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첫번째 이야기가 출간된 지 10년 만에 『해리 포터』의 완결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Harry Potter and Deathly Hallows』이 오는 7월 21일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여섯 편이 출간된 현재까지 64개 언어로 3억 2천 5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고  완결편은 미국 역사상 최다 선주문 기록을 연일 경신 중이다. 이 시리즈 전체가 영국산 스토리에 헐리우드 자본을 입힌 영화와 게임, 각종 캐릭터상품으로 가공되어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1

그러나 이 글은 영어권 출판계에서 10여 년 간 열풍을 일으켰던 『해리 포터』에 대한 본격적인 평문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해리 포터』가 한국에 수입되어 어떤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일 것이다. 『해리 포터』의 열풍은 국내에서도 영어권 못지않다. 한국독자들 역시 국내외 인터넷서점에 『해리 포터』를 주문예약해 놓고 출간 날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통상 영어판『해리 포터』는 출간 즉시 국내 서점의 외서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상당 기간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곤 했다. 예컨대 2005년 여름 출간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이듬해 가을이 되어서야 같은 해 봄부터 수입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1위 자리를 내주었고, 아직 출간도 되지 않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은 이미 외서 분야 2위에 올라있는 상태다.

영어판이 나오고 3~4개월이면 한국어판이 출간되는데, 영어로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당수의  독자들이 이 번역본 출간을 기다린다. 이 기간 동안 번역본의 출간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논란들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효과를 낸다.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에 따르면, 『해리 포터』 7편의 예약판매 보도가 나간 뒤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네티즌토론방 아고라(Agora)에서는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해 달라’는 청원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원서는 한 권인데 번역본은 4~5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번역본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번역이 원서 출간 서너 달 만에 뚝딱 이뤄지다보니 번역본의 질에 대한 항의도 만만치 않다. 또한 다른 번역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그리고 편을 더해갈수록 높아져 5편에 이르러서는 20%에 달하게 된(보통 외서의 경우 6~8%) 로열티도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데다 해당 출판사에 문의해도 국내에서 2천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 『해리 포터』의 판매부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2 이러한 현상들만으로도 번역이라는 필터를 거친 『해리 포터』 열풍이 영어권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번역본 『해리 포터』는 원서와 수개월의 시차를 둠으로써, 누그러진 초반 열기를 다시 불붙이는 구실을 한다. 방학과 시기를 맞춘 영화개봉까지 감안하면, 한국에서는 1년 내내 『해리 포터』에 대한 소식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겠다.

