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쓴 때는 아마 1990년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2백자 원고지에 특유의 필체로 갈겨 쓴 초고를 슬쩍 넘겨본 때가 그 무렵으로 기억된다. ‘에이, 이제 시작이야.’ 언제나 혹독한 비판부터 해대는 우리들의 태도에 그가 다소 주눅이 든, 그러면서도 얼마간은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그렇게 일별조차도 거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 그때 얼핏 보았던 작품 <골생원>의 앞부분은 대부분 판소리 식의 사설을 그대로 옮겨 온 데다가, 스토리 자체도 이른바 <매화타령>을 거의 모방, 순수 창작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빌미로,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그에게 악평을 쏟았다.”

이 글은 극단 ‘집현(集賢)’이 조일도(趙一道, 1947~2005) 추모 공연으로 지난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그의 작품 <골생원>을 무대에 올리면서 인쇄물에 실을 글을 부탁했을 때 썼던 고백적 축사의 일부이다. 물론 그런 사연으로 해서 그는 우리와 소원해졌고, 그래서 극을 무대에 올릴 때에도 소리 소문 없이 우리들을 따돌렸다는 이야기 또한 거기에 덧붙였다. 절친했던 친구의 작품인데도,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 공연을 보지 못한, 보지 않았던 ‘괴로운 추억의 극’이었음도 고백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40대였다면 자신도 상대도 그런대로 추스를 줄 알았을 것인데 여전히 가시지 않았던 방창한 혈기, 철없는 객기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패러디라고 해도 좋고, 번안이라고 해도 좋고, 각색이라고 해도 좋았을 것을. 객석에 앉아 그 아쉬움을, 그리고 지상에서의 우리의 인연이 꼭 그러했던 것만은 아니었음을 진정 마음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아쉬움은 그와 우리들 간의 실로 사적(私的)인 것이었기에 작품 <골생원>은 수작(秀作)일 수 없는 한계를 가졌다는 말을 한다. 패러디로서, 번안으로서 현대와 현대인을 풍자하고 희화하는 골계(滑稽)가 크게 작품 속에 녹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알레고리의 본뜻은 오히려 덤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2007 인천연극제 참가 작품이면서 폐막 축하 공연작인 이 <골생원>은 협소한 무대에서도 그런대로 관객들을 재미 속으로 끌어들였다. 드문 일로서 매회 세 자리 수 관객을 동원할 만큼 평(評)도 났고, 그래서 객석이 몹시 쓸쓸하지만은 않은 채 제법 온화한 훈기를 가졌었다. 단장도 연출자도 연기자들도 얼마간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앞의 지적대로 이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표피적 재미로만 일관한 연극이었다. 풍자의 메시지가 크게 들어나 뵈지 않은 단순한 흥미였다. 1시간 30분 동안 관객을 지배한 것은 그때그때 배우들이 보여준 능숙한 연기와 재치일 뿐이지 작품 <골생원>의 진정한 의미, 웅숭깊은 해학과 골계에서 비롯한 재미와 웃음은 아니었다. 더불어 출연자들의 연기와 동원된 소품, 소도구류조차도 요즈음의 ‘마당놀이’와 지나치게 흡사했다.

결국 이번 극단 집현의 공연작 <골생원>은 그 줄거리나 대사는 1992년 발표된 전라북도 전주의 이영규(李永圭) 소장본 「매화타령」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고, 연출은 현대판 마당놀이를 전범(典範)으로 한 소극(笑劇) 수준에 머물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연하면, 이번 공연 <골생원>에서는 독창적 원본 해석의 안목도 없었고, 판소리 본래의 해학과 가슴 서늘한 풍자, 웃음 속의 송곳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현대적, 혹은 시대적 해석이 없이 원본의 줄거리와 대사만을 그대로 좇은 이 공연의 의미는 무엇일까.

레퍼토리의 부족인가. 에너지의 소진인가. 관객의 외면인가. 전통 연극에 대한 이해 부족인가. 아니, 이 모든 것이 인천 연극의 현실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관객 없이 자기들끼리 막을 올리고 내리는 공허한 공연, 만성 적자의 영세한 잔치, 호평도 비판도 없는 공연의 무중력적 타성, 그런 현실을 상징함인가. 그리고 그것이 고질적으로 구조화한 것인가.

이번 인천연극제 역시 대체로 빈약한 작품들, 안이한 무대, 텅 빈 객석이었다는 평을 듣는다. 가장 성공한 공연인 <골생원>이 이 정도일진대 더 무슨 말을 하랴. 하지만 역으로, 우리 모두 이번 <골생원>의, 비록 희미하기는 해도 그 ‘재미의 희망’을 계기삼아 인천 연극이 걸어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힘들더라도 한 발만 더 앞으로 떼어 보라!
작고 인천 연극인들 중에, 조일도처럼 두 해를 연속해서 후배들이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추모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의 공(功)이고 복이다. 아무튼 그가 창단했던 극단 집현의 무대를 통해 십여 년 만에 그의 극을 보았으니 뜻이 깊고, 이제 비로소 가슴에 맺혔던 것이 확 풀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