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덕(崔榮德)1의 장새납 2 독주곡집 <열풍(熱風)>을 들으니 오래 전 북한 전통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아마 19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남북의 전통음악인들이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공연평을 써달라는 신문사의 부탁을 받고 그 자리에 갔었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당혹스러운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나의 기준에서는 전혀 ‘전통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들고 나온 악기도 전통악기가 아니었다. 북한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는 옥류금(玉流琴)을 비롯한 대부분의 악기들이 개량악기였으며 그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북한 가수들의 노래 역시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국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음악은 낯설기는커녕 오히려 친숙했다. 나의 음악적 감수성에서 볼 때 그것은 경음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김세레나류의 대중가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종류의 음악을 워낙 많이 들어서인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당혹스러웠던 것은 북한 음악인들이 이것을 ‘민족음악’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개념이 낯설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만난 최영덕의 <열풍>은 다시금 그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장새납은 북한에서 태평소를 개량해서 만든 악기이다. 금강산가극단의 작곡가 정상진이 쓴 해설을 보면 북한은 196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국악기를 개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주체적인 경지에서 민족의 음악예술을 발전시켜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바로 ‘주체적’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이른바 주체적인 민족음악의 확립을 위해 벌인 국악기 개량작업이 과연 정말로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진행해 온 우리나라의 국악기 개량사업도 마찬가지다. 국악기를 개량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와 북한이 내세운 기준은 비슷하다. 기존의 5음계만 내던 악기를 7음계, 12개의 반음을 모두 낼 수 있는 악기로 바꾸어 조바꿈과 화음연주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음역도 넓히고 음량도 크게 하여 서양악기와 비슷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이것이 국악기 개량의 기본 방향인 셈이다.  

이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열풍> 앨범에는 <그네 뛰는 처녀>, <회양 늴리리>, <룡강 기나리>와 같은 기존음악 외에 보로딘(Alexander Borodin,1833~1887)의 <타타르인의 춤>, 흑인영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1873~1943)의 <보컬리즈Vocalise> (op.34) 같은 서양음악도 들어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인들이 가야금으로 연주한 파헬벨(Johann Pachelbel,1653~1706)의 <캐논Canon>이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의 <교향곡 제5번 다단조 (운명)>(op.67)을 자랑스럽게 음반에 싣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뒤에 숨어있는 서양음악에 대한 비주체적인 태도를 읽는다. “봐라. 우리 악기로도 이렇게 훌륭히(?) 서양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도대체 우리 악기가 12개의 반음을 모두 낼 수 없기 때문에 낙후되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한 악기의 표현력이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음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유아적인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도 변하고, 악기도 변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언제나 음악 그 자체의 내부적인 동인, 악기 그 자체의 내부적인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자,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도 시대에 맞게 이제부터 악기개량을 하자”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열풍>은 주체적인 민족음악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음반이다. 하지만 십분 양보해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또 다른 아쉬움이 남는다. 나에게는 여기 실린 음악들이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 어법이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가을하늘을 호젓하게 가르던 그 거칠고 호방한 태평소 소리는 어디 갔을까. 설령 그 태평소가 라흐마니노프의 <보컬리즈>를 연주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그것이 그립다. 우리의 목표는 서양음악을 보다 잘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음악을 보다 잘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