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2000)은 문학작품이기 이전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천 만석동(萬石洞)의 역사이다. 작가인 김중미(金重美)씨는 20년 역사를 가진 이 동네 공부방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다. 그 호칭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그의 정체성이다.

기차길옆작은학교가 만석동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87년이다. 처음에는 아가방으로 시작했는데, 어린 동생을 데리고 왔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자기들도 다닐 수 있는 공부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듬해 공부방을 열었다. 1988년 봄, 공부방의 첫 회원이 된 그 아이는 지금 공부방 이모다. 1990년에는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단독주택이라고 해도 위아래 합해서 15평이 될까말까 하고, 시멘트와 슬레이트로 대충 지은 판잣집이었다. 그래도 그 좁은 집은 아이들과 이모, 삼촌들 40~50명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놀기에 충분했다. 1998년에는 오랜 숙원이었던 ‘화장실이 있고, 비가 새지 않고, 마음대로 뛰어도 꺼지지 않은 방바닥이 있는’ 공부방을 새로 지었다. 새 집이지만 주변의 가난한 집들을 절대로 초라하게 하지 않는, 원래부터 그 동네에 있었던 것 같은 회색 건물이었다. 그림책 『강아지 똥』(1996)으로 유명한 정승각은 동네 아이들과 함께 새 공부방에 벽화를 그렸다. 공부방은 동네 사람들의 삶 한 가운데에서 그렇게 스무 해를 지내왔다. 동네 사람들과 공부방 식구들이 바라는 것도 큰 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만석동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나누고 섬기는 것 뿐. 그러나 개발논리에 사로잡힌 ‘다이내믹 코리아’가 그런 가난한 바람을 가만 내버려둘 리 없다.

지금 이 동네 버스정거장 이름은 만석비치타운이다. 이 얄궂은 이름은 개발논리에 떠밀린 도시 이농민의 남루한 삶 따위는 아예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가난한 동네 만석동, 괭이부리말은 이제 고층아파트와 신축빌라에 포위된 섬처럼 위태위태하다.

오후 4시30분쯤 공부방을 찾았다. 초등학생들이스무 명 남짓 모여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숙제하는 모습이 창을 통해 보인다. 저녁이 되면 중고생 언니, 오빠 들이 온다고 한다. 고층아파트에서 이 동네를 굽어보면 연약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어 보이겠지만,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부방에서 고층아파트를 올려다보면 오히려 그쪽이 아찔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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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경(이하  박)｜ 가구들이 많이 줄었죠?
김중미(이하 김)｜ 그렇죠. 한 150여 세대 될 거예요. 1987년만 해도 1,500여 세대였는데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많이 줄었죠.
박｜ 지금 있는 150세대 중에서 아이들 있는 집은 거의 다 온다고 보면 되나요?
김｜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새로 생긴 아파트나 버스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이사 간 아이도 있어요. 그렇게 이사가면 안 올 때도 많지만, 그러고도 오는 친구가 있어요. 학원 보내려는 부모님을 설득해 스스로 이곳에 오는 거죠. 정이 남아서 그런 것도 있고, 자기 존재가 인정받기 때문에 오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경우인데,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 저희들이 붙잡고 있는 애들도 있어요.
박｜ 공부방 일상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되지요?
김｜ 2시부터 초등부예요. 지금 아래층에서 노는 애들이요. 5시30분에서 6시 사이에 초등부가 끝나고, 저녁 먹고 나서 7시20분부터 중등부가 시작되죠. 9시쯤부터는 실업계와 인문계 고등학교 아이들이 와요. 고3 같은 경우에는 10시부터 12시 넘어서까지 있다 가죠.
박｜ 공부방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생하고는 주로 놀고, 중고생은 같이 공부하고 그러시겠죠?
김｜ 초등학생도 공부해야 해요. 왜냐면 이곳 아이들도 형편이 어지간하면 학원을 보내거든요. 그런데 학원 안 보내고 여기 보낼 정도라면 거의 뭐 최악인 거죠. 아니면 저희 공부방 식구들 아들딸이에요. 요즘은 유치원생도 한글이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는 애들은 1학년이어도 한글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기초학력만이라도 갖춰주려고 하는데 잘 되진 않아요.
