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혹자들은 앨 고어가 이 영화를 발판으로 다시 정치전선의 전면에 나서려는 것이 아닌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혹시 그렇다면, 그때 가서 그를 비난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지평을 넓혀주고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곱씹게 만들어준 그에게 박수를 쳐줘도 될 것 같다.




#저자 약력
金善哲 1969년생. 컬럼비아 대학 박사과정.
sk840@columbia.edu

글쓴이 : 김선철
작성일 : 200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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