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배다리.우각로

인천근대사에는 개항장의 역사만 있고 개항장 바깥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개항장으로부터 시작된 도시라 그렇겠지만 이 때문에 전통 구심지(관교동)가 위상을 잃어버렸다. 1899년 11월, 제물포와 노량진 간 경인철도 개통이 결정적 원인이다. 철도부설은 전통도시를 해체하고 근대도시를 개발하는 기본전제다. 따라서 인천 또한 철도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가 재편되는 진통을 겪었다. 부평도호부를 중심으로 하는 구도심권은 부평역의 공업단지와 상업지구에, 문학산 아래 인천도호부는 인천역과 축현역 부근 개항장에 그 위상을 빼앗긴 것이다. 그리하여 경인철도 남부 개항장 지대에 이식문화지역중구 북성동, 관동, 항동, 송월동, 중앙동, 송학동, 신생동과 전통문화공존지역신포동, 용동, 내동, 경동, 전동이 형성되었다. 그 북부는 조선인 이주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문화온존지역금곡동, 창영동, 송림동, 화수동, 만석동이다.

최근 인천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훼손된 개항장 문화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자장면의 원조 공화춘과 옛 일본지계의 일본인 가옥 복원,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설립과 만국공원 복원사업 등이 추진되었거나 추진 예정으로 있다. 그런데 이 작업들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인거리에 공자상과 패루를 세우는 등 사이비 이식문화 복원에 열을 올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청라지구와 송도신도시 간 산업도로 개통을 위해 배다리·우각로역사문화공간을 훼손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배다리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배다리는 배다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명 자체가 자연스럽다. 배다리시장 입구와 지금의 송현초등학교 부근까지 배를 댈 수 있어 배다리로 불렸던 것이다. 지명의 유래만큼이나 배다리문화도 자연스럽다. 배다리시장은 일제 때 인천으로 일자리를 찾아 온 조선인 노동자들에 의해 형성된 공간이다. 시장은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옷가지와 양은솥, 과일 따위를 내다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확장되었다. 이곳의 헌책방거리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경인도로인 우각로는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시작하여 알렌별장현 예루살렘교회 앞길까지 우각리(牛角里)쇠뿔고개의 특성인 쇠뿔 모양을 그대로 살린 도로이다. 그런데 이곳이 산업도로 개통으로 잘려나갈 위기에 처했다. 목전의 이익만 앞세워 폐쇄했다가 결국 수십 배의 비용을 재투입해 복원한 수인선 사례를 되새겨볼 일이다.

3.1운동의 산실, 인천공립보통학교
배다리.우각로는 근대교육의 산실로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초등학교와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영화초등학교의 전신은 존스(George Heber Jones) 선교사 부부가 1892년 4월에 세운 매일학교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초등교육기관이다. 남학교와 여학교가 별도로 운영되었으나 1970년 남학교인 영화국민학교가 폐교되면서 여학교인 샛별초등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 영화초등학교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화초등학교가 배출한 인물은 한국 최초의 여대생 김애리시, 최초의 여성박사 김활란, 이화학당 이사장 서은숙, 이화여대 사범대학장 김애마, 이화여대 음대학장 김영의, 영화배우 황정순, 노동운동의 대모 조화순 등이 있다. 또한 1916년 영화초등학교 안에 인천 최초로 조선아동교육을 위한 영화유치원을 개원하여 지역민에게 유아교육에 관한 관심과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11년 9월 건축한 존스기념관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04년 한말 애국지사 정재홍(鄭在洪)?~1905이 우각리에 천기의숙(義塾)인명의숙(仁明義塾)의 전신을 설립했다. 인천 신상협회(紳商協會), 미상협회(米商協會) 등 유력사업가들로부터 의연금을 모아 학교를 운영했다. 또한 학부에서 사립학교 대신 공립학교 설립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하는 의미로 의무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1907년 조선 아동을 위한 인천 최초의 공립초등교육기관인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가 세워졌다. 1919년 3월6일, 이 학교의 3· 4학년이 주축이 되어 인천공립상업학교 학생들과 연합, 4일간의 동맹휴학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본경찰은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만세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교직원에게 정보보고를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3월7일부터는 인천지역 전체에서 만세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어서 3월8일 밤 9시에는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 4인김명진, 이만용, 박철준, 손창신이 학교 2층에 올라가 전화선을 자르고 전화기를 박살내기도 했다. 이 일로 김진명은 1년 6개월, 이만용과 박철준은 태형 90대, 손창신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인천공립보통학교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은 학생과 기독교인들의 만세운동, 개항장 주변 조선인상점의 철시항의, 황어장터 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인천공립보통학교는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학교로 발전했다.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 고유섭, 대법원장 조진만, 서울대학교 총장 신태환, 국회부의장 김은하, 좌익운동가인 이승엽 등이 그 대표자들이다. 1921년 건축한 본관 교사는 1992년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국철도와 기독교신학 발상지, 우각로와 우각역
1899년 제물포, 노량진 간 경인선 개통으로 한국근대철도가 시작되었다. 1897년 3월 미국인 모오스(James R. Morse)가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경인선철도 부설권을 따내 그 기공식을 우각리에서 가졌다. 2년 6개월 후 개항의 최후 상징인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350명의 노동자를 모아 공사를 시작했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공사는 지연되었고 모오스는 100만 달러에 이를 일본인에게 매각했다. 원래는 우각역현 도원역을 거쳐 독각다리현 숭의로타리 서쪽 부근를 경유, 사동현 인천여상 남쪽에 종착역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일본인 지주들의 강력한 반발로 우각역-축현역-인천역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현재 도원역 부근 근린공원에 한국철도의 발상지가 이곳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있다.

