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중학 1학년이 된 나는 지난 5월 17일 시험운행한 남북열차의 최연소 탑승자였다. 남북열차는 북에서 남으로 가는 동해선, 남에서 북으로 가는 경의선이 있는데 나는 동해선을 타게 되었다. 그것은 큰 행운이었다. 경의선은 우리가 만든 열차지만, 동해선은 북측이 만든 열차라 더 뜻 깊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남북열차의 탑승자로 선정된 이유는 초등학교 4학년 말에 참가했던 MBC <남북알아맞추기경연대회>에서 2등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화면합성을 통해서이긴 했지만 북측아이들과 접할 수 있었던 덕분에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북에 꼭 가봐야 할 분들이 많은데 대신 가게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만큼 더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다. 5월 16일 경복궁 동문에서 모여 숙소인 한화콘도로 갔다. 미리 카메라 배터리도 가득 채우고 메모장도 준비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었고, 엄마는 경복궁 동문에서 헤어졌다. 버스 안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나를 챙겨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밥을 먹고 몇몇 인터뷰를 끝내고나니 어느새 17일이 되어 우리는 아침식사 후 방북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평소보다도 더 맑았다. 버스를 타고 남측출입사무소를 통과해 비무장지대를 지나는데 기분이 묘했고 북측출입사무소에 도착해서는 그야말로 ‘입국심사’를 받았다. 북측직원이 숨소리까지 다 들릴 듯한 거리에서 내 방북증을 검사하는 동안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복장을 딱 갖춰 입은 것이 남쪽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직 이 휴전선이 우리민족의 얼까지 끊지는 못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바깥 풍경을 촬영하지 않기로 북측과 약속했기 때문에 내내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이 흐르고 저 멀리 돌산이 보이고 하늘도 무척 예뻤다. 가다보니 차츰 민가가 나왔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도 보이고 차도 지나다녔다. 우리나라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아서 긴장이 풀리면서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학교도 보이고 소가 밭일을 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지난 <남북알아맞추기경연대회> 2등 상품으로 5학년 초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내가 유심히 보지 않아서인지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해 너무도 신기했다.

곧이어 멀리 금강산이 보였다. 하지만 금강산은 목적지가 아니므로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샘물’이라는 공장을 지나 금강산역에 도착했다. 금강산 샘물을 한번 맛보고 싶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속으로 엄청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역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직접 이 금강산역을 디자인했다는 아저씨가 말하길 금강산역 한가운데에는 금강산 벽화가 있고 역 지붕은 금강산을 나타낸 것이며 벽화 옆에 유리로 된 부분은 폭포를 나타낸 것이란다. 역사(驛舍)의 부분 부분마다 의미를 부여해 딱 들어맞으니까 너무 신기해 금강산역이 달라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남북열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북측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간단한 식을 하고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인터뷰도 몇 개 하자 열차 안과 밖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해 열심히 찍었다. 친구들과 부모님, 선생님들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할 나를 생각하니 흥이 절로 났다. 이 동해선 열차는 좌석을 앞뒤로 2개씩 마주보고 앉게 해주어 상대방과 얘기하기가 편했다. 나는 이 남북열차 철로를 설계한 분과 통일부 아저씨와 같이 앉게 되었는데, 두 분 얘기를 들으니 머지않아 곧 남북이 통일을 할 것만 같았다.

좌석마다 음료수와 과일이 있었다. 음료수로는 북측사이다와 딸기단물, 금강산샘물이 있었다. 아까 생각이 나 금강산샘물을 마셔보니 남쪽 것과 비슷했고, 사이다는 남쪽 사이다가 익숙해선지 맛이 이상했다. 사이다에서 레몬 맛이 좀더 나는 것 같았다. 딸기단물은 너무 맛있어서 한 병을 혼자 다 마셔버렸다.

드디어 북측 아이들이 열차 옆에 한 줄로 쭉 서서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었다. 그 아이들은 나와 동갑이거나 나보다 한두 살이 더 많다고 한다. 남측에 ‘얼짱’(얼굴이 예쁘거나 멋있는 사람)이 있듯이 내가 보기엔 북측에도 ‘얼짱’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열차는 아주 천천히 달렸다. 평소 같았으면, 열차가 왜 이렇게 느리게 갈까 답답해했을 텐데 오히려 천천히 달리니까 지나가는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버스로 왔던 길과 열차로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기분이 색달랐다. 열차가 이 길로 지나가는 것을 처음 보았는지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우리를 향했다. 좀더 가다보니 집안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열차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며 남측은 남북열차 시험운행으로 온 방송국이 법석인데, 북쪽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건지 분위기가 너무 달라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

삼일포역을 지나고 감호역을 지나는 동안 어떤 북측 분과 아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어린이가 어른들 사이에 끼어있으니 궁금했던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꼭 옆집아저씨처럼 나를 푸근하게 대해줘서 얘기하는 데 긴장이 덜 되었다. 드디어 제진역에 도착해 우리는 많은 남측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북측 사람들과 함께 오찬장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테이블마다 지정좌석이 있어서 나는 북측 세 사람, 남측 네 사람과 합석하게 되었다. 북측 어떤 분이 내 옆에 앉아 중간 중간 모르는 단어들을 설명해 주어 의사소통에 지장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북한’이란 말보다 ‘북측’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내가 간혹 ‘북한’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면 북쪽 분들은 ‘북측’으로 내 말을 고쳐주었다. 다들 어른들이라 정치 같은 것을 얘기해서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북측 분들이 내가 심심해 할까봐 중간 중간 말을 걸어주어 좋았다. 그리고 내 컵에 북측 분이 콜라를 따라줬는데 컵이 빌 때마다 콜라를 채워줘서 ‘참 매너가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그들로 인해 북측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듯 누군가는 나를 보고 남측을 평가할 것 같아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한편으론 내가 너무 부족해서 걱정도 되었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북측 분들이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1시간이 엄청 짧게 느껴졌다. 이렇게 금방 헤어져 못내 아쉬웠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 할 얘기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