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재일조선인’, ‘재일교포’, ‘자이니치(在日)’ 등 이름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왜냐하면 이런 이름들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며 부르는 주체에 따라 다양한 기의가 생산되는 기표들이기 때문이다. ‘재일교포’는 한국의 국가민족주의에 포섭된 한국인으로 우리를 취급할 우려가 있으며, ‘자이니치’는 일본에 거주하는 타자라는 차별적 어감을 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나마 역사성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재일조선인’이라는 명칭을 쓰기로 하겠다.

재일조선인 민족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우리학교>는 <고Go>(2001)나 <박치기> (2004)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상당히 변화된 상황을 보여준다. 재일조선인을 둘러싼 환경은 20~30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향상되었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이 지적하듯 과거 일본 땅에서 재일조선인이 내적 파워와 정체성을 표출하기 위해 폭력이나 범죄 같은 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그 힘을 스포츠나 예술의 형태로 승화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학 수능자격이나 각종 체육대회의 참가권 획득 등 기회의 창이 하나씩 열리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의 증대는 아이들에게 ‘나도 재일조선인으로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삶의 태도를 갖게 해 준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일본이름이 아닌) 본명을 밝히고 모국어를 쓰며 저고리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공고히 한다. 그러나 한 발 교문을 나서면 일본사회라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정체성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일본사회와 마찰이 발생한다. 그 갈등의 주축이 되는 것이 ‘조국’애와 민족애를 키우는 민족교육이다.

그런데 재일조선인 문제는 일본사회와의 접점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민단(在日本大韓民國民團)과 조총련(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간의 대립, 남과 북 두 개의 ‘조국’을 둘러싼 이념적 충돌,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 1 등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의 문제들은 <우리학교> 감독의 관심영역 바깥에 있는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사상이나 편향적 역사서술 등 ‘우리학교’ 교과과정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짚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잘 만들어진’ 느낌이 든다. 일본 내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이러한 북한식 교육이 여전히 학생들에게 효력을 가질지 또 그런 교육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이다. 학부모들 역시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방식이라며 탄식하기도 한다. 그것이 재일조선인들이 ‘우리학교’에서 멀어져가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민족학교에서도 교과과정에 북한과 한국을 공평하게 다루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북한식 교육도 전보다는 많이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영화가 보여주듯 민족과 조국이라는, 재일조선인들의 상상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이들의 삶에 긍정적 에너지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 한국, 일본 그 어느 체제에도 완전히 동화될 수 없는 영원한 디아스포라다. 경계지어진 국가 체제와 좌우갈등 그리고 서로 다른 국가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이들이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영화 속에 자주 나온 “고향이 어디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은 더 이상 미래지향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 재일조선인이 체제와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갈 것인지는 그들에게 남겨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