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출간된 『<삼국지연의> 한국어 번역과 서사 변용』(인하대 한국학연구소, 2007)은 통시성과 공시성을 두루 갖춘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다. 그동안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번역에 관한 일화들은 각각의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들을 담고 있었다. 그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로 유명한 박태원(朴泰遠, 1909~1987)의 문학과 그의 『삼국지』 번역을 연계하여 통찰한 대목이 단연 돋보인다. 한 문장 한 문장 공을 들여 쉼표 하나조차 소홀히 다루지 않은 기교의 작가 박태원은 『삼국지』 번역에도 자신의 문체를 그대로 살렸다. 이쯤 되면 통시적인 『삼국지』 연구가 한국근대문학의 문체연구로 넘어가게 된다. 사실 『삼국지』 번역본들만 시대별로 살펴봐도 한글의 변천 과정과 문체의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다.

박태원의 『삼국지』는 월북작가의 성과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리고 월간 <신세대>에 1941년 4월부터 1943년 1월까지만 연재되어 미완으로 남아 있다. 1950년 정음사에서 박태원 『삼국지』가 출간되었으나 그가 월북한 이후인 1953년에는 박태원이라는 이름 대신 출판사 사장 최영해(崔暎海)의 이름으로 완역 『삼국지』가 출간되었다. 10권 중 박태원의 것은 7권까지라는 설도 있고 5권까지라는 설도 있다. 그는 북한에서도 『삼국지』를 새로 번역 출간했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의 여러 번역본 중 <신세대> 연재본의 문체가 가장 뛰어나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읽기 좋게 수정한 판본들이 오히려 문장의 힘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연구총서는 한국고전어문학에서의 『삼국지』 수용뿐만 아니라 만화에서 게임, 동화에 이르는 서사변용 문제도 깊이 있고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초선(貂嬋) 이야기’를 중심으로 고우영(高羽榮, 1938~2005) 만화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본, 이문열(李文烈)본을 대비한 대목은 『삼국지』의 일화들을 통해 작가들이 얼마든지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문열본을 예로 들어 작가가 지나치게 개입할 때 어떻게 원본의 의도를 해칠 수 있는가를 지적한 대목은 장차 『삼국지』 번역이나 평역에 야심을 가진 작가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일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삼국지』가 서사변용 내지 매체변용을 하게 될 때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콘텍스트적 탐구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연구총서는 텍스트 비평을 중심으로 한 『삼국지 해제』(서동훈, 김운회, 장정일 공저, 김영사, 2003)와 더불어 『삼국지』 연구의 귀한 이정표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나관중(羅貫中)중국 원말 명초의 소설가, 모종강(毛宗崗)중국 청초의 문인 등을 거치면서 일종의 원본을 형성한 『삼국지』가 평역과 번역 들을 통하여 왜 끊임없이 서사변용을 일으키는가 하는 점이다. 시대배경과 작가 내지 번역자, 평역자의 세계관이 서사변용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삼국지』 원서를 한 자 한 자 정독하며 직접 정역한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삼국지』 원서를 근대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야기의 내용이나 구성, 전개과정, 문장표현 들이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이다. 어딘지 부족하고 엉성하며 깊이도 없고 재미가 그다지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지리멸렬’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결말로 나아간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삼국지』 원서를 있는 그대로 정역하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나 번역자라 하더라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는 힘들게 된다. 그것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원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번역까지 뒤죽박죽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삼국지』들을 모조리 탐독한 소위 『삼국지』 전문가가 여러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삼국지』 정역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김구용(金丘庸) 『삼국지』에 대해 인터넷에 익명으로 다음과 같이 평해놓았는데 나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라 그대로 인용해본다.

김구용은 중문학자 1로서 『삼국지』를 번역을 하여 ‘제대로’인 맛은 있습니다만 ‘소설’로서의 재미적 가치는 떨어지는 참으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책입니다. 다만 시인이라는 겸직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삼국지에 나오는 1,800여 편의 시에 대한 정수를 볼 수는 있습니다. 중문학자로서 시역에 충실한 반면 소설로는 고갯짓을 합니다.

그는 김구용의 번역을 문제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삼국지』 원서가 ‘소설로서의 재미적 가치는 떨어지는’ 책이기 때문에 최고의 문장가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빼어난 번역을 해놓아도 결국 원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익명의 전문가는 나의 번역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평해놓았는데 그 평에 대해서도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성기는 현대작가로서의 특수함으로서  『삼국지』를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뭔가가 부족하고 깊이가 적습니다. 이문열, 김홍신의 평역류에 반대하여 정역으로 치고 나왔습니다만 읽으면서 왠지 모를 허전함을……. ‘아직 역량이 딸려서 그런가?’라고 느껴집니다. 한문이 없고 읽기 쉽지만 작가 지명도가 약해 판매가 낮았습니다.

