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불타지 않게 해주세요 / 폭격기가 뭔지 모르게 해주세요 / 밤에는 잘 수 있게 해주세요 / 삶이 형벌이 아니게 해주세요 / 엄마들이 울지 않게 해주세요 / 아무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게 해주세요 / 누구나 뭔가를 완성시키게 해주세요 / 그럼 누군가를 믿을 수 있겠죠 / 젊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게 해주세요 / 늙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_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아이들의 기도」

4월 16일 이후 나와 우리의 일상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날 이후 너덜너덜해진 나와 우리들은 좀처럼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시인이 “숨 쉬시기도 미안한 4월”(함민복)이라고 한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최후의 생존자가 귀환하기를 온 마음으로 기도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4년 4월은 부서진 4월로 기록될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준 것은 책이었다.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읽었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귀환한 생존자들의 기록을 찾아 문장과 문장 사이를 눈과 손으로 더듬었다. “삶이 형벌이 아니게 해주세요”라는 브레히트 시의 표현을 보며 한 세상 함께 사는 죄罪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책을 읽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장 아메리의 『죄와 속죄의 저편』, 그리고 빅토르 프랑클의 회상록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파울 첼란의 시집 『죽음의 푸가』 같은 책들을 찾아 읽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야 진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경험적 진실 때문이었다. 고2 때 셋째형이 자살한 이후 막막했던 십대 시절에 체험한 나의 별난 독서치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 시절 나를 구원한 것은 중국 작가 루쉰의 문장들이었다. 「광인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이들을 구하라”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의 강렬한 충격이 삼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세월호 참사는 광인의 식인食人 공포증이 전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으리라.

그러나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듯이,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애도할 수 있는 우리들의 언어 목록은 너무나 빈약하다. 때로는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나와 당신 또한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환한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은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그들의 글쓰기에는 언어절言語絶의 참사를 겪은 사람 특유의 화재 경보로서의 육성肉聲을 행간에서 들을 수 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 강제수용소의 경험이 가혹할수록 그들이 육성으로 전하려는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나 기도처럼 들려온다. 장 아메리가 『죄와 속죄의 저편』에서 “나는 화재 경보를 울린다”라고 쓴 문장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어쩌면 나는 4․16 재난 이후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 레비)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언어절의 상황 자체를 회피하고 싶어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책들을 읽고 나 자신은 지금의 이 참혹한 재난과 전혀 무관하다고 하는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국가 없는 국가주의(Z.바우만)가 부른 대재난 앞에서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당신은 알고 있다.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진실이고 답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 인간적인 ‘인간성’을 확증하는 답을 찾기 위하여!

“히틀러가 사후에 승리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인간적인 인간성은 저절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통의 연대를 통해서만 인간적인 인간성을 가까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1980년 오월에서 우리는 그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사정은 어떠한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목격한 것은 국가의 책임의식 또한 철저히 침몰했다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국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 현상과 정확히 포개지는 형국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아픔과 좌절 또한 깊은 내상을 남긴 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분노의 감정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재난 이후 진정한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상중喪中인 상태인 것이다.

