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불확실한 시간에

뼈저린 고통이 되살아나고

살 떨리는 내 이야기를 다하기까지

이내 가슴 속은 타들어갈 뿐이다.

ㅡ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늙은 뱃사람의 노래』, 582~585행1)

요컨대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 4월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받는 중이다.

 -신형철, 「책을 엮으며」 중에서

아주 사적이고 사소한 차원부터 얘기하자면 이랬다. 매호 신간의 별자리를 짚어가는 별지기로서, 그보다 편집위원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제 아무리 답이 없는 심연을 헤맨다 해도 세월호 ‘참사’의 일차적인 요구들, 즉 ‘세월호 특별법’의 수용과 국가적 차원에서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 국민적 애도가 여름을 넘기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으나 ‘순진하게’ 기대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고, 반대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잡지의 중심 주제도 ‘재난’, ‘파국’, ‘참척慘慽’이니 하는 개념들보다는, 어쩌면 예견된 참사의 기본적인 원인 중 하나이자 대안적 개념으로서 ‘공공성·공동선’ 등을 미리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참혹한 봄을 지나 여름이 가고, 가을도 왔다가는 지금까지 세월호 유족들은 여전히 바람 부는 길 위에서 피눈물을 삼키고 있다. 그 사이 정치, 사회 현실은 차마 견디기 힘들 만큼 파렴치해지고, 바닥을 모를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호러 스테이트Horror State'2)라 이름 붙여도 될 만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묵살되는 나날을 ‘당하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암담해졌다. 하여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언급처럼 ‘슬픔이 거리에서 조롱당하는’ 지금, 우선 현 상황에 대하여 직접적(감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눈먼 자들의 국가』3)를 골랐다.

‘습격하듯 찾아오는 통증’4)과 무기력

헤아릴 수 없는 죽음으로 도시는 죽어가고,

이 도시의 자식들은 동정도 문상도 받지 못한 채

땅바닥에 누워 죽음을 퍼뜨리고 있구나.

거기에 맞춰 아내들과 백발의 노모들은

여기저기서 제단으로 몰려가 통곡하면

쓰라린 고통에서 구해주기를 애원하고 있구나.

— 소포클레스,『오이디푸스 왕』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길을 가다, 밥을 먹다, 청소를 하다, 아랫배를 얻어맞은 듯 허리가 꺾였다.

몸 안에 천천히 차오르는 슬픔이 아니라 습격하듯 찾아오는 통증이었다. —김애란

소설가 신경숙은 말한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구나 싶은 자책. 오로지 고속 성장만 목표였던 이런 사회의 구성원인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날 이후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상상력이 어딘가로 처박힌 채 회복될 기척이 없다.” 비단 그녀 한 사람만의 심정이었겠는가. 4월 이후 한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책’과 ‘죄책감’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어떤 말도, 글도 뱉을 수 없었으리라. 소설가 황정은 역시 다르지 않다. 분향소에서 ‘비로소 세상에 관한 신뢰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4월 16일 이후로 말이 부러지고 있습니다. 말을 하든 문장을 쓰든 마침에 당도하기가 어렵고 특히 술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장을 맺어본 것이 오래되었다.”고 토로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주 부끄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과 같은 마음으로 초코바, 초코바 같은 것을 내던지는 사람들’과,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그보다 내가 살아야겠으니 이제 그만 입을 다물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일상에서 ‘통증에 습격당하곤 하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 거듭, 거듭 습격당하는 일상’ 속에서 작가는 어른이 되었다고 했다. “세월은 질문 없는 삶들, 무감한 삶들이 결정적으로 일조하고 말았고 여태도 일조하고 있는 참사다. 4월 16일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고 그날 이후 내내 거대한 괴물처럼 마디를 늘려가며 꾸역꾸역 이어지고 있는 참사다. 아무도 이것에서 달아날 수 없다.”는 각성과 자신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자각. ‘질문이든 뭐든 말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사라져 버렸고 이대로는 내내 아무 것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무력감을 떨치고 문장을 쓰고자 하는 이기로 청탁을 받아들였다고 했으나 ‘세계와 꼭 같은 정도로 내가 망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문장을 바꾼다. 마침내 광장에 모여 ‘세월이 마냥 막막하게 떠 있지 않도록’ 연대하는 ‘팔꿈치들의 간격’을 보며 고백한다.

