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으로 ‘화교’를 다루면서 학생들에게 이따금 이런 질문을 던진다. 2006년 춘절(春節) 그러니까 우리 구정 때 중국인들이 고향을 찾기 위해 이용한 교통편의 횟수는? 중국 핸드폰 업계에 종사하는 인구의 수는? 중국에 대한 감을 잡아보라고 던지는 질문이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중국에 왔을 때 베니스 인구가 5만이었다면 당시 항저우(杭州)의 인구는? 2070년 중국의 예상 인구수는? 말하자면 수치로 감 잡는 중국을 통해 중국의 실상을 더듬어보자는 것이다. 이름하여 장님코끼리만지기식이다.

이런 것 말고 다른 종류의 물음들도 있으니 예컨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어느 나라가 1등을 먹을 것인가이다. 패는 둘로 나뉜다. 물론 그 둘이란 미국과 중국으로, 대체로 호각지세를 이룬다. 아니면 20세기는 어느 나라의 세기인가? 물론 미국이다. 이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느 나라의 세기인가? 학생들의 고개가 갸우뚱하기 시작할 즈음 다시 이어지는 물음. 중미 혹은 미중이 쟁패를 벌이는 핵심 분야가 어디일까? 대답이 어지럽다. IT, BT(biotechnology) 등등.

 또다시 이어지는 질문. 영어와 중국어, 한자와 알파벳 사이의 다툼은 어떻게 될까? 보충 설명이 이어진다. 19세기까지 전세계 정보량의 90%가 한자로 이루어져 있었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는 알파벳이 90%를 점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21세기는? 내친 김에 부동의 자리를 점하는 제1외국어로서 영어의 자리가 위태롭게 된 것은 아닌가? 중국어의 수요와 영어의 수요, 이 둘이 동아시아 역내(域內)에서 점하게 될 세력판도는 어떻게 될까? 아울러 추가되는 질문 하나. 미국의 월스트리트 및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자본과 목하 대중화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화교자본의 힘겨루기에서, 21세기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21세기의 문제가 중국문제로 요약된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떠오르는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화교문제라는 말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질문은 이렇다. 이번 2007년 세계화상대회는 왜 코오베(神戶)에서 열리는가? 일본에서 차이나타운이 꼴을 갖춘 다른 두 도시, 곧 나가사키(長崎)와 요코하마(浜)를 제치고 코오베에서 화상대회가 열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2006년 민간 싱크탱크가 발표한 도시매력도 랭킹에서 삿뽀로(札幌)에 이어 코오베가 전국 2위를 차지할 만큼 쾌적한 환경도시인 까닭인가, 아니면 별도의 코드가 감추어져 있는가. 그 코드를 알면 화교를 거론할 때마다 항용되는 이른바 ‘네트워크’라는 코드망에 접속할 수 있을 터인데.

하코다테(函館), 카나가와(神奈川), 나가사키, 니이가타(新潟), 효오고(兵庫) 다섯 개 항구의 개항이 이루어진 것이 1858년. 그로부터 10년 뒤인 1868년 1월 1일 코오베가 개항했고 그 이틀 뒤에 메이지 유신정부의 ‘왕정복고대호령(王政復古大號令)’이 발동되었다. 보잘것 없는 조그만 어촌 코오베는 그 후 서(西)일본의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른다. 서일본 전체를 통괄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유신정부의 서일본 통치거점이 되었고, 인근 효오고항에 군무국(軍務局)이 설치되면서 전선으로 향하는 보급기지가 되었다. 훗날 일본 군국주의의 병참기지가 된 후에는 조선인들이 징용되어 강제노역에 종사한 곳이기도 하다. 효오고와 코오베 나아가 오오사카 일대에 한국 교민이 제일 많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럼에도 새로 개항한 당시 신도시 코오베에 처음으로 몰려든 것은 서양인이었다. 영사관과 상관(商館)이 들어서면서 코오베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871년 청일수호조규 및 통상협정 체결을 계기로 중국인의 수도 급속히 증가했다. 새로 조성된 서양인 거류지로 몰려든 중국인들이 양손에 든 것은 이른바 ‘싼바따오(三把刀)’ 즉 중화요리 주방장의 칼, 양복점의 가위, 이발소의 면도칼이었다. 이들 세 자루의 칼이 위력을 발휘한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특히 첫번째 칼이 외국인거류지에 사는 서양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해안가 일대 지금의 난킹마찌(南京町)를 중심으로 점차 ‘먹자골목’이 형성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 코오베 차이나타운의 원조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에 칼잡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인들과 함께 들어온 청나라 사람 중에는 서양의 영사관이나 상관의 통역 혹은 고용인들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매판(買辦)’이다. 아편전쟁(1840) 이후 중국에 들어온 서양인에게서 장사의 기술을 일찌감치 습득한 화상의 첫 세대인 것이다. 코오베의 개항과 더불어 일본 상인의 수도 점차 증가했으나, 오랫 동안 쇄국에 갇혀 있던 일본 상인들에게 해외네트워크를 관리할 인맥 따위는 가위 태무했고, 그로 인해 상업, 특히 해외무역 분야에서 먼저 길을 낸 화상의 힘을 빌려 서양과의 교역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심자 일본에게 해외무역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선배격인 화상들이었다.

