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는 역사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따라서 기록이 극히 중시되었는데 그 단적인 예가 ‘정사(正史)’ 편찬이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정사 편찬사업은 주변지역에 수용되어 한국이나 베트남에서도 왕조가 멸망하면 그 왕조의 정사를 편찬하는 일이 새 통치자의 의무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유교문화권에 한쪽 발만 담가놓았던 일본은 다른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 기록 면에서도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달랐다. 고대일본에서는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경)를 시작으로 ‘정사’로 볼 만한 서적이 몇 번이나 편찬되었지만 율령국가가 쇠퇴하면서부터 정사의 편찬이 행해지지 않아, 10세기 이후 정사가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상황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역사서 편찬에 관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관련기록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한국에는 『선조실록(宣祖實錄)』(1616)이라는 기본 사료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저술과 이 글의 주제인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1643) 등 개인사료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그에 비해 일본에는 『선조실록』과 같은 공적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이나 류성룡에 대응하는 일본측의 전쟁 지도자들이 직접 집필한 사료가 전무하다. 물론 일본에도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1597)처럼 전쟁의 비참함을 기록한 사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조선일일기』는 의승(醫僧) 케이넨(慶念)의 개인적인 체험을 쓴 것에 불과하며, 간행된 적도 없고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도 최근이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몇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무사들이어서 교양이 부족했다는 점, 전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 정권이 붕괴하자마자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 정권으로 교체되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을 복각하기 위해 한국은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역사를 기록하고 후세에 남기는 일에 대한 한국의 열의에 비할 때 일본의 태도는 극히 대조적이다. 일본에서 『징비록』은 1695년 교토에서 간행된 것을 효시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나 간행 또는 번역되었는데 일본측의 사료 부족이 큰 원인일 것이다.

현재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다양한 ‘역사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역사기록에 대한 일본측의 의식부족이 그 원인의 하나이다. 19세기말 이후의 한국 지배사를 ‘올바르게’ 기록해 새로운 세대에게 전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시비가 한창이나, 실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 이미 임진왜란 문제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에 관한 일본측 기록을 『징비록』과 비교해본다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징비록』은 1695년 일본에서 간행되었는데 그 서문은 저명한 유학자 카이바라 아쓰노부(貝原篤信, 1630∼1714)에키켄(益軒)이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음가 썼다. 그는 서문에서 군사에는 의(義)병, 응(應)병, 탐(貪)병, 교(矯)병, 분(忿)병이라는 다섯 가지가 있다는 설을 원용하면서 의병과 응병이 군자의 용병임을 지적한 다음, 히데요시의 조선출병은 탐, 교, 분의 군사로 천도가 미워하는 바이며 패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국이라도 호전적이면 멸망할 것이며 천하가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험하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조선은 후자의 경우로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이었다고 비판했다. 카이바라의 이러한 평가는 비교적 객관적인 것으로 히데요시의 패배를 냉정하게 받아들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에 카이바라 같은 입장은 오히려 소수였다. 특히 임진왜란에서 세운 공을 자랑하는 참전 무사들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전형적인 예를 『관정중수제가보(寬政重修諸家譜)』에서 볼 수 있다. 『관정중수제가보』는 1799년에 토쿠가와 바쿠후(幕府)의 명령에 의해 편찬되기 시작되어 1812년에 완성된 전 1,530권의 방대한 가계 기록이며, 토쿠가와 쇼오군(將軍)의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 가문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가보(家譜)라는 명칭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이는 족보의 일종인데, 일본의 가보는 방계 후손을 제외한다는 점, 정부의 명령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국이나 중국의 족보와 구별되며 류우큐우(琉球)지금의 오키나와의 가보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도 류우큐우의 가보와 같은 점인데, 중요한 개인에 관해서는 아주 상세한 이력이 기재되어 있다. 이 개인 기록 부분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기술이 많이 발견된다.