박｜ 중고등반은 어떤가요?
김｜ 말로는 다 있어요. 국어, 영어, 수학, 사회까지. 하하. 저도 다 해요. 근현대사도 했다가, 국어도 했다가. 우리는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독해를 함께 하는 거예요. 수학도 이모, 삼촌 중에 공대 나온 친구나, 학원 선생 하면서 여기 일 돕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수업 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아이들이 하기만 하면 전혀 문제는 없는데 갈수록 그게 어려워요. 그나마 대학 간 친구들이 군대 제대하고 와서 동생들을 보면 정말 기막혀 해요. 자기들도 못했다고 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니까…….
박｜  공부방 아이들은 보통 언제쯤 들어오나요?
김｜ 거의 어릴 때부터 들어와요. 우리도 그렇고, 아이들도 어릴수록 집안 형편이든 뭐든 마음을 열잖아요. 그래야 우리도 아이들한테 깊숙이 들어갈 수 있거든요. 거의 초등학교 1학년 전후해서 들어오고, 고학년만 되어도 오래 못 가요. 어릴 적에 들어와서는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쭈욱 같이 가는 거죠.

 기차길옆작은학교는 단순한 공부방을 넘어 이제는 명실상부한 하나의 공동체이다. 아이들도 그렇고, 자원봉사자도 자기 형편과 기분에 따라 들락날락하는 곳이 아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숙자, 숙희, 동수, 동준이, 명환이와 영호형, 김명희 선생님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김명희 선생님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괭이부리말로 들어와 숙희네 집 2층에 자리잡았다. 작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김명희 선생님은 십중팔구 영호와 결혼하여 괭이부리말에서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숙자와 동수는 자연스레 그 아이의 이모와 삼촌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흐르면 얼마나 많은 식구가 될까. 기차길옆작은학교가 바로 그렇다. 그곳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누군가의 동생, 언니, 오빠, 이모, 삼촌이다. 이건 단지 호칭만 그런 게 아니다. 같이 일하고, 벌고, 나누어 먹는 식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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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예전에 아는 선배가 풀무(인하대ㆍ경인교대 연합동아리) 회원이었어요. 지금도 풀무에서 자원봉사 대학생들이 오나요?
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맥이 끊어진 게 2000년 쯤? 그 뒤로도 모집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거의 없어요. 90년대 말까지는 나름대로 잘 되었는데, 이후 대학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자원교사들도 조금 더 느슨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어하더라구요. 하지만 저희는 그걸 원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대학생 교사가 없는 게 낫다 싶었어요. 그리고 90년대 말부터는 공부방을 졸업한 아이들 중에 2년제든, 4년제든 대학가는 친구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 중 한 둘 정도는 공부방에 남았어요. 그리고 선배들 중에도 결혼해서 동네에 자리잡은 이들이 있지요. 지역이 재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가난한 집들이 줄어드니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2000년대 이후에는 외부 자원봉사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거예요.
박｜ 인천지역에 공부방이 많이 남아있나요? 94년인가, 저 대학 3학년 때 인천지역 공부방연합회가 인하대에서 합동공연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 그때 한참 많이 있었죠. 민중교회를 비롯해서 노동운동하던 사람들도 많았구요.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에 거의 사라졌는데, IMF때 교회 중심으로 다시 생겨났고, 2003~2004년 전후해서는 지자체가 지원하는 아동센터가 많이 생겼어요. 아동 케어(care) 이런 말도 많이 하잖아요. 무료급식도 하구요. 저희도 2000년대부터 유사 공부방이라고 지원을 받긴 했는데 정부가 원하는 대로 안 하기 때문에 트러블이 많아요.
박｜ 나라에서 원하는 건 뭔데요?
