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이름을 바로잡는다(正名)’1는 말이 있다. 사물의 실제를 이름과 일치시킨다는 의미겠지만, 인간의 덕과 그 명분을 일치시키는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명분, 귀천, 선악을 구별하는 윤리학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타이완에서 ‘정명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도 “타이완을 타이완이라 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딜레마를 바로잡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중국과 타이완은 분단 이후 정체성과 정통성을 둘러싼 갈등을 지속해왔다. 타이완은 대륙 중국의 독자적 유엔(UN) 가입으로 국제적 고립에 처하면서도 ‘중화’의 정통성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고 통일의 가치를 내던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사회를 ‘위협’할 정도로 부상했고 타이완에서도 민주화물결이 거세지면서 타이완을 하나의 독자적 역사공동체, 정치공동체로 보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이완은 더 이상 중국이 아니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특히 2000년 타이완 독립을 표방한 민진당이 집권한 이후 ‘하나의 중국’이라는 가치는 급격히 쇠락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로 타이완을 통일하겠다는 중국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2005년에는, 타이완에서 헌법개정이나 국민투표 실시, 국기와 국명 변경, 일방적 독립선언이 있을 경우 무력으로 타이완을 공격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하였다. 이렇게 보면 정명운동은 양안관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원래 중화민국의 정통성 문제는 1972년 중일수교 이후 재일 타이완인이 일본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불거졌으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명운동이 전개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1996년 당시 타이완시장이었던 천 수이볜(陳水扁)은 장 졔스(蔣介石)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던 졔셔우로(介壽路)를 타이완족을 상징하는 케타갈란로(凱達格蘭大道)로 바꾸면서 정명운동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국민당 집권시기에는 정명운동을 전국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던 터라 2000년 민진당 집권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2003년 중화민국 여권에 타이완이 명기되었고 초중등학교에서 타이완의 독자적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타이베이시가 국가수도로 표기되었다. 2004년에는 중화민국전도가 정부차원에서 인쇄되어 배포되기 시작하였고 2005년부터는 관공서 명칭에 ‘타이완’을 병기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중정(中正)국제공항을 동네 지명을 딴 타오위앤(桃園)공항으로 변경했고, 2007년에는 역사교과서에서 쑨 원(孫文, 1866~1925) 앞에 붙던 ‘국부’라는 존칭을 없앴고 ‘진시황이 여섯 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했다’는 구절에서 ‘천하통일’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이 밖에도 중정기념관을 타이완민주기념관으로 변경하였고 곳곳에 설치되었던 장  졔스의 동상도 철거되고 있다. 공공기업의 경우 ‘중국’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은 ‘타이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예컨대 중국우체국은 타이완우체국으로, 중국석유공사는 타이완석유공사로 변경했다. 이제 대륙만을 ‘중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정명운동은 장 졔스 정권의 격하와 권위주의의 타파라는 측면을 지니며 본토화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어와 문자, 민족이라는 영역에 이르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실 타이완에서 가장 앞선 종족은 태평양지역 남도(南島)문화에 속한 타이완 원주민이었다. 그러나 400여 년 전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통치할 때, 중국대륙 동남연해의 인구가 유입되었고,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이 타이완을 통치할 때에는 중화문화가 널리 발전하여 뿌리를 내렸다. 현재 타이완에는 원주민이 약 2%이고 나머지는 한족들이다. 이 중 1949년 이전에 타이완으로 옮겨온 본성인(本省人)이 약 84%이고 1949년 전후 중화민국 정부가 군대를 이끌고 들어온 외성인(外省人)은 14% 정도이다. 이렇게 보면 타이완의 문화적 정체성은 중화문명과 절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더구나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양안교류가 활성화되었고 중국 사회주의이데올로기의 유연화로 과거에 비해 문화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타이완 내에서도 정명운동은 넓은 합의구조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타이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정명운동에 반대하고 21%만이 찬성하고 있으며, 타이완 독립을 표방하고 있는 민진당 지지그룹에서도 약 1/3이 반대한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반대가 심하며 타이완 국민의 63% 이상은 정명운동을 정치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역사가 오랜 공기업이나 학교에서는 이름이 지닌 역사성과 인지율의 저하, 비용문제 때문에 정명운동에 소극적이다. 2007년 2월9일 중화우체국 노동조합이 중화우체국을 타이완우체국으로 변경하려는 시도에 격렬히 저항한 사건은 정명운동에 대한 내부의 비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야당인 국민당은 국회의 비준과 동의를 얻어 정명운동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명운동에 대해 중국은 기본적으로 타이완독립운동의 일환이지만 낮은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고 또 지방화의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중화’를 ‘타이완’으로 변경하는 것은 타이완이 중국의 부속지방이라는 중국의 일관된 입장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정명운동이 독립 측면을 강화하지 않도록 견제하고 타이완의 지방화와 지역화가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고취하는 양면전술을 쓰고 있다. 즉 민진당의 지역화와 지방화를 이용하여 국민당의 ‘중화민국’을 공격하고, 국민당의 ‘중화민족’ 정서를 활용하여 민진당의 타이완 독립을 제약하는 꽃놀이패2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정명운동에 대한 미국의 공식입장은 “타이완당국이 일방적으로 타이완의 지위를 변경하거나 타이완독립운동을 향해가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책임 있는 이익상관자(stakeholder)로 국제사회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하고 타이완 현상유지(status quo)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미국에 경사되어왔던 타이완 정부는 “타이완의 정명운동과 타이완 독립운동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명칭변경의 목적이 “중국기업과 혼동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을 빼고 있으나 “정명은 국내문제이기 때문에 외세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여우 시쿤(游錫坤) 민진당주석의 발언에서 보이듯 여전히 정치운동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그런데 정명운동은 타이완 민주화의 성취를 왜소화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통일에 대한 빈곤한 역사인식,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과도한 정치전술, 거기에 추진방식에서조차 ‘민주적 절차’를 크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중국의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은 홍콩의 모든 영문표기를 중국식으로 바꾸면서 제국주의의 기억을 지우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 것도 손을 대지 않았다. 비용이 많이 들고 번거로우며 불편했기 때문이다. 사실 길 이름과 회사명은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것들이다. 지금의 타이완 중정로를 걷는 젊은이들이 장 제스를 생각하고 맥아더 다리를 건너면서 맥아더 장군을 추억해 내겠는가? 타이완 국민들은 정명운동에 대해 묻는다. “말인즉 옳다.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토록 급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진당이 정명운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타이완의 선거지형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금년 12월에 의회선거가 있고 내년 3월은 대선이 있다. 차기 선거는 타이완 분리 및 독립노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민진당과 중국 본토와 화해협력을 통해 점진적인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국민당 사이의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싸움이고, 이는 이후 양안관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정명운동에는그동안 소극적이었던 타이완 독립의 불씨를 다시 지피면서 지지층의 결집을 시도하는 한편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타이완 독립이라는 카드를 빼들고 중국의 정치적 운신을 제약하고자 하는 노림수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민진당 내부 비판도 있다. 민진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셰 창팅(謝長廷)의 발언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7년 동안 조용하다가 선거시기가 되면 이런 무모한 ‘아큐(阿Q)’같은 일을 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