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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와 현실 : 서태지, 아이유, 《Quiet Night》
통권 : 48 / 년월 : 2014년 11,12월 / 조회수 : 8052

처음 이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편집부에서 제안했던 주제는 ‘서태지와 아이유를 통해 본 콜라보레이션의 의미’였다. 서태지의 곡에 아이유가 보컬을 담당한 싱글 <소격동>이 막 공개되었을 때였다.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날짜는 10월 21일이고, 바로 어제 그의 아홉 번째 정규음반 《Quiet Night》이 음원 사이트를 통해 풀렸다. 그러니 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 서태지의 정규 음반을 들어본 다음, 아이유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생각해 보고, 마지막으로 ‘현재’에 적응하고 있는 서태지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고 싶다. 조금 산만할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서태지에 대해 다시 이렇게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Quiet Night》: 사운드와 감성의 시차時差

 

솔로 시절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대략 ‘훌륭한 사운드, 트렌드의 적극적 수용,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서태지가 차지했던 ‘1990년대 대중음악의 아이콘’이라는 후광이 사라지면서 더 두드러진 감이 있다.

데뷔 이후 서태지는 끊임없이 당대의 새로운 트렌드를 흡수하면서 치밀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통해 그것들을 자기 음악으로 가공해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과연 참고할 만한 해외 트렌드가 없을 경우 서태지의 음악적 핵심이라 할 만한 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생겨났다는 점이고, 다음으로 예의 그 트렌드 수용이란 게 종종 해당 트렌드의 음악적 특징 아니라 그 분야의 대표적 아티스트의 음악 자체에 위험하리만치 흡사하게 닮아갔다는 점이다. 6집 발표 당시 미국 뉴 메틀 밴드 콘Korn의 음악과 계속해서 비교되었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Quiet Night》은 어쩌면 그런 논란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서태지 음반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소격동>에서 드러나는 영국 신서 팝 밴드 처치스Chvrches의 영향까지 옹호할 수는 없고(<소격동>은 처치스의 가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 (마치 온갖 장르의 영화에서 명장면만을 따와 합친 영화처럼) 화려하고 즐겁지만 핵심은 없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레트로 성향의 21세기 풍 빈티지 신서 팝’이라는 트렌드를 따라 움직이는 이 음반은 서태지가 지금껏 발표한 그 어떤 음반보다도 편안하고 여유롭다. 시대의 첨단에 서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도 되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음반에서 뜻밖의 면이 두드러진다. 음반 전체에 걸쳐 1990년대 가요의 정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숲 속의 파이터>와 의 구성과 편곡방식, 비트의 질감, 수록곡에 “비록悲錄” 같은 제목을 붙이는 동시에 에서 MC 해머Mc Hammer을 인용하는 다소 의아한 감각까지, 음반은 마치 그때 그 시절 음악을 최신 사운드로 다시 포장하고 있는 것 같다. 솔로 시절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서태지 말이다. 그런 면에서 서태지의 가장 솔직한 음반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태지는 이 곡들의 오래된 정서와 감각을 화려하고 정교한 사운드로 감싸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시차를 애써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서태지×아이유 : 첨단과 역사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서태지가 아이유의 보컬을 얹은 <소격동>을 공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은 나름 이 시차를 해소하려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 적응하려는 노력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아이유 버전과 서태지 버전을 비교해서 들어볼 때 스타일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없지만 아이유 버전이 훨씬 더 화사하게 치장되었다는 인상을 주고, 곡에 접근하기도 보다 더 쉽다. 간드러질 정도로 ‘어린’ 소리를 내는 아이유의 보컬 역시 그런 느낌에 일조한다.

다만 이걸 가리켜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살짝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이 한 곡으로 토이Toy의 유희열이나 015B의 정석원과 같은 ‘작곡가-프로듀서 서태지’의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다른 이에게 곡을 주는 서태지는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다). ‘콜라보레이션’과 ‘피처링’의 애매한 경계를 따져보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작업이 서태지가 아이유를 ‘초대’하고 ‘환대’한 것이 분명하다 해도, 이 작업이 최근 발매된 인디 싱어 송 라이터 김사월과 김해월의 인상적인 음반 《비밀》(2014)처럼 평등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것 같은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밴드 글렌 체크가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여 발표한 음반인 《Youth!》(2013)처럼 적극적이고 참신한 기획의 산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쪽에 더 가깝다. 간단히 말해, 이 작업은 평등하지 않다.

오히려 이 ‘콜라보레이션’은 서태지의 입장에서는 대담한 시도일지 몰라도 아이유의 입장으로 뒤집어 생각해볼 경우 그녀가 그간 계속 해오던 방식, 즉 한국 대중음악계의 ‘오빠’ 혹은 ‘어르신’들과 같이 노래를 불러오던 경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심수봉이 타블로의 곡을 받아 <여자라서 웃어요>를 발표하거나 이선희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 <너를 만나다>를 부르는 등의 ‘회춘 작업’과도 같은 듯 다른 듯 공유하는 맥락이 있다고 본다. 각자의 명성을 상대방에게 적절히 비춰주면서 나름의 의외성을 통해 관심을 모으는 전략 말이다(아이유가 최근 이런 종류의 장유유서적 ‘콜라보레이션’을 너무 많이 소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을 따로 언급하고 싶다).

그래서 ‘서태지×아이유’라는 조합이 우리에게 새삼 ‘파격’과 ‘충격’으로 느껴진다면, 우리가 서태지 역시 그 ‘오빠’ 내지는 ‘어르신’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인식하지 않아왔다는 뜻이고, 우리가 서태지를 그 목록에서 그간 빼놓았던 까닭은 그의 음악이 어쨌거나 ‘첨단’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비록 찬반 논란은 거셌을지언정 끊임없이 동시대의 음악에 안테나를 맞춰 왔고, 그럼으로써 늘 새로움을 강조해왔던 것이 서태지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새 음반에서 서태지는 그 첨단이라는 짐을 상당 부분 내려놓았고, 그럼으로써 끝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정언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성의 나선계단’에서 내려온 뒤 스스로를 지나간 역사의 일부로 포함시켰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자신을 ‘한물간 90s Icon’(“90s Icon”)이라 일컫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동화와 현실

 

비록 “긴장해 다들”이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선전 포고를 날렸음에도(“Christmalo.win”) 《Quiet Night》은 얼마 안 가 음원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왔다(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음원 사이트를 휩쓸고 있는 건 에픽 하이의 새 음반이다). 그가 ‘잔혹동화’의 어법을 빌어 복잡한 방식으로 에둘러 가하는 ‘사회 비판’ 역시 사회와 개인이 어떤 완충장치도 없이 직접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고 있는 현 상황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다소 역부족인 것 같다.

‘논쟁’은 빨리 가라앉았고 옛 팬들은 여전히 그를 따뜻이 맞이할 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제야말로 ‘팬’이 아니었던 이들은 서태지의 음악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음반만큼 그의 동화적/탈현실적 취향이 선명하게 드러난 건 없다. 여전히 말간 얼굴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쭈뼛거리며 인터뷰를 하지만, 다시 한 번 역설적으로, 그가 음악 속에서 ‘나의 일천열 가지의 진짜 이야기’(<숲 속의 파이터>)를 하며 동화의 세계를 마음껏 노니는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서태지를 바라볼 수 있는 때인지도 모른다.




#저자 약력
崔旻宇 1975년 제주 생. 음악평론가. 최근 글로는 「포스트 아이돌 시대, 거장의 베타 테스트: 조용필 《Hello》」 등이 있다. daftsounds@gmail.com

글쓴이 : 최민우
작성일 : 20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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