김｜ 사람 수, 아이들을 머리수로만 생각해요. 한달에 몇 명이, 몇 번 왔다 갔냐. 그리고 보통 지역아동센터는 무료급식을 많이 하는데, 저희는 무료급식은 안 해요. 정말 곤란하면 반찬을 해서 갖다 줄 때도 있는데, 어지간하면 집에서 먹고 오라고 해요. 왜냐면 무료급식을 하면 결국 급식만 남거든요. 애들이 급식 먹으러 오는 거지, 이곳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고, 사람간의 정을 찾으러 오는 게 아니게 되어버려요.
박｜ 공부방 살림은 어떻게 꾸리시나요?
김｜ 저희들이 20년 가까이 되니까 아주 적게라도 오랫동안 후원해주시는 회원들이 꽤 계세요. 한달에 200만원 정도는 후원회비가 들어와요. 그건 공부방 운영비로 다 들어가지요. 그런데 이곳 공부방에서 <만석신문>도 만들고, 공부방에 상근하는 부부가 두 쌍이거든요. 그 사람들은 직업이 공부방 활동인 거니까 그걸 채워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하냐면, 부부당 70만원을 줘요. 그리고 애들 한 명당 20만원. 이 집(만석동 공부방 상근 가족)은 애들이 세 명이니까 130만원을 받죠. 미혼인 교사는 40만원을 줘요. 그 돈은 공부방 운영비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 하는 친구들이 공제회비라고 해서 한달에 얼마씩 내요. 그건 담당자만 알고 아무도 몰라요. 자기네 형편 따라 조정이 가능한데, 우리 사이에도 빈부 차가 있어서 각자 형편껏 내요. 식구니까 나눠 쓰는 거죠. 미혼인 교사가 40만원씩 받고 6~7년 있다가 결혼하려면 돈이 없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특별조항이 생겨요. 있는 만큼 내!
박｜ 동생 시집보내고 딸 시집보내듯 하는 거네요?
김｜ 돈을 모으고 그 안에서 다 쓰고 보고하고, 그냥 자발적으로 이렇게 살아요. 저희들은 옷 같은 거에 돈을 안 써서 그렇지, 밥도 잘 먹고 넉넉히 산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은 학원 안 보내고 과외 안 시키고 핸드폰 안 해주니까 돈이 별로 안 들어요. 물론 불만은 조금씩 있지만요.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서, 우리 딸 같은 경우는 피아노 못 배우고 자라서 되게 억울해 했는데 다행히 요샌 ‘방과 후 학교’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걸 이용하기도 해요. 80~90년대에 비하면 정말 형편 좋아진 거예요. 그때는 우리 부부가 30만원 받았거든요. 그때는 거저 받는 게 참 많았어요. 옷도 다 알아서 사주고. 저희들은 서로 물려주는 게 생활이 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요번에 누구네 집 딸이 입학하는데, 물려받은 옷으로 입학식에 가거든요. 근데 그 위로 여섯 명이 입학식에서 다 그 옷을 입었어요.
박｜  사진이 다 똑같겠네요. (웃음)
김｜ 저희 큰딸이 잘 사는 친척한테 받은 정장을 물려 입었거든요. 근데 그 옷이 불편하니까 잘 안 입어요. 그러니 입학식 때만 돌려 입어도 상당히 새 옷이죠. 이모들이 아르바이트해서 사준 옷이 있으면 그것도 계속 물려 입어요. 너무 낡아서 더 이상 물려줄 수 없으면 그 옷이 다시 딸한테 와요. 그럼 저희 큰딸이 이거 보존하겠다고걖걖걖애들한테 참 좋은 것이, 옷을 물려 입으면 이건 누구한테 받은 건데, 이건 어느 때 입었던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물려받는 애는 “맞아, 이거 누구 언니가 어느 때 입었어. 나도 되게 입고 싶었는데,” 이래요. 저희들은 언니가 예쁜 옷을 입으면 되게 좋아해요. 기다리는 거죠.
박｜ 명절 때는 그래도 진짜 핏줄을 만나러 다녀오시나요?