“그 점점點點한 아름다움을 믿겠다. 그러니 누구든 응답하라. 이내 답신을 달라.”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진은영은 사건 당일 학교에서 강의한 니체의 텍스트를 통해 이야기한다.5) 당시 ‘배 안에 남은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모두가 감전된 새처럼 떨고 있는 나날들’ 속에선 연민을 혐오하는 니체가 몰인정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나 ‘고통 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신 그 고통 앞에서 수치심을 느껴라. 연민이란 참으로 게으르고 뻔뻔한 감정’이라는 니체의 입장과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6)는 수전 손택의 언급이 얼마나 우리 상황과 맞아떨어지는지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모든 힘의 관계와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사회가 어째서 뻔뻔스러운지’, “싸우고 항의하고 따져 물어야 하는 순간에 임재하여 모든 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천사는 정치를 근본적으로 소거한다”면서 결국 ‘운명과 눈물은 대답’할 수 없으니 물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나아가 ‘선거로만 수렴되지 않는 정치적 활동을 활성화’ 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어떤 약한 존재도 그저 무력한 피해자로 바라보기를 멈춰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또한 ‘세월호 이후의 문학은 고통 받는 이들의 표상을 여러 방식으로 균열시킬 수 있어야’ 하며, ‘니체가 표현했던 대로 열매를 “손수 따는” 이들의 형상을 발명하며 다양한 상상과 질문의 방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종용한다. ‘언제나 문학은 정치학이야말로 진정한 윤리학임을 입증’했다며 브레히트가 쓴 다음의 대사를 인용한다.

“선량하게만 살다 떠나지 말고,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7)

“그렇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8)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를 입어……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 그랬다.” 앞서 언급과 비슷하게 대상화한 연민이나 감정적 슬픔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당사자성을 체감하는 비극적 상황이라서 내내 눈물을 참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 대목에서 눈물이 터졌을 것 같다. “내 구명조끼를 입어.” 박민규는 거듭 당부한다.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박민규의 표제글은 따로 군소리 덧붙일 필요 없이 이 지면에 전문全文 인용하고 싶을 만큼 상황 분석이나 문제제기, 설득력, 감성적 공감력 등이 탁월하다. 책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터넷, SNS 상에 그의 글이 전문, 혹은 일부 발췌하여 돌아다니는 것으로 안다. 누구나 반드시 읽어보았으면 싶다. 물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주문하는 김연수의 글9)도 좋다. 그 전에 이런 마음가짐은 또 어떤가.

“(…) 내가 가까스로 발견해낸 건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바깥’에 서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또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 세대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이들 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10)

우리들의 인간적 존엄성의 회복을 위하여

이와 더불어 필자 각자의 문제의식, 질문과 답변, 고유한 사유 표현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동시에 『안티고네』와 『햄릿』의 대비를 통해 애도의 정치적 의미를 비롯하여,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윤리적 결정’과 ‘정치적 책임’을 어떻게 결단하고 관철해가야 하는지 논술한 정신분석학자 김서영 교수 글의 연장으로서 페터 비어리의 책, 『삶의 격-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문항심 譯, 은행나무 刊)을 소개하고 싶다. 상시적으로 재난(재앙)이 잠복해 있는 위험사회에서 개인과 시회적 삶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서, 심각하게 결여되었거나 나날이 상처받으며 훼손되고 있는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삶의 방식이란 관점에서 다룬 책이다. 468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수려한 문학작품들을 집필한 철학자로서 개념적 접근보다는 문학작품, 연극, 영화 등의 사례와 구체적인 일상 경험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존엄성의 차원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즉 답을 제시하거나 가르치려하기보다는 생생한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변주하면서 독자가 공감하며 사유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재미있는 책이다. 지면이 여의치 않아 긴 설명을 드릴 순 없지만 꼭 한번 펼쳐보시길 바란다.

“목적의 왕국에서는 모든 것이 가치 아니면 존엄성,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가진다. 가치를 가진 것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 대용물로 대치될 수 있다. 그에 반해

모든 가치를 넘어서는 것, 대용물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존엄성을 가진다.”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제2절.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