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 왜 일본소설을 읽을까요?”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 서면 언제나 당혹스럽다. 그  물음 속에는 한 가지 확고한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한국 도서시장에서 일본소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한국소설/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일본소설’이라는 이분법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내 당혹스러움의 이유를 깨닫는다. 나는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딱딱하고 뜨거운 물음표를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다. 입에 문 채 도망가지 않으려면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는 작은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현실의 심층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학시장에서 일본소설의 득세는 확연하다. 대형서점 외국소설 코너의 대부분을 일본소설이 장악하고 있다거나, 얼마 전부터는 아예 일본소설만을 따로 모아 놓은 판매대가 들어섰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0년대의 일본소설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로 대변되는 투명한 허무주의를 통해 마니아적 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2000년대의 한국독자에게 다가온 일본소설은 더 광범위하고 대중적이다. 에쿠니 카오리(江國香織),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쓰지 히토나리(    仁成), 야마다 에이미(山田詠美),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 요시다 슈우이치(吉田修一) 등 많은 일본작가들의 소설이 보다 폭넓게 한국의 새로운 독서대중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일본소설이 가지고 있는 독서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으나, 가족이나 세속적 출세 등에 대한 전통적인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현대 개인들의 감성을 세련되고 심플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이른바 중간문학적인 성격이 한국독자의 감수성과 조응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묵직한 사회적·실존적 문제의식으로 완성된 작품이라도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한 형식으로 그려낸 경우가 많으니 (한국소설은 일단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진) 우리 독자들이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 터이다.

이제 일본소설은 시간 지체와 문화장벽 없이 대량으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일본소설들이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는 ‘문학 외적’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여러 출판사들이 경쟁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일본소설을 유입해대고 있다는 이유 말이다. ‘일본소설은 장사가 잘 된다’는 믿음이 출판시장을 강력히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름이 조금 알려진 젊은 작가들에 대해 서둘러 판권 확보에 나서고 범작에 불과한 작품들을 화려한 마케팅수법으로 홍보하는 등 출판자본이 눈앞의 이윤에만 연연해하는 듯 보인다면 한국작가로서의 내 어쭙잖은 자격지심 탓인가?

분명한 건, 그만큼 많이, 다양하게 출간되기 때문에 한국독자들은 또 그만큼의 선택을 하게 되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일본소설 붐은 일정 부분 거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좋은’ 소설들이 독자의 호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스타작가들이 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젊은 여성독자에게 인기 있는 에쿠니 카오리나, 최근 들어 팬덤(fandom)을 형성하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경우에도 그들의 국적이 일본이기 때문에 우리 독자들이 열광하는 게 아니다. 독자는 작가의 국적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그 작가가 표현하는 어떤 감수성에 21세기 초반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매료되는 것뿐이다. 단언컨대, 에쿠니 카오리가 영어권 작가였대도 그녀의 소설은 한국의 베스트셀러였을 것이다.

일본소설에 대해 민족감정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보아야한다는 주장도 구시대적인 것이지만, ‘일본소설이라서’ 독자들이 좋아한다는 선입관도 지당한 것은 아니다. 문학에 있어서 이미 국경의 의미는 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자본주의 사회의 젊은 독자들은 거의 동시대적인 감수성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소설이 보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 동시대적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한국의 소설가들은 ‘왜 일본소설이 읽히는가’ 라는 강박적인 질문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2000년대의 젊은 한국소설은 이미 그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 입장에서 이제 일본소설을 넘어 제3세계의 소설들이 국내에 좀더 많이 소개되기를, 한국어로 번역된 ‘세상의 모든 책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