한편 배다리· 우각로는 한국 기독교신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1897년 선교사 존스는 인천, 강화, 황해도 연안 등 한국의 서부지방 선교를 위해 근거지 마련이 필요했다. 1895년 멕시코 은달러로 600불을 들여 우각리 38번지와 42번지 일대를 매입했고 1897년 7월 뉴욕 감리교 감독인 휴즈 목사의 재정지원을 받아 벽돌조 1층 건물인 에즈베리 목사관을 세웠다. 에즈베리는 감리교 창시자 웨슬러 목사의 지시로 미국에 파견된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이다. 존스의 강한 선교의지를 담은 명명이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자립예배당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했다. 에즈베리 목사관을 통해서 인천, 강화, 황해도 연안, 남양, 부평, 부천, 영종 등지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한국 최초의 신학월간지 <신학월보>가 1900년 이곳 우각리 에즈베리 선교기지에서 발행되었다는 것이다. 선교사 존스가 발행인으로 순한글 신학잡지였다. 서울 냉골에 협성신학교가 세워지기 전 한국 기독교신학의 기초를 정립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인천노동운동의 기원, 조선인촌주식회사
인천은 일본인 자본가들이 가장 먼저 들어와 공장을 세운 곳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따라서 조선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대 배다리당시 금곡리에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최근까지 있었던 피카디리극장 자리가 있었는데 일본인의 성냥제조공장으로 전국보급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노동착취에 분노한 직공 150여 명이 1921년 3월 21일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이것이 인천지역 노동운동의 발호가 되었다. 1926년 4월에는 회사의 부당한 임금삭감 조치에 대해 남녀노소 직공 200여 명이 동맹파업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일본경찰의 개입으로 이틀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1931년 8월, 여직공 170여 명이 회사의 임금인하 조치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의미로 동맹파업을 진행했다. 남직공의 작업까지 불가능해지자 회사 측이 굴복하여 종전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1932년 이승엽, 김삼룡이 주도한 적색노조 운동이 확산되면서 조선인촌주식회사 직공 360명이 임금인상,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동맹파업을 했다.

인천근현대사의 보고, 배다리.우각로를 지키자
배다리· 우각로는 개항장과 더불어 인천근현대사의 보고다.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길인 동시에 인천의 근대교육, 기독교, 노동운동의 산실이며 인천지역 민중의 역사적 의지가 담긴 장소이다.  배다리· 우각로를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개설은 연결이 아닌 단절을 의미한다. 배다리· 우각로는 개항기에 서울과 제물포를 연결하는 개방적 장소로 지금도 그 기능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의 의도적 방해로 우각로 선교기지인 남선교사 기숙사현 인천 세무서와 여선교사 기숙사 사이 소방도로를 개통함으로 이전의 선교기지가 갖고 있던 열린 장소성이 상실되고 별개의 공간으로 분할되었다. 길이 잘못 놓였을 때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도 말했듯 이곳은 인천 유형문화재 세 개가 존재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이 공간이 담고 있는 역사적 가치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배다리· 우각로만이 간직하고 있는 정겨움과 은은함도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인천시가 보호는커녕 배다리· 우각로를 가로지르는 산업도로를 개설하겠다고 하니 한편으론 우습고 다른 한편으론 두렵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국가지정 유형문화재의 경우는 반경 150미터, 지방 문화재의 경우 반경 100미터 내의 건축이나 도로개설공사를 규제하고 있다. 인천시 조례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상위법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