김｜ 그럼요. 저희도 부모님 생신 때 가고 할 건 다 하지요. 하지만 저희들이 사는 방식을 아니까 시부모님도 명절 때 당연히  안 자고 돌아간다고 알고 계시죠. 저희들은 농담처럼, 여기 들어오면 친구들 없어지고, 그 전에 있던 인간관계 다 끊긴다고 얘기해요.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반대도 하셨지만, 지금은 공연 같은 거 하면 와서 축하해주고 좋아하세요. 부모님들도 바뀌신 거죠. 어쩔 수 없이 감수하시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제 공연 이야기를 하자. 기차길옆작은학교는 1990년부터 해마다 공연을 열고 있다. 나는 92년 선배 꼬드김으로 공부방 공연에 따라간 것을 계기로, 96년부터는 거의 매년 공부방 공연을 챙겨보고 있다. 어느새 공부방 아이들이 눈에 익어서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안부를 확인하고, 키는 얼마나 자랐는지, 머리 모양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눈여겨보는 게 즐겁다. 그리고 해마다 놀라우리만큼 발전하는 공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거 공부방이 맨날 공연 연습만 하는 거 아냐? 근데 이 말은 사실 맞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이라는 제목으로 16년째 계속하고 있는 공연은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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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저는 92년도에 동인천 카톨릭회관에서 했던 공연을 봤어요.
김｜ 그래요? 그때는 우리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손님이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게 서툴고, 조심스러웠죠.
박｜ 그때도 연습 많이 하고, 일상 프로그램 중에도 공연 준비가 녹아있고 그랬나요?
김｜ 그때도 그랬어요. 우리 아이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보니까 노래 하나를 가르쳐도 너무 좋아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기 상처를 잘 드러내지 못하니까 연극을 해보자 생각했죠. 그걸 하면서 아이들이 변화하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공연도 해보면 좋겠다 생각한 거죠.
박｜ 초기에는 풍물과 노래 위주였던 거 같아요.
김｜ 그런 게 쉽게 할 수 있고 쉽게 가르칠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이 신나게 치면서 자기 스트레스도 풀었구요. 단지 공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다보니 실력이 쌓이고, 아이들 안에서 재능이 보이기도 하고, 키워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초기에는 한 달 생활비도 없어 힘들었는데, 졸업하면서 직장 나가는 친구들이 생기니까 그때부터는 저희들이 외부로 배우러 다니기도 했죠.
박｜ 직장 다니는 이모 삼촌들이 공연에 필요하겠다 싶으면 멀리서 배우고 와서 가르쳐주는 거예요?
김｜  예, 저희들이 다 배웠어요. 처음에는 전문가를 불러서 해보거나 몇 번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아이들 특성을 모르잖아요. 그 사람들 보기에는 재능 있는 아이들이 먼저 보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저희들이 얻는 것보다 아이들이 잃는 게 더 많더라구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차라리 서툴더라도 우리가 배워서 하자. 그림이건, 사진이건, 춤이건, 연극이건, 그렇게 하기 시작한 거예요.
박｜ 인형극도요? 요즘 기차길옆작은학교 공연 보면 인형극이 정말 발군이던데.
김｜ 인형극 같은 건 열심히 돈 주고 보러 다녀요. 제가 책 내면서 제일 좋았던 건 마음껏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딴 데는 돈 쓸 게 없었는데, 공연만큼은 실컷 보러 다녔죠. 이번 공연에는 관절 인형을 선보였는데, 인형 제작도 공연을 보면서 눈썰미 있는 친구들이 만들어본 거예요. 저희들은 다 주먹구구예요. 인형극에 관한 책도 별로 없어서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구요. 그리고 저희가 작년에 춘천인형극제에 처음 참여했거든요. 인형극제에 가면 무대 뒤를 볼 수 있잖아요. 거기서 배운 게 많죠.
박｜ 춘천인형극제 나가신 건 전혀 몰랐네요. 작년에 나가셨다면 재작년 아이템을 들고 나가신 거예요?
