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출판시장에 일본소설이 대거 약진하고 있다. 왜 독자들은 일본소설을 찾는가? 우리 소설을 아끼는 사람들은 이를 시장의 문제로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일본소설 자체를 언급하기 꺼려하는 비평의 인색함은 문학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인식하지 않으려는 게으름과 보수주의의 표백이기 쉽다.

일본소설의 유행은 단순히 작품이나 서사의 특이성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작품과 독자 간 관계의 총체적 변화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독자들은 일본소설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본소설의 서사적 특징에 주목함과 동시에 현 독자들의 텍스트에 대한 욕망을 분석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우선 명백히 해야 할 부분은 일본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의 정체성이다. 이들이 기존의 독자층에서 이탈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독자층이 형성된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소설을 읽던 기존 독자층이 그에 흥미를 잃고 새로운 서사를 찾아 이주하는 것과, 문학으로부터 다른 욕망을 갈구하는 주체가 새로 등장한 것은 분명 다르게 받아들일 문제다. 그런데 일본소설을 읽는 많은 독자가 20~30대의 젊은 세대라는 점은 90년대 이후 새로운 소비주체의 등장이라는 사회사적 맥락이 일본소설의 열풍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일본소설에 탐닉하는 현 독자층은 과거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 거장들의 작품을 읽는 것을 기본 교양으로 생각했던 독자들과는 분명 다른 주체이다. 이들은 거대담론의 해체를 경험하고, 정치사에 가려진 일상사를 발견한 개인적 주체들이다. 또한 모든 대상과 이미지들을 상품화하는 교환의 장 속에서 욕망을 키워나가는 소비적 주체이며, 나아가 기호의 소비를 통한 자기존재 인식이라는 탈근대적 호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광고, 패션, 영화 등을 통해 현대적 감수성을 기르며 신선하고 자극적인 사건을 찾아 끊임없이 유목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 같은 독자의 세대교체에 대응한 일본 시장의 발 빠른 변모가 일본 서사형식의 특징을 드러낸다. 일본 소설가들이 공통적으로 내걸고 있는 창작 슬로건은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쉽고 재밌는 소설쓰기’이다. 이는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서사전략의 필요성에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했음을 의미한다. 일본소설은 근대소설의 따분하고 지루한 계몽의 기획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사소함을 날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며놓는다. 한편 삶을 유희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쿨(cool)’의 감수성은, 가벼운 문체로 현실의 서사를 더욱 가벼운 이미지의 세계로 던져버린다. 인물의 성격을 과장하고 내러티브의 소재로 ‘엽기’를 차용하면서 만화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일본소설의 서사는 재미와 신선함이라는 미덕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영상서사에 대항할 수 있는 고유의 서사전략을 획득한다. 또 일부 소설에서는 도시적이고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과 소비기호 들을 긍정하고 세련되게 차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소비욕망을 대리 만족시키기도 한다.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 전략적으로 열어놓은 장르의 공간은 대중문학의 시장성과 본격문학의 상징권력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지점이다. 일본소설이 위치하고 있는 이 지점의 애매함은, 한편으로 활자매체가 지닌 상징권력에 기대면서도 대중소설이 보유한 상품성을 동시에 점유하는 흡입력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소설은 이야기로서, 문학으로서 그리고 상품으로서 현대의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소설을 왜 읽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문학의 위기라는 진부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특히 일본소설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장지향적 상품성과 밑바탕에 깔려 있는 냉소주의 및 가벼운 문제의식을 참아내지 못한다. ‘쿨’의 정서가 주도하는 삶에 대한 관조와 무책임성 그리고 나르시시즘이, 문학의 전통적 미덕인 진정성과 성실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리고 이 같은 비판에는 반(反)문학적 정서가 문학의 본연을 침식하고 독자를 감염시킨다는 불안감과 함께, 우리 문학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녹아들어 있다. 고급 오락으로 전락한 소설의 처지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문학의 죽음을 들먹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이 근대를 통과하면서 나름대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의 성장에 의한 부르주아 독자층의 등장에 있다. 이로써 문학은 시장에 의존하면서도 일견 자율성을 획득하는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그 자율성을 바탕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맞섰던 근대문학은 어느덧 자신을 낳았던 시장과 자본주의에 의해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 그렇게 보면 근대문학의 위기는 문학 자체의 부재이기보다는 문학을 가능케 했던 독자의 부재이다. 도대체 누가 근대소설의 독자를 해체했는가? 누구에게도 이 사태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저 자기갱생을 하려는 문학의 처절한 실험에 기대를 거는 일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