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5년까지 조선과 타이완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양자 사이의 교류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일본제국에 강제로 편입되었다는 공통의 운명을 지니고 있었으나, 사용하는 언어도 문자도 그리고 민족도 달랐던 데다가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현대 조선무용을 일군 이로서 조선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그 이름이 드높았던‘반도의 무희’ 최승희(崔承喜, 1911~19 67)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타이완을 찾아왔다. 1936년 그녀는 타이완 문예계의 초청을 받아 순회공연을 했는데, 이는 조선-타이완의 교류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1936년 7월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
1926년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연구소에 들어간 최승희는 이미 1929년에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일원으로 타이완에서 공연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고 주력 멤버가 아니었던 까닭에, 최승희 본인도 기억이 확실치 않은 듯했다. 타이완에 두번째 왔을 때 최승희는 1929년 공연에 대해 “자몽을 많이 먹었다”, “린(林)씨라는 부자가 집으로 불러 크게 한턱냈다”, “타이완은 더워서 제법 땀을 흘렸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1라고 떠올리는데, 아마도 피상적인 추억밖에 남아있지 않은 탓이리라. “린씨라는 부자”는 타이완의 내로라 하는 부호로, 타이베이 근교 반챠오(板橋)에 살았던 린씨 집안이라 생각된다. 린씨의 초대로 이시이 바쿠 일행이 타이베이 시내 베이터우(北投) 온천에 갔다는 기록도 있다.2

그 후 최승희는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탈단(脫團)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전통무용 색채가 배인 그녀의 현대무용은 세간의 주목을 얻게 되는데, ‘반도의 무희’로 불리기까지 커다란 도약을 이루었다. 그리고 1936년 7월 최승희의 두번째 타이완 공연은 이미 영화 <반도의 무희(半島の舞姬)>(콘 히데미今日出海 감독, 1936년 3월 개봉)가 상연되어 한창 인기가 높아가던 무렵이었다.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을 주선했던 것은 당시 타이완 최대의 문예단체인 ‘타이완문예연맹(臺灣文藝聯盟, 약칭 ‘문연’)’이었다. 창립 2주년을 맞아 기념음악회를 개최하면서, 한편으로 도쿄지부를 통해 최승희의 무용공연을 성사시켰던 것이다.3‘문연’은 기관지 <타이완문예(臺灣文藝)> 1936년 3월호에 이 행사를 소개한 후, 선전효과를 노린 듯 최승희가 타이완에 오는 7월까지 이 행사를 지속적으로 알렸다. 최승희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아직 소녀였고 무용도 진정한 자기 예술로 익지 않았던 무렵”인 1929년과 달리, 1936년 두번째 타이완 방문을 목전에 두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무용연구소를 가진 인기 절정의 ‘무희’로서 일본 문예계를 풍미하고 있었다. 그런 최승희의 무용공연을 선전하기 위한 이벤트는 공연이 결정된 1936년 2월, ‘문연’  도쿄지부가 ‘무희 최승희양 도쿄지부 환영회’를 열었던 것을 시작으로 도합 1만장의 사진이 수록된 최승희 특집호의 기획(결국 발행되지는 못했다), 최승희의 글 「나의 언어(私の言語)」, 「숭고한 어머니의 눈물(尊し母の淚)」의 <타이완문예> 게재4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문연’의 주재자가 직접 도쿄에 가서 최승희의 타이베이라디오방송국원고 「나의 무용에 대하여(私の舞踊について)」를 받아 <타이완문예>에 실어었고 ‘문연’ 소속 작가가 최승희의 무용에 관한 감상을 발표할 정도였다.5

‘문연’이 애써 최승희에게 타이완 공연을 요청했던 까닭은 ‘일본무용계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그녀의 명성을 빌리는 일 외에도 “그녀의 인기 안에 깔려있는 그 진정한 모습”이 타이완에서도 회자되어 “무용 예술의 가장 건전한 바탕을 일구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서양식’ 무용과 ‘조선식’ 무용을 융합하고 식민통치 아래에서 근대적겧适렝?예술을 창출한 최승희는 예술활동(기획, 무용, 문학, 희곡을 포함한)을 업으로 삼는 타이완의 신지식인에게 가장 좋은 본보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통치 아래, 식민지의 예술가와 지식인 들은 근대문화와 자신의 민족적 전통 사이에서 늘 갈등해야만 했다. 그런데 최승희는 예술을 통해 민족문화를 발전적으로 보존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타이완인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마치 최승희에 의해 그 존재를 알리는 듯했다. 최승희를 낳은 건강한 예술적 환경이 타이완에서도 자라나기를 바란다”6라고 ‘문연’ 도쿄지부의 리우치에(劉捷)가 썼듯이, 언어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자신을 표현한 최승희를 통해 타이완인의 나아갈 길이 제안되었던 것이다. 주최측은 각 민족의 전통을 말살하는 동화정책에 저항해 자신의 예술을 실현한 최승희를 타이완인이 느끼고 배우기를 바랐다.