김｜ 예,  아이들 수는 줄고 미래는 막막하고, 꿈은 계속 꾸어야겠고걖걖걖. 그러다 춘천인형극제에 아마추어 극단도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작년에 참여해본 거예요.
박｜ 올해도 참여하세요? 올해 공연 정말 멋졌는데.
김｜ 올해는 1등 목표! (웃음). 작년에는 장애인학교 친구들이 와서 정말 감동적인 공연을 펼쳤기 때문에 승부가 안 됐어요. 올해는 애들한테 뭔가 목표가 생겼죠. 저희들이 공연을 일년 내내, 본격적으로는 한 6개월 준비하는데 딱 한번만 하면 너무 섭섭해요. 그래서 너무 아까워요. 그 허전한 마음을 춘천인형극제로 돌리는 거죠.
박｜ 혹시, 소문이 나면 어디에서 기차길옆작은학교  한번 와서 공연해주세요, 그러면 해주실 수 있으세요? 사정이 허락되면?
김｜ 인형극이나 풍물은 가능해요. 단, 사정이 맞아야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아이들이 쭈뼛거리고 섞이기 힘들어하면 우리도 안타깝고 아깝죠. 그래도 공연 한 번 하려고 별 고생을 다 하니까, 아이들, 특히 꼬맹이들이 너무 아까워해요. 우리 내일도 공연해야 한다, 어떤 애는 일년 내내 공연해야 한다 이러는데,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나도 너희 만할 때 그랬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버겁다, 힘들다 이래요.
박｜ 해마다 공부방 공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니까, 저희는 농담처럼 “이제 기차길옆작은학교는 벤포스타(Benposta)1처럼 서커스로 가야 한다”고 늘 말해요. 선생님이 이전에 쓰신 글을 봤는데 벤포스타에 직접 다녀오신 뒤 굉장히 깊은 영감을 받으신 것 같더군요.
김｜ 근데 거기도 문 닫았어요. 저는 2004년에 갔었는데, 그때도 벤포스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많았어요. 제가 갔을 때만 해도 스페인 애는 딱 한 명이고, 나머지는 다 남미나 아프리카 아이들이어서 정부 쪽에서도 회의적이었다고 해요. 실바 신부님의 방향은 확실했지만 운영상 여러 문제가 생기고, 아이들이 공연을 못 나가니까 지치고, 그러다보니 벤포스타 출신들이 외부의 예능 계통으로 흘러나가는 일이 생겼다고 해요. 저희가 다녀오고 1년 뒤에 문을 닫은 거 같아요.
박｜ 그럼 벤포스타 같은 문화겚냅?공동체는 실패한 건가요? 제가 읽었던 선생님 글에서는 벤포스타에서 기차길옆작은학교의 미래를 보신 것 같았는데.
김｜ 저는 거기가 끝났다고 해서 벤포스타가 지향하는 희망이나 꿈이 실패한 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벤포스타가 갖고 있던 꿈은 성공을 지향하고, 유명해지거나, 힘을 갖는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그곳의 아이들은 함께 노래하고, 서커스하고, 자기들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해나가잖아요. 내부의 힘이 단단했을 때, 외부와도 자신 있게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공부방을 하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후원을 끌어대고, 공부 열심히 시켜서 좋은 대학 가게 하고, 성공하게 하고, 그런 개별적인 꿈을 이루는 게 최종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저는 처음부터 그걸 지향한 건 아니에요. 저는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지금 상처 받은 아이들을 치유하고, 지금 무언가 같이 공동의 꿈을 갖는 거요. 그래서 지금 함께 있는 애들 중 몇 명이 뒤쳐지면 기다렸다 같이 가면 된다는 거예요. 저희들이 공연을 하면서 그런 꿈을 갖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되었는데, 어린이공화국 벤포스타를 보면서 그 꿈이 더욱 구체화된 거죠. 아, 이게 가능하구나 하는. 아이들과 같이 공연하고, 여행하고, 같이 노동하고, 이런 건 우리도 가능하니까요. 어떤 것보다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 꿈을 이야기해주면, 다른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자기들이 무대를 알잖아요. 그리고 재능이 있건 없건 다 함께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요. 벤포스타의 이상이랄까 핵심은, 가장 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이 맨 위로 가고, 힘세고 많이 가진 사람이 맨 아래 가는 피라미드예요. 아이들이 그걸 이해하는 거죠. 공부방도 그래요.

