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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거탑>과 박정희
통권 : 04 / 년월 : 2007년 7,8월 / 조회수 : 1237

리메이크작은 원작만 못한 경우가 많다. <하얀 거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후지TV판 <하얀 거탑>(2003)을 뒤늦게 구해보곤 이 생각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한국판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되자 온갖 신문방송에서 이 현상에 대한 논평들이 넘쳐났지만 정작 이 드라마의 바탕이 된 일본판 <하얀 거탑>에 대한 분석이나 심층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호 <플랫폼>에 실린 시미즈 미즈히사(淸水瑞久)의 글 「<하얀 거탑>과 시대의 리얼리티」는 독자들의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주는 유익한 평문이었다. 원작이 야마자키 토요코(山崎豊子)의 소설이었던 것과 이미 60년대부터 영화화되어 인기리에 판을 거듭한 사실은 의외로 흥미로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시미즈 미즈히사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이 사실을 관련짓는다. 그가 주목한 인물은 사토미 슈우지(里見脩二), 한국판의 최도영이다. 시미즈 미즈히사는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의 핵심을, 일본사회의 봉건적 집단주의와 고도성장기에 새롭게 발흥하는 개인주의 사이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그가 “낙관적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사토미의 마음 속에서는 의학의 진보에 대한 염원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라고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 (고도성장기 일본의) ‘시대의 리얼리티’는 결국 사토미 슈우지가 지닌 ‘불굴의’ 낙관적 개인주의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토미의 개인주의를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리얼’하기는커녕 그는 오히려 공상적 존재다. 단단한 신념과 바른 의지를 지닌 ‘흔들리지 않는 인간형’이 리얼리티와 결합되긴 어렵다. 역시 이 작품의 핵심인물은 자이젠 고로오(財前五郞), 한국판의 장준혁이다. ‘하얀 거탑’ 아래서 저 높은 꼭대기까지 질주하다 무참히 추락하는 이 인간형이야말로 고도성장기의 전형이 아닐까? 계급 상승을 위해 ‘하얀 거탑’의 타락한 가치를 전면적으로 승인하는 자이젠 고로오는 자신의 능력과 야망에 대한 맹목 때문에 오히려 파멸하는, 우리들의 진정한 동시대인, 현대판 쥘리앙 쏘렐(Julien Sorel)이다.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가 왜 한국과 일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는지가 짚힌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심리와 짝을 이룬 ‘좋았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사이 떠도는 박정희 귀신이 요사스럽다 했더니 딱 그렇다. 그것은 우리 사회 내부의 신분·계층이동이 드디어 정지되어 간다는 것을 반영한다. 일본이 진작부터 그랬다. 따라가서는 안 된다. 지혜가 절실하다.




#저자 약력
이원석 | 부평구 부평1동 | 학원강사
글쓴이 : 이원석
작성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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