과연 진정한 애도가 가능할까. 애도의 (불)가능성을 묻는 질문은 결국 우리의 이성은 함께-살기라는 공생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성과 공생을 연결하는 문제가 일대 공안公案이 된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기억투쟁의 문제와 직면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저 1980년 오월 이후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최근의 우리 상황을 보면 낙관보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장 아메리였던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한 장 아메리가 “가끔 히틀러가 사후死後에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닌가?” 하는 탄식을 읊조린 것도 그런 사회적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1976년 자살을 시도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죽음론을 옹호한 장 아메리는 1978년 잘츠부르크의 어느 호텔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끝내 목숨을 끊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의 (불)가능성을 성찰하는 이 지면에서 장 아메리의 자살을 언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 또한 자유 죽음론을 역설한 장 아메리의 주장과 행동에 어쩌면 깊이 공명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 통의 유언장 가운데 한 개에서 “나는 밖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구원이다”라고 그는 썼다. 장 아메리는 진정한 애도의 불가능성을 온몸으로 증언하고자 한 것이리라.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세월호 이후의 기억투쟁이 중요하다. 어느 시인이 “우리 모두 빵(○)으로 돌아가 / 다시 하나둘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 나도 너도 / 나라도 무엇도 다시 첫걸음 내디뎌야 하겠습니다”(고은)라고 쓴 이유도 기억투쟁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 앞에서 문학은, 예술은, 언제나 항상 무력했다. 문학은 병원을 지을 수 있는 힘도 없고, 학교를 세울 힘도 없다. 그러나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바꾸려던 세계가 우리를 바꾸어버렸다”(현기영)는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누군가의 ‘옆에서’ 함께 우는 일이다. 이른바 있어줌의 윤리학이야말로 문학의 윤리학이라고 확언해도 좋을 법하다.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이 “문학은 더 큰 삶, 다시 말해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여권”이라고 한 맥락도 이 의미와 그리 멀지 않다.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억센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부정당할 때, 우리는 지금의 폐허를 넘어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세계관世界觀이 아니라 세계감世界感이어야 한다. 세월호와 무관하게 쓰여졌지만, 이문재 시인이 쓴 「오래된 기도」라는 시를 그날 이후 자주 들여다보곤 했던 것도 그런 세계감의 필요성을 절감한 나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나는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이문재 시인의 표현에 자주 울컥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처세술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5월 복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수영교육 활성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려다 취소한 사건을 보며 나는 진짜 기함하는 줄 알았다. 아마도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실수였을까. 우리는 이 체제 바깥을 전혀 사유하지 못하고, 전혀 상상하지 않으려는 후천적 상상력 결핍 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세상에서 세상 자체가 위험한데 내 아이는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일종의 아Q식 정신승리법에 불과하다. 각자도생의 처세술이란 실상 지배 세력에 의해 언제든지 각개격파 당하기 쉬운 통치술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이 점에서 로마제국을 멸망하게 한 역사 속 야만인을 기리는 시를 남긴 카바피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왜 우리가 이렇게 광장에 모인 거지? / 야만인들이 오늘 도착한다나 봐.” 로마 제국의 시민들은 야만인의 도래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동일자로서의 한계를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帝國의 불가능성 자체를 되묻게 되었다. 송경동이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라는 시에서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고 한 맥락 또한 이러한 동일자의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탈출 행위라고 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야만인을 기다려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야만인’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른바 관제官製 기억에 맞서는 일종의 대항서사가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우리가 말하고, 쓰고, 읽고, 토론하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뿐만 아니라 함께 살기에 대한 감각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없는 국가주의를 넘어서

세월호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별법 제정의 본질은 ‘사고’냐 ‘사건’이냐는 정명正名을 둘러싼 싸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설가 박민규가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언명한 것도 정명의 문제가 결국 세월호 참사의 핵심 본질이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왜 국가가 만든 문제를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의미를 잘 알고 있다. 1980년 오월 이후 ‘폭동’에서 ‘사태’를 거쳐 ‘민주화항쟁’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세월호 사고로 규정하려는 관제官製 기억에 대항하는 일종의 대항서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1980년 오월 이후 광주사태라는 이름의 유일․확고한 관제官製 기억과 공공기억에 맞선 것은 슬픔의 지리학을 넘어 분노의 정치경제학을 구현하고자 한 문학적 정의正義의 방식이었다. 오월 이후 극심한 패배주의, 공포심(레드 콤플렉스), 자책감, 체념적 숙명론, 허무주의 사고에 점령당한 우리들의 배반당하고 억압당한 유토피아에의 꿈과 사유를 다시 환기한 것이 문학의 수행적 역할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 4월 이후의 문학 또한 생생한 대항적 기억문화를 형성하는 데에서 자신의 몫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물론 어느 역사학자가 “역사는 인간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강만길)라는 도저한 낙관주의를 쉽게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뜻’에서 ‘뜻’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운동의 저류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는 지금 이곳에서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유족들을 비롯해 민중들의 집합기억을 통해 당대 권력의 지배서사에 맞서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역사를 상상하며 대안서사를 만들고자 한 기억투쟁의 의미가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4월 16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기념일이란 크로노스적 시간으로서 언제든지 폐허의 시간화 또는 시간의 폐허화로 변질될 수 있다. 기념일이란 언제든지 멜랑콜리의 우울한 시간으로 화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폐허를 직시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애도란 누군가가 “자기 안에 타자의 묘소를 마련하는 일”(자크 데리다)이라고 했던가. 탐욕, 몰염치, 무책임의 시대에, 우리는 애도를 통해 분노의 정치경제학을 지상에 구현해야 함은 물론이요, 지금의 ‘엘리트 패닉’ 상태로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마땅하다. 지금의 국가 없는 국가주의를 넘어 ‘다른 나라’를 상상하고 사유하기 위해! 사사키 아타루가 책 제목으로 사용해 유명해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파울 첼란의 시적 표현 같은 개안開眼과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변침變針의 의미가 나라의 변침을 뜻하는 의미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4월 16일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