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으니 (동어반복이지만) 비극에 대해 써야 할 것이다. 다만 4·16 ‘이후’―노파심에 밝혀두자면 완료시제로서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이후’―에 비극에 대해 쓴다는 것은 이를테면 그리스 비극을 염두에 두거나 겨냥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극’이라 썼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 비극’이라 읽지 않고 ‘세월호’라 읽는다. ‘비극’이 ‘세월호’로 귀착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현재진행형으로서의 ‘4·16’ 이후 쓰여졌거나 쓰여질 글은 필연적으로 ‘비극’에 대한 글쓰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국면은 좀 기이하다. 그것을 ‘비극’이라 말하기엔 개운치가 못한 것이다. 단식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가 보란 듯이 ‘폭식투쟁’을 벌이는 무뢰배들이 등장한 것으로도 모자라 ‘서북청년단’이라고 하는 역사물 퇴물의 재림을 우리는 두 눈을 의심하며 똑똑히 목격해야만 했다. 이 같은 상상력의 극단이 비극적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희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말하자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된 희비극적 상황.

지금 이곳의 희비극적 정황들에도 불구 ‘4·16’은 엄연히 ‘비극적’인 것이다. 왜인가. ‘신’神의 부재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신의 부재 이후 세계의, 사건의 의미를 온전히 우리가 짊어지고 감당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교해져야 할 부분은, 신의 부재를 ‘없음’이 아니라 ‘사라짐’으로 읽어내야만 한다는 데 있다. 환언하자면 신의 ‘없음’無이 아닌 신의 ‘사라짐’(미지의 장소에 여전히 있음). 지금 우리는 루카치의 이름을, 보다 정확하게는 비극에 대한 루카치의 정의定義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비극을 ‘무대에서 퇴장한 신이 여전히 객석에 머무르고 있는 시대의 문학적 양식’으로 보았다. ‘무대’와 ‘객석’의 차별성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두드려 읽어보아야 할 대목은 ‘신이 무대에서 퇴장했다’는 데 있지 않다. 무대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 신이 어정쩡한 객석의 자리 어딘가에 여전히 위치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제적으로 다가온다. 세계의 객관성과 총체성을 보증해주던 신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덩그러니 남겨진 인간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반쪽짜리 자유다. 여전히 진리의 담지자는 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그는 지금 없거나 소멸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때문에 무대 위 홀로 남겨진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신을 찾아야 할 자유’이지 무한정하고 무차별적인 자유가 아니다. 다시 말해 방종의 자유나 대안적 진리 만들기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

4·16 이후 사라진 신을 찾는다는 건 이번 참사(비극)의 의미를 캐묻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왜 그것이, ‘4·16’이 구체적으로 비극인가. 두 가지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먼저 ‘애도’의 불가능성. 애도라 함은 망자亡者를 제대로 떠나보내는 일인데 우리는 세월호 사망자들을 아직도 온전히 장사葬事 보낼 수 없는 처지에 내던져져 있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해 달라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참사 이후 반년이 넘도록 이토록 힘에 겹고 요원하기만 하다. 망자亡者를 떠나보낼 최소한의 과정과 절차가 제대로 구비되지 못한 참혹한 상황적 조건에서 어떤 치들은 감히 ‘세월호 피로감’을 운운하기조차 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총체적으로 오독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끝과 시작」에서 쉼보르스카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 적이 있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 시체로 가득 찬 수레가 / 지나갈 수 있도록 / 누군가는 길가의 잔해들을 / 한옆으로 밀어내야 하리.” 피로감을 발설하는 이들은 “청소”와 같은 부류의 단어들에 즉각적으로 반색할 것이다. “시체로 가득한 수레”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니 “한옆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우매하기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들은 “길가의 잔해들”의 잔존성殘存性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한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잔존물, 그것의 의미를 응시하지 않고 그저 일거에 청산淸算(=“청소”)하려고만 한다.

