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반란1이 발레로 만들어진 동기는 구소련의 사상적 배경과 밀접하다. 부패한 귀족에 저항한 실존인물 스파르타쿠스의 일화는 혁명을 미화하기 위한 소재로 탁월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선과 악의 대립은 동화의 갈등구도이기도 한 만큼 처음의 인위적 의도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며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발레가 되었다.

국립발레단이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발레시어터(Novosibirsk State Academic Opera and Ballet Theatre)와 합동으로 4월 20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스파르타쿠스>는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turian,1903~1978)2 작곡, 유리 그리가로비치(Yuri Grigorovich,1927~)3 안무로 1968년 초연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이미 2001년 8월에 <스파르타쿠스>를 한국 초연한 바 있는데, 유리 그리가로비치와 그 직계 제자들이 직접 내한해 지도하고 전문적 지식을 갖춘 지휘자가 초청되는 등 깊이 있는 재연이 이뤄졌다. 이번 합동공연에서는 무용수 충원이 큰 장점이었다. 사람 수로 무대를 채워야 밑그림이 완성되는 작품의 특성 상, 로마군과 스파르타쿠스군이 위풍당당한 면모를 과시할 때 흥미로운 대결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초연 당시, 이 부분이 결정적 약점이었으나 이번에는 두 배로 늘어난 남성무용가들이 로마군, 스파르타쿠스군을 열연하여 활력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러시아 단원들이 주로 로마군을, 한국 단원들이 주로 스파르타쿠스군을 맡아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다. 

<스파르타쿠스>의 줄거리는 다른 발레처럼 다분히 동화적인 구도다. 로마군이 스파르타쿠스가 사는 트라키아(Thracia)를 침략해서 그와 부인, 그리고 동족들을 노예로 삼는다. 부인 프리기아(Phrygia)는 노예로 팔리고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가 되는데, 우연히 크라수스(Crassus) 장군 집에서 만나게 된다. 귀족들의 여흥에 불려나가 검투로 동료를 죽인 스파르타쿠스는 깊은 회한의 독백 후 반란을 일으킨다. 크라수스를 공격하여 승리하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보내준다. 그러나 곧 크라수스의 복수가 전개된다. 그의 애첩 예기나(Aegina)가 술과 여자로 스파르타쿠스 진영을 무기력하게 만든 후 크라수스 군대가 공격해 스파르타쿠스를 죽인다.

이 과정에서 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여타의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성미의 연출로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악의 편인 크라수스의 로마군대 행진을 보며 감탄하고 심지어 선의 편인 스파르타쿠스가 창에 찔리는 장면에서 박수를 터뜨리기도 한다. 이런 고유의 시각적 효과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가 지닌 인기의 비결일 것이다.

이번 무대에서 국립발레단의 기량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발레시어터가 최정상급 단체가 아닌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단원들은 주역, 군무에서 최선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국립발레단의 경쟁적 열의와 더불어 러시아 단원들의 몸에서는 모든 동작이 걸러져 우러나왔다. 이 작품을 30년 동안 공연했다는 예술감독의 말처럼 너무나 익숙해서 누구보다도 자신감 있는 기량을 펼치는 숙련된 몸짓이 여유로웠다. 이런 특징은 특히 스파르타쿠스 역을 맡은 로만 폴코브니코프(Roman Polkovni-kov)에게서 부각되는데(4월24일 화요일 공연), 경력 3년째인 스무 살의 젊은이가 지닌 연륜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프리기아 역 안나 오딘쇼바(Anna Odintsova) 역시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다.
착한 커플과 대립하는 악한 커플은 이영철과 윤혜진이 맡았다. 기원 전 로마인의 감성을 지닌다는 것은 한국의 젊은이에게 매우 낯선 작업이다. 크라수스 역 이영철에게 어설픈 면이 없지 않았지만 로마 장수의 체격을 닮은 남성무용가라는 장점이 모든 아쉬움을 덮어버렸다. 윤혜진 역시 1991년 김주원이 연기했던 예기나를 연상시키며 계략에 뛰어난 고급 창녀 역을 도전적으로 소화해냈다. 마치 청순가련형 발레리나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벗으려는 듯 매 순간 적극적으로 배역에 몰입했다.

국립발레단은 최태지 단장 재임시절(1996~2001) 유리 그리가로비치로부터 <스파르타쿠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을 전수받아 레퍼토리로 삼았다. 다른 두 고전은 해석본이 많지만 <스파르타쿠스>는 안무자가 생존해 있는 보기 드문 명작이자 원작이다. 향후 더욱 완벽한 해석으로 계승의 가치를 높이기 바라며 국립발레단의 색깔이 녹아있는 <스파르타쿠스>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