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발생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16년 전 미국에 건너온, 고등학생 딸과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을 둔 필자에게, 지난 십여 년간 미국 내에서 발생했던 다른 학내 총기난사 사건과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범인이 ‘아시아계’라는 소식을 듣고는 ‘제발 한국계만은 아니기를’ 바랐고, 한국계임이 밝혀졌을 때는 미국 내 한인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앞섰다. 그리고 여론이 한국정부와 언론의 과민반응을 의아해 하며 조승희 개인의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급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 사건을 미국의 주요 매체에서 다루는 것처럼 단순히 한 개인의 정신질환 탓으로 돌리고 넘어갈 문제인가.

물론 언론에 보도된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른다면 그가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음은 사실인 것 같다. 따라서 미국언론은 그와 같이 파괴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학생을 미리 어떻게 알아보고 사고를 방지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나 미래의 조승희를 어떻게 미리 알아볼 것인가는, 간단히 말해 평소 폭력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지만, 괴상한 행동을 더러 하는 아마도 적지 않은 수의 외톨이 학생들을 학교와 경찰이 모조리 집중 관리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볼 경우에도 대개는 총기구입과 소지에 대한 규제 정도를 이슈로 제기했고, 그보다 더 구조적인 문제로 본다 해도 기껏해야 미국 정신의료체계의 실패를 지적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조승희사건의 배경이 되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총기의 구입과 소지가 현재처럼 자유롭지 않다면, 정신의료체계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더 포괄적으로 보살피도록 되어 있다면 조승희사건을 미연에 방지했을 가능성은 꽤 있다.

그러나 총기소지의 자유나 정신의료체계 등의 문제 역시 조승희사건의 성격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많은 매체에서 지적했듯이 이 사건은 1996년 이래 간헐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발생해 온 미국 학내 총기난사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사건에 대한 이해도 그 연쇄적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 1996년 이래 미국사회의 총기소유 규제는 훨씬 더 강화되었고, 그 무렵 정신의료체계가 특별히 악화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조승희사건을 비롯한 학내 총기난사 사건에는 총기소유의 규제나 정신의료체계의 실패라는 조건 외에 다른 더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직장과 학교에서 발생하는 총기난사 사건을 분석한  『분노의 폭발: 격노, 살인, 그리고 반역』의 저자 마크 에임즈(Mark Ames)의 시각은 주목을 요한다.

사건 발생 5일 후 대안 인터넷매체 얼터넷(www.alternet.org)에 올린 에임즈의 글  「버지니아공대, 범행 무대인가? 범행 원인인가?」에 따르면 조승희사건을 비롯한 학내 총기난사 사건의 공통점은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의 프로파일이 아니라 그들의 교육환경이다. 범인들은 성별, 가족적 배경, 취향, 성적 등에서 아주 다양하지만 그들의 교육환경은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내리비치는 소독약 냄새 물씬한 복도에서부터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적을 올리라는 극심한 압력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정신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의미의 인성교육보다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를 체현하고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고 있는 미국 교육현장이 문제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미국 교육현장이 모두 이렇다고 싸잡아 말할 수는 물론 없겠다. 그러나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대두 이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대입과 사회생활의 전망, 그에 따른 부모와 학교의 압력으로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과외활동과 숙제 등에 시달리고 있는 현상은 학계와 매스컴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져왔다.

지난 16년간 그곳에서 아이들을 기르며 생활한 필자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미국 교육이 학생들에게 가하는 압박은 한국에 못지않거나 오히려 더 심하다. 한국에서 ‘입시지옥’을 거친 필자의 고교시절 가방보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들의 그것이 훨씬 더 무겁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란 일이 벌써 7~8년 전 일이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딸 또한 그보다 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닌다. 미국사회가 다양한 만큼 미국의 교육 또한 다양한 것도 사실이지만, 소위 엘리트학교가 사회 전체의 추세를 선도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극심한 생존경쟁 논리 때문에 학생들이 받는 압박감이 모두 ‘분노의 폭발’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학생들의 성격, 성장배경, 가정의 분위기, 특정 교사나 학교의 분위기에 따라 개개인이 받는 압력과 반응이 다를 것이다. 조승희의 경우나 다른 학내 총기난사 사건에서 보는 극단적 ‘폭발’은 예외에 속한다. 많은 학생들이 부모나 교사, 친구 등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주는 타인의 도움으로, 어떤 형태로든 좌절감과 분노를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난 십여 년에 걸쳐 총기난사 사건이 꾸준하게 발생해왔다는 사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특히 이민 1세들이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 것이 자식의 성공이고, 심지어 순전히 ‘지구화’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한 일시적(?) 이민이 유행하고 있는 한국 실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앞서 예로 든 글에서 에임즈가 학내 총기난사 사건의 공통조건 중 하나로 든 것이 “스스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편으로 자식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따라고 압력을 주는 부모”인데, 한국계 이민가족은 바로 이런 프로파일에 들어맞을 가능성이 많다.

한국에서는 요즘 미국에 이민 간 친척이나 친지가 누구나 한둘은 있게 마련이고 그의 자녀들이 명문고교와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에서 성공 가도를 달린다는 소식을 드물지 않게 듣는다. 그러나 아직도 ‘인종차별’이 엄연한 미국사회에서, 그들이 과연 얼마만큼 진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 ‘성공’ 사례 뒤에는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실패의 사례들이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는 보통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살리지 못하고 장시간 중노동을 통해 경제적 안정과 성공을 추구한다. 부모세대가 이같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자식세대의 성공을 위해서다. 하지만 낯선 관습에 적응하기도 벅찬 경제적 상황 등으로 인해 자식 교육은 학교에 전적으로 맡겨놓은 채 방치할 수밖에 없다. 자식의 교육과 성장을 인도하고 관장하기는커녕 자식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나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 시간이나 기회도 없으면서 학교성적에만 관심을 갖는, 본의 아니게 학생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부모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조승희가 파괴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좌절감과 분노가 이처럼 이민 1.5 ~2세대의 전형적인 체험일 수도 있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조승희사건은 결코 한 이상성격자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좁게 보면 대다수 이민가족이 현재의 미국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넓게 보면 무한경쟁의 논리를 체현한 채, 이민자들의 고충을 악화하는 미국교육과 사회환경의 문제이다. 이 글 서두에서 조승희사건이 발생했을 때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한국인 전체로 불똥이 튈까 염려했지만, 오히려 미국 여론은 자성으로 흘렀다. 그러자 한국의 많은 언론매체들이 한국인의 고리타분한 ‘집단주의’와 미국인들의 ‘성숙한’ 개인주의를 비교하면서 우리 사회도 그 같은 개인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식 개인주의의 일면만을 보는 피상적 관찰에서 나온 단견이다. 우선 많은 논자들이 비판한 한인들의 ‘집단피해의식’은 단순한 망상이 아닌 현존 세계질서의 엄연한 일부인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들이 지적한 ‘성숙한’ 개인주의가 20세기 말 이래 전지구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바탕이 되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승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불운한 개인이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있는 미국사회와 그 같은 이념의 위세 하에 본 뜻을 상실해가는 교육의 산물이자, 고의는 아닐지라도 그런 교육의 한가운데로 자식들을 내몰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