뭔가가 부족하고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역량이 딸리는’ 나의 번역에 문제가 있어 그런 점도 있겠지만, 원서 자체가 원래 그러하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를 끌고자 하는 영리한 작가들은 『삼국지』 원서를 그대로 정역하는 일은 가급적 피하게 된다. 『삼국지』 원서의 줄거리를 원재료로 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해 될 수 있는 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창작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원서 자체가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다고 할지라도 ‘고전’은 고전이다. 고전은 독자의 흥미 여부를 떠나서 최대한 정직하게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이 늘 있는 법이다. 나관중 판본은 차치하고라도 모종강 판본이 1769년 무렵에 나왔으니 『삼국지』는 이미 하나의 엄연한 고전이다. 이토록 오래된 고전이 굳어져 있지 않고 계속해서 서사변용을 하게 되는 예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원서 자체의 재미를 떠나 그 원재료들이 재미와 감동을 자아낼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삼국지』의 끊임없는 서사변용은 원서 자체의 서사문학적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작가가 된 이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문학적 상상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책이 중학교 때 읽은 『삼국지』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삼국지』를 읽을 생각에 가슴이 설레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이 또 어떤 신출귀몰한 작전을 구사할 것인가 궁금한 마음 금할 길 없어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자연 빨라졌다. 어떠한 어려운 난관도 뚫고 나가는 제갈량의 지혜와 혜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삼국지』의 다른 인물들은 기억에서 차츰 사라졌지만 제갈량 만큼은 오래도록 큰 바위 얼굴처럼 남아 있었다. 유비(劉備, 161~223)와 조조(曹操, 155~220)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세속적 욕망에 매인 사람들로 보였으나 제갈량은 세속을 초월한 세계, 다시 말해 종교적인 세계에 속해 있는 인물로 여겨졌다. 나중에 필자가 성경의 세계에 심취하게 되었을 때도 예수의 이미지와 제갈량의 이미지가 겹친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제갈량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어떤 원형(原型)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원형의 힘에 이끌려 작품을 쓰고 『삼국지』 원서를 정역하는 무모한 일에도 뛰어들었으리라.

처음에는 출판사로부터 어린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삼국지』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나는 『삼국지』 원서 자체를 정역하되 한문이 아닌 쉬운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어린이들도 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삼국지』를 번역하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놀란 것은 내가 텍스트로 삼은 중국어 원서 『삼국연의』(삼민서국, 1984)제11판이 단 한 권의 책(세로판 760면)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단 한 권짜리 원서가 한국에서는 10권의 대하장편으로 출간되고 있으니 한문의 압축력이 대단한 셈이다. 『삼국지』 원서를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바로 이것이 중국어 원서를 번역하는 정도(正道)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 원서를 번역한다고 하면서 한문에 토를 달듯 번역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쉬운 우리말이나 한글로만 표기해도 뜻이 충분히 통했다. 한문의 힘을 빌리지 않기로 작정하고 괄호 속에 한자를 넣는 것도 생략해버렸다. 영어 원서를 번역하면서 영어를 남발하는 것은 번역의 정석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피해야 하듯이 말이다.

한 자 한 자 꼼꼼히 짚어가며 번역하는 동안 몇몇 다른 정역본들이 얼마나 오역투성인지도 알게 되었다. 완벽한 번역이란 있을 수 없지만 한 페이지에 다섯 문장 이상에서 명백한 오역이 있는 경우가 빈번히 나타난다고 한다면 그 책은 오역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어떤 글을 쓸 때 『삼국지연의』의 한 대목을 인용하려고 해도 정확한 번역본이 없어 자신이 직접 번역하지 않는 한 인용이 불가능한 형편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삼국지』 정역의 표본으로 일컫는 책도 지나친 의역이 종종 눈에 띄어 인용 텍스트로 삼기에는 조심스런 점이 있었다. 『삼국지』라는 이름만 넘쳤지 정작 『삼국지』가 없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는데도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것과 같았다. 또한 『삼국지』 문체는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1899~1961)가 구사한 하드보일드(hard boiled)수식을 배제한 객관적이고 간결한 문체와 비슷하다. 원서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려면 유장하고 고풍스런 만연체는 적절치 않다.

그런데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문제가 발생했다. 과연 『삼국지』가 어린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책인가 하는 문제였다. 어린이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여기 나오는 잔혹한 부분들을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삼국지』에는 끔찍한 장면들이 무수히 나오므로 그런 부분들을 덜어낸다는 것은 『삼국지』를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일반 성인독자들을 위한 『삼국지』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정한,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삼국지』 원서 전체(시 부분은 현저히 독서를 방해하므로 따로 모아 번역할 예정으로 생략)를 정역하되 한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번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평역이나 번안으로 치닫고 싶은 마음을 억제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사실 어떤 소설문학을 번역했다기보다 좀더 정확하게 우리말로 전달될 필요성이 있는 하나의 고전을 번역하는 학술적인 작업을 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리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했다. 『삼국지』 원서의 한계를 새삼 절감하게 되었으므로 그야말로 시지포스(Sisyphos)의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는 『삼국지』는 원서와 거리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근대문학을 접한 이 시대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