『해리 포터』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은 물론 아이들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엄청난 판매고의 상당 부분은 이 작품이 아이들의 독서 습관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어른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는 컴퓨터오락이나 영상물에 빠져있던 아이들로 하여금 다시 두꺼운 책을 잡게 만드는 일등공신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심지어 『해리 포터』를 읽은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을 더 잘한다, 혹은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통계까지 나오는 상황이다.3 거기에다 청소년들의 영어학습에 대한 (주로 부모들의) 열의와 불안감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흥미롭게 여기는 작품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면서, 『해리 포터』를 읽는 것은 영어를 좀 읽을 줄 안다는 아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해리 포터』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의 또 한 축은 유난히 경쟁적이고 힘겨운 학교생활에 대한 반작용이다. 따지고 보면 『해리 포터』는 학교생활에 지친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소망의 거울’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고아의 이야기는 옛부터 아동문학의 공식 중 하나였거니와, 아이들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부모를 추악한 더즐리(Dursley)해리포터의 양부모 집안 사람들에 빗대고, 비록 집안에선 천덕꾸러기지만 머글(muggle)마법을 못 쓰는 평범한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의 세계와 별개로 움직이는 마법세계의 유명인사 해리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지극히 평범한 소년 해리가 사실은 엄청난 비밀과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 또한 아이들의 억눌린 욕망을 해방시켜 준다. 어려운 숙제에 쩔쩔매는 대신 ‘타고난’ 능력으로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르는 해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최신형 게임기를 사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는 대신 마법의 상점 다이애건 앨리(Diagon Alley)에서 구입한 최신형 빗자루를 타고 게임마법사만 즐기는 반(反)중력 놀이 퀴디치(Quidditch)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스포츠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해리에게 열광한다. 매일매일 비슷한 일과가 반복되는 학교생활의 지루함을 견디는 것보다는 악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호그와트(Hogwarts) 학교의 비밀스런 통로를 오가며, 해리와 그의 친구들이 펼치는 모험과 활극에 마음을 졸이는 편이 훨씬 재미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사세계는 ‘착한’ 아이들이 지닌  ‘동화적 믿음’과도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한편에서 『해리 포터』는 아이들에게 현실 속의 좌절과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은밀한 욕구와 소망을 들여다보게 하는 한편,  현실논리를 마법세계에 투영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4 어떤 교사는 해리 포터와 호그와트 학교를 통해 아이들과 교사는 물론, 아이들보다 먼저 『해리 포터』를 읽어치운 엄마들까지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주장한다.5 저런 학교가 있으면 가고 싶다, 저런 정도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사진과 수업 분위기가 부럽다, 라는 생각을 품게 되는 순간, 이는 영국식 기숙학교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영국 엘리트를 배출해 온 학교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문화상품으로 포장된다. 손향숙의 지적대로 『해리 포터』는 학교소설의 전통을 물려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새로운 인식 가능성의 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독자를 상투적 감각으로 만족시키고 자극하는 데 그친다.6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해리 포터』가 미치는 영향력은 일부 기독교계에서 우려하는 대로 신명기 18장에서 금하고 있는 ‘복술’과 ‘요술’을 조장하는 것이라기보다, 영어권에서의 흥행 성공이 보편적 우월성의 증거인 양 통용되는 문화적 침윤 현상에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7 지금 아이들에게 『해리 포터』를 기꺼이 사주는 어른들의 다수도 이미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보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서유럽의 동화에 기대어 서구문화에 대한 선망과 감수성을 키웠던 세대다.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은 『해리 포터』를 읽고 자란 세대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토머스 핀천(Thomas Ruggles Pynchon, Jr.)이나 필립 로스(Philip Milton Roth), 돈 들릴로(Don DeLillo)를 읽는 대신 스티븐 킹(Stephen King)을 읽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는데8, 아마도 마찬가지로 『해리 포터』를 읽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영어권 대중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한국소설 독자로 성장하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한 시기에 소개됨으로써 국내에서는 일부 열혈독자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판타지 장르를 대중적 관심분야로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판타지소설의 대중화는 정통 사실주의소설이 주류를 이루던 문단에 다양한 하위장르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여 서사양식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긍정적 기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을 들여다보면 『해리 포터』의 성공이 곧장 국내의 판타지나 다른 장르소설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판타지와 SF 문학을 아우르는 월간지의 창간 소식도 들려오지만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의 『해저 2만리』가 국내에 번역 소개된 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100년간 팔린 SF가 『해리 포터』에 못 미칠 것이라는 하소연이 과장만은 아니다.9

  물론 『해리 포터』의 적절한 마케팅 전략과 영어권에서의 성공이라는 후광을 토종 판타지소설들의 빈약한 광고 전략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내의 판타지소설들이 영어권 판타지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게임 속 현실과 실제현실 사이를 오가며 전개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게임스릴러로 화제를 모았던 김민영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1999)에서 작품의 등뼈를 이루는 팔란티어라는 게임이 다름 아닌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의 소설 『반지의 제왕』의 플롯과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오가며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반지의 제왕』이 2001년에서 2003년 사이 영화로 개봉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난 이후 다시 『팔란티어』(2006)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는데, 온라인게임의 최강국인 대한민국의 현실과 밀착된 작품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뼈대를 이루는 모티브 자체를 영어권의 판타지에서 그대로 빌려왔다는 사실은 한국작가와 독자들의 상상력이 서구적인 틀에 지나치게 의존적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생생한 환상과 아슬아슬한 청소년 모험담을 철학적 이슈들에 관한 진지한 논쟁과 결합한 김용규·김성규의 『알도와 떠도는 사원』(2001, 2006개작) 역시, 인물 설정이나 분위기의 많은 부분을 『해리 포터』에 빚지고 있다. 게다가 『다빈치 코드』 등의 영어권 소설과 영화를 통해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인접한 두 수의 합이 그 다음 수가 되는 수열이나 프랙탈(fractal)이론물체를 확대하거나 세분해도 본래의 모습이 유지된다는 등의 이론이 소개된 후에야 겨우 독자들에게 다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의 판타지 서사가 충분히 ‘자립적’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독창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영화 한 편이면 자동차가 몇 대라는 식으로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들’을 채워줄 자생적인 인문학적 교양의 깊이에는 무관심한 정책입안자들의 인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