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3>가 개봉 3주 만에 450만 관객을 넘었다. 뿐만 아니라 1일 최고 관객, 주말 최고 점유율, 최대 개봉관 숫자 등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이 3주 동안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힘 한번 못 써보고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다. 미국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3억 달러짜리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한국의 영화계가 질식하고 있다.

사실 미국영화의 이 정도 흥행은 처음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시리즈와 <미션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3> 등은 이보다 훨씬 전에도 5백만 이상의 관객을 한국에서 모았었다. 그러므로 현재 이 영화의 흥행 수치가 전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미국영화도 작품이 좋으면 스크린쿼터(screen quota) 축소 이전이든 이후든 5백만에 가까운 관객들을 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같은 기간 이 영화에 맞서 관객들을 끌어들일 한국영화가 없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영화의 질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표면적 수치들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에서 나온 것이다. 2001년 이후 이 영화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은 외화는 앞에서 얘기한 단 3편이다. 해마다 나오는 수십 편의 헐리우드발(發) 블록버스터(blockbuster)들 중 한국에서 5백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전편들도 한국에서는 3백만을 밑도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성적을 남겼을 뿐이다. 그럼 <스파이더맨3>가 <킹콩King Kong>이나, <해리포터Harry Potter> 시리즈 등을 넘어설 만한 블록버스터 걸작이란 말인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기본 스토리라인은 휴먼드라마(human drama)와 액션(action) 두 가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자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웅담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후자는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자연인 피터토비 맥과이어(Tobey Maguire) 분의 사랑과 성장이 휴먼드라마 라인이고, 스파이더맨이 도시를 위협하는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장면들이 액션 라인이다. <스파이더맨>의 영화적 매력도 이 두 가지 라인이 서로 맞물리며 단순한 액션영화 이상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가는 데 있다. 그래서 평단으로부터 비교적 좋은 평가를 얻었던 1~2편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소년의 성장영화이자, 왕따소년이 사랑을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청춘 러브스토리이기도 했고, 또한 부모를 잃은 소년이 숙부, 숙모와 사랑을 나눠가는 가족영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3편의 이야기는 완결성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균형을 잃고 만다. 거의 성인이 되어가는 피터는 마치 전혀 다른 캐릭터처럼 춤을 추며 뉴욕의 거리를 걷는다. 엠제이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 분와의 사랑은 친구 해리제임스 프랑코(James Franco) 분와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복잡한 멜로드라마를 흉내내다 제풀에 지쳐버린다. 액션 라인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샌드맨토마스 헤이든 처치(Thomas Haden Church) 분의 등장은 신선했고, 그 자체의 시각적 효과들도 압권이었다. 하지만 샌드맨을 비롯해 뉴고블린제임스 프랑코(James Franco) 분, 베놈토퍼 그레이스(Topher Grace) 분  등 너무 많은 악당을 등장시켜 관객들은 어떤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를 따라가며 우리 주인공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지 혼동한다. 감독 샘 레이미는 이 3편으로 그 동안의 시리즈를 총정리하려 했지만 갑자기 바뀐 캐릭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배우들을 앞뒤가 맞지 않는 스토리에 붙여 놓고, 그것을 현란한 시각효과로 뒤덮어버렸을 뿐이다. 미국 평단의 반응도 ‘완결에 욕심내다 아무것도 못 건진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스파이더맨3>가 한국에서 최초로 세운 기록 중 의미 있는 수치 하나를 눈여겨봐야 한다. 바로 861개라는 역대 최다 상영관을 확보한 점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제도적 제약이 없어진 지금 극장주들은 훨씬 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입각한 결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 축소 이전이라면  200~300만 정도 선에서 상영이 마무리될 미국영화들이 400~500만의 ‘대박’작품이 된다. 앞으로도 상영관 숫자의 신기록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스크린 10개의 멀티플렉스 전관에서 한 영화만을 상영할 날도 머지않았다. 전에는 어떤 영화의 미국 흥행이 한국 흥행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았다.  한국관객들은 미국영화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국 흥행이 곧 한국에서의 최다 스크린 확보, 그리고 흥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한국관객의 자율성마저도 앗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