‘4·16‘이 비극적이라 함은 ’애도의 불가능성‘이라는 이유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비극과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극은 가시적이라기보다는 징후적인 것이다. 섬세하지 않으면 어느새 놓치기 십상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집단적 외상trauma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인식 자체다. 정확한 명칭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인데 방점은 ‘후’post에 찍힌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후’는 ‘이후’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하여 완료시제가 아닌 현재진행 시제로서의 ‘이후’를 언급하고자 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이후’는 우리의 ‘이후’와 같지 않다. 그들에게 ‘이후’는 여전히, 아직도 ‘현재’다. 유가족에게 ‘세월호’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벌써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급하게 세월호 ‘이후’―완료시제로서의 ‘이후’―를 입에 올리기 시작한 우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최적의 매개와 재빠르게 접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SNS는 삽시간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의 최전선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객관적 분석을 둘러싼 많은 말들이 ‘윤리적 능동성’(서동진)1)―“참여하라!”―의 장엄한 외피를 두르고서 허공 혹은 가상의 인터넷 공간을 맴돌았다. ‘가만히 있지 않는’ 차원의 행위로까지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SNS 공간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외에 ‘아픔의 표현表現’도 자주 목격되었다. ‘표현’이라는 다소 얌전한 어휘를 골라보았지만 좀 더 세게 말한다면 그것은 ‘연출’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자아 연출’(어빙 고프먼). ‘세월호’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인해 적지 않은 이들이 아파했지만 그 아픔의 성격에 대해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응시해 보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정녕 무엇에 대해, 무엇을 아파했던 것인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외설스러운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혹 우리는 ‘우울’의 감각을 스스로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바꿔 말하자면 애도가 불가능해진 자리에서 우리는 우울의 나르시스적 쾌감을 은밀하게 향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애도와 우울, 두 차원의 심급에서 각각의 불가능성을 다시 한 번 긴 호흡으로 응시해보게 된다. ‘애도의 불가능성’은 망자들을 떠나보내고 싶지만 떠나보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우울의 불가능성’은 망자들을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심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 그리하여 전도된 우울의 쾌락을 은밀하게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다시 한 번, 애도와 우울의 불가능성. ‘애도의 가능성’은 지리멸렬한 여야의 정쟁政爭 속에 자취를 감추고, ‘우울의 가능성’은 자의식적 자아에 의해 은밀한 쾌락으로 소비되어 버렸다. 그렇게 애도와 우울 두 전장戰場 모두에서 우리는 실패해 버렸고 그것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닥친 비극성은 ‘애도와 우울의 불가능성’을 통해 보다 가시화된다. 애도와 우울 모두가 불가능해진 실로 난감한 상황 속에서 이번에는 애도와 우울, 그 사이-공간 어느 즈음에 생각이 가 닿는다. 망자를 장사葬事 보내고 자신의 심난한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는 태도(‘애도’)도, 망자를 놓아주지 못하는 삶이지만 실은 전도된 자기-연출의 태도(‘우울’)도 아닌 제3의 태도. 그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어떠한 양태로 가능한 것인가.

고백하자면 우리로서도 깔끔한 답이 없다. 여기까지 오는 것보다 이후의 논의를 진척시켜 나가는 데 갑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사유의 난맥 끝에 더듬더듬 부여잡을 수 있었던 하나의 유의미한 사례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지난 9월 25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6층 은명대강당에서 열린 ‘이소선합창단’의 첫 단독공연 소식이 그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2011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양분된 양대 노동세력의 통합을 유언으로 남긴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여사의 뜻을 기려 노동자와 해고자들뿐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것이 ‘이소선합창단’이다. 합창단은 이날 이소선 여사 추모곡 <손 내밀어>를 불렀다. “손 내밀어 잡아줘 하나 되어줘 우린 아픈 남이었잖아 / 손 내밀어 안아줘 사랑 되어줘 우린 슬픈 따로였잖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이소선합창단’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계열이다. ‘이소선합창단’이 있기까지 그 앞에 이소선 여사가 있었고, 이소선 여사가 있기까지 그 앞에 전태일이 있어야만 했다. 전태일. 말할 것도 없이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 이전에 까맣게 그을린 아들의 주검과 마주해야만 했던 이다. “어머니에게 역사적 사실은 아이의 죽음이라기보다 죽은 아이다”라고 고바야시 히데오는 말한 적이 있는데, 이소선 여사에게 아들의 분신焚身은 “아이의 죽음이라기보다 죽은 아이”로 다가왔을 것이 틀림없다. 세월호 참사로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참척慘慽의 고통은 “아이의 죽음”이라는 객관적 서술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아이”라고 하는 현재적 고통으로 몸속 깊숙이 각인된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의 주관성(우울)에 속해 있되 그 안에 함몰되지 않는 주체화의 새로운 모델을 이소선 여사로부터 감지하게 된다. 그 주체화 모델은 동시에 망자를 산 자로부터 말끔하게 격리시키는 속류화된 애도의 방식과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과거에 놓인 화석으로 기념하지 않고 ‘현재화’하는 애도의 태도(전태일―이소선 여사―‘이소선합창단’으로 계열화되는)를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애도와 우울, 그 중간의 어디쯤에 존재하는 자리로 보인다.