코오베 화상의 역사를 살피노라면 만나게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왕징샹(王敬祥)이다. 그는 쑨원(孫文, 1866~1925)을 도와 중화혁명당(中華革命黨) 코오베겳읏을穎?지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좌절 후 위앤스카이(袁世凱, 1859~1916)가 보낸 자객을 피해 고향 푸저우(福州)를 떠나 코오베항으로 잠입한 쑨원을 왕징샹이 숨겨주었고, 그런 인연으로 쑨원은 훗날 중화민국 대총통의 자격으로 코오베를 다시 방문하여 <대아시아주의>(1924.11.28)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왕징샹이라는 인물을 살피려는 이유는 별도로 있거니와, 그것은 지난 2월 초 인천 차이나타운을 답사하면서 들은 이야기와 연결된다. 답사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인천에는 수많은 ‘한국최초’가 있는데, 교회당1호, 천주예배당1호, 우체국1호, 기상대1호 등과 함께 특히 귀에 박혀 들어온 것이 조선 최초 성냥공장이 인천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성냥공장이라걖걖걖. 인천의 성냥공장이라면걖걖걖. 이쯤 뜸을 들이면 50줄 전후로 접어든 축이라면 뭔가 아련한 노래 구절을 떠올릴 법도 하다. 첫 구절이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걖걖걖.”로 시작되던가. 제법 외설적인 노랫말과 연결이 된다. 문제는 왕징샹이 코오베에서 내로라 하는 성냥무역 중개상이었다는 것이다. 

 코오베 중화회관 건립10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루어띠셩껀(落地生根)』1에 실린 자료에 의하면, 메이지 10년대부터 코오베를 중심으로 성냥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성냥 수출이 코오베 무역의 주력이 되었는데, 이 성냥무역은 가위 화상의 단독 무대가 되다시피 했단다. 메이지 시기를 통틀어 코오베는 전일본 성냥 수출의 90%를 차지하는 무역항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성냥의 수출은 메이지 전반기에는 주로 중국을 대상으로 했으나 후반기로 가면서 동양 시장을 독점한다. 성냥의 상표도 제조업자의 상표가 아니라 대부분 화상의 브랜드로 인쇄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가 화상들의 성냥 제조를 금지했던 만큼, 화상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일본인 성냥제조업자에게 빌려주고 해외 판권을 확보하는 식이었다. 이리하여 일본인=제조, 화상=판매라는 협조체제가 이루어졌다. 1902년 왕징샹이 운영하는 푸싱하오(復興號)의 성냥 무역량은 당시 화폐로 29,464엔이었다.

 이런 분위기, 곧 ‘일본인=제조, 화상=판매’라는 역할분담은 현지인과 외지인의 환상적인 결합으로 이어졌으니, 이를테면 코오베 차이나타운 인근의 해안촌, 곧 성냥공장과 그 성냥을 수출하던 화상의 상관이 늘어선 일대에서 태어난 화교 출신 작가로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천순천(陳舜臣)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코오베이야기(神戶物語)』에서 “아마 이 해안촌만큼 중국인과 일본인이 우호적으로 친밀함을 나누었던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을 정도이다. 바로 이 대목 어딘가에 코오베가 화상대회를 유치한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가. 현지인 일본과 화상과의 이른바 윈윈(win-win)의 방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흥미로운 것은 메이지 후기 코오베의 화상 왕징샹이 운영하던 푸싱하오의 무역 동선이 우리 한반도에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과 인천 일대에도 코오베 성냥의 상권이 미치고 있었던 것. 아울러 제1차세계대전 이후 중국의 민족자본이 중국 본토에서 성냥산업의 기초를 닦을 무렵, 코오베 화교는 중국의 민족 산업인 성냥산업에 자금을 대는 것 외에도 일본의 제조기술을 전하는 몫을 맡았다. 추후의 주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아마 인천에 성냥 공장이 들어선 것도 바로 이 시점을 전후한 무렵이 아닐까. 

6월, 방학을 앞에 두니 또다시 몸이 근질거린다. 날개가 돋는 것인가. 이번 여름에는 다시 코오베를 찾아야 할 듯도 싶고, 다시 타이완을 가봐야 하겠다 싶은 것은 푸저우(福州) 바로 코앞의 찐먼다오(金門島) 출신 왕징샹의 손자 왕보린(王柏林)이 『왕징샹관계문서(王敬祥關係文書)』를 타이완의 국립국부기념관(國立國父紀念館)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국부란 물론 쑨원이다. 국부기념관에 기증한 그 문서를 뒤져보면 당시 성냥무역 네트워크가 그려지지 않을까. 성냥으로 잇는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과연 ‘성냥 공장 아가씨’의 정체를 밝힐 수 있으려나.

각주
1. 화교들이 현지에 뿌리를 내린다는 뜻, 이와 반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켜 ‘루어띠꾸이껀(落地歸根)’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