이 가보는 에도시대 중기까지 존속한 무사 가문을 수록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일본측 지휘자였던 카토오 키요마사(加藤淸正)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제외되었지만,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쿠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소오 요시토시(宗義智), 모오리 테루모토(毛利輝元), 코바야카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 등 임진왜란 초기의 전공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승리의 기록이며, 패배에 대해서는 말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도 등장해 잘 알려진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분로쿠(文祿) 원년(1592) 조선의 역(役)임진왜란을 뜻함에 우키타 히데이에(浮田秀家)를 총대장으로 육군대장은 코니시 유키나가, 카토오 키요마사, 쿠로다 나가마사 등이다. 수군대장은 야스하루와 쿠키 요시타카, 카토오 요시아키(加藤嘉明)다. 4월 12일에 나고야(名護屋)를 출발해 부산포에 착선, 거기서 수륙으로 나누어 성 몇 개를 공략했다가 잠시 후 제군이 서울에 진격했고 우키타가 진을 쳤다. (…) 야스하루는 수만의 적진을 공격해 수천여 명을 죽였고 생포한 사람이 2백 명에 이르렀다. (…) 케이쵸오(慶長) 2년(1597), 다시 그 땅을 정벌하려고 여러 장군과 함께 바다를 건넜다. (…) 당도(唐島) 지금의 가덕도로 추정 앞바다에 있는 판옥선(板屋船)이 우리의 항해를 방해하는 것 같아 우선 이것을 쫓아버리려고 웅천(熊川)에 가서 큰 배를 만들어, 제군이 하나되어 종과 북을 신호로 진퇴해서 무찌를 것을 약속한 다음 앞다투어 적선을 공격해 순식간에 수십 척을 점령했다. 달아나는 배들도 제군이 뒤쫓아 격파했다. 이 사정이 나고야에 알려지자 타이코오(太閤)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말함와 토오쇼오구우(東照宮)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말함로부터도 그 전공을 칭찬하는 서한이 주어졌다.

―『관정중수제가보』 937권(후지와라藤原 지류支流 와키자카脇坂 조條)

이밖에도 명(明)의 군대가 지키고 있던 사천성(泗川城)을 공격해 공을 세운 이야기나 울산에서 포위되어 있던 카토오 키요마사 부대를 구출한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야스하루의 전공만이 기술되어 있고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에 패한 이야기 등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야스하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기록에서 마찬가지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시마즈 가의 사쓰마한(薩摩藩)과 모오리 가의 쵸오슈우한(長州藩)의 경우다. 왜냐하면 이들 한(藩)은 임진왜란에 참가한 후, 토요토미의 신하로 토쿠가와와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토쿠가와 시대에 존속했을 뿐만 아니라, 알다시피 메이지(明治)유신의 중심세력으로 근대일본 건설의 핵심 역할을 완수하는 동시에 한국 침략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한 사이고오 타카모리(西鄕隆盛, 1827~1877)는 사쓰마한 출신이며, 초대 조선총독이 된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1852 ~ 1919)는 쵸오슈우한 출신이었다.

쵸오슈우한의 모오리 테루모토의 경우, 임진왜란에 총대장으로서 참가하면서도 병에 걸려 눈에 띄는 전적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인지 『제가보』에 간단히 기술되어 있는 데 비해 시마즈 요시히로의 경우엔 그 공적이 108권에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남원성 공격이나 사천성 명장 동이위앤(董一元)과의 싸움에 전공을 올린 것이 특기되어 있다. 시마즈 가의 경우, 이것만이 아니라 『정한록(征韓錄)』(시마즈 히사미치島津久通, 타카야나기 코오분高柳行文편, 1671 년경)을 독자적으로 편찬해 일본군의 전공만을 기록하고 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조선군의 패배나 내부 혼란까지 숨기지 않고 그렸다. 그에 비해 대부분의 일본 기록에는 임진왜란이 마치 승리한 전쟁인 양 그려져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에 관한 기억이 축적되어 오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재차 한국침략을 추진할 때 히데요시의 침략이 ‘대륙웅비(大陸雄飛)’의 선구로 다시 주목받게 되면서, 그것이 무참한 패배였다는 사실이 망각되어 버렸다.

근대일본의 침략과 전쟁에 관한 기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조차 반대하는 세력이 날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지금, 임진왜란에 관한 일본의 역사기록 방식과 그것이 근대일본의 한국침략에 이용된 경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의 기록과 그것이 후세에 남긴 부정적 영향은 과거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