어느 순간 무엇에라도 홀린 듯 <손 내밀어>의 노랫말을 신영복 선생의 문장 하나와 겹쳐 읽게 된다. “연대는 우산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으며 같이 걷는 것이다.” ‘우산을 주는 것’과 ‘비를 맞으며 같이 걷는 것’이라는 경우의 수 두 가지가 주어졌고 여기서 둘을 판별할 기준은 ‘연대’連帶라는 공통의 그리고 공동의 가치다. 연대, ‘잇닿은 끈.’ 비를 맞고 있는 상대에게 나의 우산을 건네주는 것은 물론 고결한 태도이지만 수학적 관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저 우산이 A라는 장소에서 B로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우산을 건넨 이는 군중 속으로 표표히 사라지고 우산을 건네받은 이만이 남는다. 즉 1은 그대로 1로 남는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후자다. 내 손에 쥐어진 우산이 부족하다면 그 우산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와 함께 그냥 비를 맞는 쪽을 택할 수 있다. 비를 맞으며 함께 걷는 것이다. 이때 1은 ‘1+알파’가 된다. 서로와 서로가 어깨를 겯고 만들어낸 하나의 ‘잇닿은 끈.’ 그렇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찾아드는 두려움. 전태일에서 이소선 여사로, 이소선 여사에서 ‘이소선합창단’으로, 그리고 세월호까지. 얼마나 더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이 비를 맞아야만 할까.

‘정치’와 ‘윤리.’ 각각의 전장은 같지만 응전하는 태도에서 양자는 서로 조금씩 결이 다르다. 정치가 제대로 ‘대답’하는 것을 고민한다면 윤리는 제대로 ‘질문’하는 것을 숙고한다. 정치가 승리의 문법에 매진한다면 윤리는 비극과 몰락의 문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윤리는 재난과 파국의 현장을 향한 응시를 통해 (미래의, 즉 도래할) 새로운 ‘질문’을 잉태함으로써 (현재의) 새로운 ‘대답’을 모색하는 정치와 수평적 자리에서 함께 하기 때문이다. 질문과 대답의 선순환적 변증법. 혁명은 ‘영구永久 혁명’이다.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문제는 영구적 혁명의 시간 좌표에서 일개 개인에 불과한 주체의 위치성이다. 주체와 구조, 양자의 대립쌍을 두고 현대 철학의 영역에서 많은 말들이 있어왔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주체는 없다. 구조가 있을 뿐이다,’ ‘아니다. 주체는 있다’ 부류의 말을 운운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구 혁명의 유동적 흐름 속에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려는 삶”(정희진)을 조심스럽게 ‘주체’라 말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구조 안에 속해 있는 주체의 어떤 결단까지도 포괄하려는 태도다. 그런데 그 결단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려는 삶”에 다름 아니다. 주위에 맴도는 저잣거리의 흉흉한 풍문 속에서 제아무리 신종의 종말 담론이 융성하여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최후의 튼실한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것, 모든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최후의 혁명이다”라고 정희진은, 썼다.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것, 모든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지우는 것,”2) 우리는 그것을 ‘비극의 윤리학’이라 부르겠다. 그것은 근본적이고 발본적 차원의 (미래의)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패배가 아니다. 패배할지언정, 결코 패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