한편, 최승희는 1936년 2월 ‘문연’ 도쿄지부가 개최한 환영회에서 타이완 작가 장원환(張文環, 1909~1978), 우위산(吳鬱三)에 화답하며 조선무용과 서양무용에 관한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타이완 문화의 환담” 내지 “같은 처지에 있는 타이완인에게 동정어린 비판”7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무용가와 타이완인 작가가 도쿄에서 일본어를 공통의 언어로 하여 교류를 실현한 한 장면이었다. 더구나 그 때는 예술론뿐 아니라 ‘조선문화’도 화제로 놓였다. “타이완인에게 동정어린 비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대화가 피식민자라는 동지적 연대감에 바탕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선전이 계속되자 최승희의 인기는 점점 올라갔으며, 그녀의 공연에 대한 타이완 시민들의 기대감은 한껏 달아올랐다.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을 실현시킨 ‘문연’ 도쿄지부의 주재자 우쿤황(吳坤煌)이 도쿄에서부터 최승희 일행과 동행했다. 최승희 본인을 비롯해 5인의 문하생, 음악부와 무대감독 그리고 조명 등으로 이루어진 스무 명이 넘는 일행이 1936년 7월 2일 오후 3시 반쯤 타이베이역에 도착했다. 타이베이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타이완 신사에 참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역에서 타이완 신사로 가는 길에 주최자와 후원회, ‘문연’ 관계자, 공연장소인 ‘대세계관(大世界館)’ 관계자가 환영단 맨 앞에 나와 있었다. 관계자뿐 아니라 타이베이 시내의 카페여급, 기생, 여학생, 직장여성 등 최승희의 팬들이 길을 메웠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린 여성 예술가 최승희는 사회진출 의욕에 불타는 신여성들에게 가히 우상이라 할 만했다.

7월 2일에는 후원회의 초대로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대세계관을 들렀으며 라디오방송에도 출연했다. 첫날부터 꽉 짜인 스케줄이었다. 7월 3일 오전에는 관청을 방문했고, 오후 1시부터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유명 찻집 메이지제과(明治製菓)에서 마련된 환영좌담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3일부터 5일까지 저녁 7시에 공연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4일 오후 1시에는 사진촬영을 위해 타이베이식물원을 방문하고, 3시에는 시내 일반여성들과의 좌담회, 5일 오후 1시부터는 유지들과의 대화 등, 최승희는 쉴 틈 없는 스케줄을 버텨냈다. 타이베이 공연이 끝나면 15일의 신주(新竹) 공연을 포함해 전국을 순회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 프로그램이 소개된 신문광고 「웅장하고 아름답다! 가인이 그리는 도약의 무용시(壯麗! 佳人が描く跳躍の舞踊詩)」(<臺灣日日新報>, 1936년 7월 3일자)를 보면 당시 타이베이 굴지의 극장이었던 대세계관의 저녁 7시 공연은 아래와 같이 짜여 있었다.
    
        제1부
  1. 아이들의 세계
  2. 칼의 춤
  3. 두 개의 코리안 멜로디
  4. 그놈의 오뚜기
  5. 마음의 흐름

        제2부
  1. 봄빛을 받으며
  2. 에헤야 놓아라
  3. 애가
  4. ○作(○은 판독 불가능)
  5. 아이의 세계
  6. 희망을 껴안고

       제3부
  1. 인도 애상곡
  2. 황금 손가락의 춤
  3. 호니보오 선생
  4. 오리엔탈
  5. 조선풍 듀엣

전체 열여섯 곡 중 ‘칼의 춤’, ‘두 개의 코리안 멜로디’, ‘에헤야 놓아라’, ‘조선풍 듀엣’은 모두 조선의 민족색이 짙은 곡으로 최승희의 대표작이다. 그와 달리 ‘순일본적 정조’가 가득한 곡으로 ‘그놈의 오뚜기’나 ‘호니보오 선생’이 있고, 서양풍이 강한 ‘마음의 흐름’, ‘봄빛을 받으며’도 함께 편성되어 있었다. 현대적 무용 안에 민족전통을 잘 우려낸 최승희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 구성이었다. 멜로디도 “곡목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충실함과 진실함”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었다(<臺灣日日新報>,1936년 6월 27일자)

타이완문학에 반영된 최승희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은 “예상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대예술가를 맞이하여” “조만간 다른 인물”이 타이완에서도 태어나리라는 희망이 타이완의 문예계에 움트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 타이완에서는 무용계의 최승희를 비롯하여, <카이조오(改造)>로 등단한 장혁주(張赫宙, 1905~?), <선데이 마이니치(サンデ一每日)>의 대중소설 현상공모에 일등으로 당선한 김성왕민(金聖王民, ‘왕’+‘민’을 주목하라),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세계기록을 경신한 손기정 등, 조선인이 이룬 세계적인 성공을 목표로 삼자는 ‘조선’붐이 발생했다. 타이완인들은 이러한 조선붐에 자극받아 예술과 사회활동에서 한층 분발했다(<臺灣文藝>, 제3권 제7?합본호, 1936년 8월 28일).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은 조선인의 성공에 대한 타이완인의 동경 내지 라이벌의식이 발현된 행사였다.

