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청은 구청 앞을 지나는 중앙동 1가와 2가의 상가건물 14동을 일본풍으로 리모델링했다. 설명에 따르면, 이는 일제시대 일본인의 주거지이자 상가였던 현 중구의 관동, 중앙동, 해안동 일대를 복원해 낡은 도시풍경을 개선하고, 인근의 차이나타운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삼는 구도심재생사업이다. 그런데 총 3억 6천만 원이 투입된 이 사업이 최근 언론에 보도되어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도시경관조성사업과 관련된 대표적 실패사례로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 사업과 관련된 쟁점은 재현대상과 재현방법에 대한 것으로, 지역개발이란 미명 아래 식민지유산인 일본식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 재현된 건물들은 과연 인천의 일본조계지 내에 존재했던 일본상가 건축양식에 충실한가라는 점이다. 이러한 쟁점은 비단 인천뿐 아니라 타도시에서도 일제시대의 근대문화유산을 보존·복원할때 제기될 수 있다. 

일본식 상가건물을 재현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특정 국가와 관련된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해방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가 남긴 식민지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도 영유권 문제나 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한일간의 갈등이 산적해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일제시대의 유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논리는 적어도 현재의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식민체험 콤플렉스로만 치부하기도 곤란하다. 우리가 과거에 체험한 모든 사건과 우리 앞에 남아있는 모든 유물을 역사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일체의 가치를 상대화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일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몰역사주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와 ‘역사’, ‘유물’과 ‘유산(전통)’은 구분되어야 한다.    

넓게 보면 수치스런 역사와 연관된 부정적 문화유산이라도 보존할 가치가 큰 경우가 있다. 송파의 삼전도비(三田渡碑)는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가 조선 인조의 항복을 기념해 1639년 세우게 한 청태조의 전승공덕비로, 우리에겐 치욕스런 역사적 유산이지만 이를 보존하는 목적은 우리가 지난 역사적 사건들을 기억하며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폴란드가 유태인학살의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 경우는 해당 문화유산의 기원이나 그것을 보존하는 목적과 의도가 투명하다. 중구 일대에 현존하는 인천부청(仁川府廳)이나, 일본제1은행, 제58은행, 제18은행 등을 복원하여 일제의 금융제도나 식민지수탈 관련자료를 수집·전시 하는 사업은 근대금융사나 민족사적 의미를 지닐 수 있겠지만, 일본상가와 주택을 외관만 ‘아름답게’ 치장해 놓고 이를 일제 수탈의 역사교육 장소라고 강변한다면 우리에겐 이중의 수치다.

인천의 경우 일본상가와 주택의 보존 혹은 복원은 그 자체로 특화하지 않고 개항장 일대를 문화사적 맥락에서 조망할 때 의미있는 문화적 사업이 될 수 있다. 식민도시에서 출발한 근대인천은 경제적 수탈의 창구였고, 동시에 근대문물이 조선으로 전파되는 입구였다. 서로 다른 근대문화가 교통하고 공존했던 다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질적 문화는 일본과 청국 그리고 각국 조계지라는 구획된 공간에서 경쟁하고 뒤섞이며, 근대식민지 주체인 우리 문화와 결합되었다. 오늘의 한국인의 의식과 몸에는 이러한 근대적 문화융합의 결과가 의연히 남아 있다. 개항장은 한국인에게 근대적 시간의식, 주택과 건축, 음식과 생활문화의 실험실이었던 셈인데, 그러한 문화적 변동을 보여주는 유산들이 바로 인천에 집중적으로 분포 되어 있다.

요컨대 개항장이었던 현재의 중구 일대는 다문화 공존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근대를 성찰하고 근대이후를 기획하는 데 소중한 역사적 장소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 조계지와 일본식 건축물은 그러한 다문화성의 맥락 속에서 분명히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중구 일대에 현존하는 일본풍 건축물에 대한 보존 혹은 복원 정책은, 개항장의 다문화성 보존과 복원이라는 큰 기획 속에서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중구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본거리조성사업은 일반적인 보존이나 복원이 아니라 테마화를 위해 건축물과 가로변의 외관만 일본풍으로 장식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재현된 건물들은 일본풍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치명적 한계를 지닌다. 1차사업 대상 중, 조계구역 계단 입구 건물을 제외하면 원형을 보존한 것이 없다. 대부분 벽돌과 콘크리트 건물들이다. 일본식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콘크리트 건축 외벽에 구리기와를 붙이고 목재를 덧대는 기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했는데, 그 결과 재현된 건물들은 개별적 특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동일한 색조와 외관으로 통일된 공동주택처럼 되고 말았다. 또 기와지붕은 빗물막이를 위한 게 아니라 외벽 장식물에 불과하게 되면서, 가파른 물매 때문에 한옥 맞배지붕의 풍판(風板)처럼 벽체에 어색하게 매달려있다. 구리기와를 사찰이 아닌 상가건물에 적용한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구리기와의  붉은 색 반사광은 새로 조성된 일본거리를 차이나타운의 일부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거리조성사업은 무질서한 간판들을 정비하고 낡은 건물들을 말끔히 단장함으로써, 중구청 앞길의 경관을 개선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일대의 장소적 가치를 오히려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사례는 서울 북촌 일대의 한옥마을조성사업에서도 벌어진 바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기와 지붕만 올린 가짜 한옥들로 인하여 한옥의 가치와 한옥마을조성사업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사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중구청은 개항장 일대에 현존하거나 멸실된 근대건축물이 인천과 한국의 중요한 문화자원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인천 문화계는 중구청이 추진한 일본거리조성 1차사업뿐 아니라 차이나타운조성사업, 청일조계지 계단조성사업 등에 대해, 문화유산의 보존이 아니라 훼손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본상가건물을 재현할 때도, 그 대상을 주요 구조부가 목조이며 일본 특유의 지붕구조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 제한할 필요가 있으며, 업종이나 사후활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파사드(facade)만 일본풍으로 눈가림한 건물에서 중국 문화상품을 팔고 있는 모습으로 방문자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최근 관광자원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지방자치단체마다 ‘장소만들기’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있는데,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만 보려는 편협한 시각이 문제다. 문화유산을 지속적인 문화창조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매개이자 상상의 원천으로 보고 그 창조적 가치에 충실할 때,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일 수 있다. 또한 막연한 향수나 동경을 빌미로 과거의 유산이나 장소를 복원하는 태도도 지양해야 한다. 과거의 사건이나 인공물에 대한 무차별적인 향수는 로웬달(Leo Lowenthal)이 말한 ‘고통이 제거된 기억’이다. 이런 유물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공동체의 현재나 미래와는 무관한 과거지향적 향수이며,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한 이른바 ‘위생처리된 유산’에 탐닉하는 일종의 페티시즘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조성된 아우라(aura) 없는 거리가, 장소감각을 상실한 도시 생활자들의 소외된 감각을 자극하여 일순간 눈길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나, 모든 세트장의 운명이 그렇듯이 결국은 버림받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