기차길옆작은학교는 2001년부터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이모와 삼촌들이 전세금, 결혼자금을 덜어 강화에 집과 손바닥 만한 땅을 마련한 것이다. 이 땅은 언젠가 만석동에서조차 밀려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쉼터가 되고 평화가 되었다. 현재 강화에는 살문리에 사는 아이들 10명이 다니는 공부방이 있고, 논 1,500여 평과 밭 500여  평 농사를 짓고 있다. 김중미씨 가족도 현재 강화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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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강화도에 공부방을 마련하셨을 때 여러 생각이 있으셨을 텐데, 생각대로 잘 진행되나요?
김｜ 아뇨, 땅이 없으니까. (웃음) 그래도 괜찮아요. 90년대에 애들하고 우리 먹고 살 쌀만 있으면 굶어죽지는 않을 텐데, 이런 얘기를 곧잘 했어요. 그리고 애들하고 농사캠프 같은 데 가면 굉장히 좋아했죠. 그렇다면 우리 한 번 그렇게 살아볼까 한 거죠. 저희들이 서둘러서 강화에 갔던 이유 중 하나는, IMF때 아이들 집안 형편이 너무 안 좋아져서 그런 것도 있어요.
박｜ 근데 왜 시골 중에서도 강화였죠?
김｜ 글쎄요, 인천을 떠나기가 불안해서 그런가, 행정구역상 인천이잖아요. 안 그랬으면 안 갔을 것 같아요. 충청도 쪽도 알아봤고,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결국은 인천을 못 떠나겠더라구요. 어쩐지 만석동과 연결되는 느낌이 드니까요. 지역번호도 같고 심리적으로도 그렇죠.
박｜ 강화 집은 애들에게 시골집, 고향, 이런 의미겠죠?
김｜ 그렇죠. 공부방 애들이 뭘 하다가 잘 안 되면 이런 농담을 해요. “나 강화 가서 농사나 지을까봐.” 애들한테는 마지막 보루죠. 저희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야, 먹을 쌀이 있다는 게 얼마냐, 그냥 국으로 이렇게 살자, 이렇게 꼬셔요. 그러면 애들이, 그래 강화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 그렇게 살면서 트럭에 공연 장비 싣고 인형극 하러 다니자고 그래요.
박｜ 유랑극단처럼요?
김｜ 예, 그게 진짜 꿈이거든요. 그러고 살자. 농사도 짓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렇게 먹고 살면 돼요. 저희는 번듯하게 살거나, 거창한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 모인 사람들끼리 계속해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고리를 엮어가면서 살면 된다는 생각을 늘 하니까요.

한 시간 반 정도 두서없는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올해 5월에 있었던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 17>의 공연 팜플렛을 꺼내 보았다. 공연 때는 대충 읽어 넘겼던 문장 하나하나에 남다른 무게가 느껴졌다.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던 공동체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 곁에 이미 와 있었다. 공동체는 미래에 도달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지금 절망하고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손바닥만큼 남은 우리 동네도 아파트가 되거나 아파트 사람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만석동에서 떠밀려나면 그때 우리는 트럭에다 인형과 악기를 싣고 길을 떠날 것이다. 도시 변두리의 지하방이나 희망을 잃은 농촌과 바닷가 마을을 돌며 가난한 아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이 행복한 세상,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평화를 나누러 여행을 떠날 것이다. 
-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 17> 팜플렛 여는글에서

기차길옆작은학교는 만석동에 깊이 뿌리 내린 지역공동체지만, 기어코 누가 그 뿌리를 뽑아 던진다 해도 공부방 식구들의 삶은 어디에서건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만석동에 그들이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그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진짜 만석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