그녀의 매력적인 이미지는 타이완문학에도 투영되었다. 최승희의 초대를 주선했던 ‘문연’ 도쿄지부의 주요 멤버로 이후 타이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장원환이 있었다. 1907년 타이완에서 태어난 장원환은 1927년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는 1938년, 11년간의 일본유학을 마치고 타이완으로 돌아왔다. 새 부인을 따라 타이완으로 돌아온 장원환은 곧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의 첫 작업이 쉬쿤취앤(徐坤泉, 1907~1954)의 한문소설 『귀여운 원수(可愛的仇人)』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귀여운 원수』는 1935년, <타이완신민보(台灣新民報)>에 160회 연재된 소설로,  1936년 2월 출간된 단행본 원작과 장원환의 일본어역(台灣大成映畵公司出版, 1938)을 포함하여 1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자랑한 전전의 베스트셀러이다. 번역이란 본래 충실함을 요구하지만, 장원환은 애써 원작자의 의도를 어겨가며 일부를 바꿔 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곳은 『귀여운 원수』의 남자 주인공 핑얼(萍亞)의 정부를 원작의 일본인 댄서에서 조선인 댄서로 바꿔놓은 대목이다. 이런 각색은 단지 독자를 의식해서라거나 작품의 구성을 정비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귀여운 원수』 원작에서는, 핑얼에게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연인 리루(麗茹)가 있지만, 도쿄 유학 중 키미코(君子)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결국 핑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리루에게 돌아오고 두 사람은 부부로 맺어진다. 키미코는 본디 자산가의 딸로, 고등여학교를 졸업했지만 아버지가 파산하고 나서는 여급을 거쳐 댄서가 되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키미코는 유복한 대학생 핑얼을 만나 금전적인 이유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그리고 핑얼은 키미코와 육체관계에 빠져 리루의 존재를 잠시 잊는다.

그런데 장원환은 번역하면서 키미코를 쓰키지소극장(築地小劇場)8에도 출연하는 고급 조선인 댄서로 그리고 있다. 번역본에서 키미코는 “상당한 지식을 갖춘 여성”으로 더군다나 “식민지에서 흘러온 여성”인지라 “핑얼은 미끄러지듯마음이 끌려갔던 것”이다. 조선인 여류무용가라는 설정은 곧 최승희를 떠올리게 한다. 장원환과 최승희의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로는, 그들이 최승희의 타이완 방문 직전 ‘문연’ 도쿄지부 주최의 환영회에서 만난 사실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곳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타이완인에게 동정어린 비판”을 했던 최승희에게 호의를 품었던 장원환이 그녀의 이미지를 키미코에 투영하여 핑얼의 마음을 흔드는 존재로 바꿔놓았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으리라. 또한 최승희의 남편이자 좌익운동가인 안막(安漠, 1910~?)이 조선인 프롤레타리아 문화단체와 함께 활동한 경력을 지닌 우쿤황과 얼마간 교류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장원환이 『귀여운 원수』의 번역판에서 의도적으로 조선인을 등장시켰던 것은 제국의 수도 도쿄에서 피식민의 동지인 타이완인과 조선인 사이에 어떤 교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또한 당시는 원작의 키미코처럼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도 생계를 위해 카페여급으로 일해야 했던 여성이 일본 내지와 타이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작 『귀여운 원수』의 키미코는 타이완의 남성 독자가 고학력 여급에게 품고 있는 환상을 만족시키는 형상이기도 했다. 장원환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몰랐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키미코를 좌익과 관련된 조선인 여성으로 새롭게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장원환이 도쿄 유학시절 좌익운동과 관계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에 발벗고 나섰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한다면, 키미코라는 인물에는 좌익 여성운동가나 조선의 여성예술가에 대한 장원환 자신의 동경 내지 추억이 어려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공연 전의 화려한 선전과는 대조적으로, 1936년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에 대한 평론이나 감상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전전의 자료인지라 산일된 탓도 있겠지만, 무용에 대한 타이완 측의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 그리고 피식민 동지 사이의 교류를 일본 당국이 못마땅하게 여긴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실 1936년 7월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을 성사시킨 ‘문연’은 이같은 피식민 민족 간의 교류활동을 꾀한 탓에 일본 정부로부터 한층 거센 압박을 받아야 했다. 거기에 내분까지 겹쳐 ‘문연’은 결국 <대만문예> 8월호(1936)를 낸 후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처럼 얼마 안 되는 전전의 타이완-조선 문화교류는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장원환의 『귀여운 원수』 번역에서 확인되듯 미미하게나마 지속되고 있었다. 최승희의 성공은 타이완 문예계가 자신의 길을 모색하던 여정에서 만난 훌륭한 본보기이며, 식민지 문예관계자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승희의 타이완 공연은 민족전통의 현대적 창조에 있어 타이완인들을 깨우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