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제작된 영화 <여인본색(女人本色, Wonder Woman)>이나 <남아본색(男兒本色)>이라는 영화제목을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과거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영웅본색(英雄本色)>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근래 제작된 중국영화 <여인본색>을 보면 부활을 꿈꾸는 것이 단지 홍콩의 영화산업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량 펑이(梁鳳儀)의 소설 <신타오(心濤)>를 개작하여 만든 황 쩐쩐(黃眞眞) 감독, 량 용치(梁     琪) 주연의 <여인본색>은 홍콩반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로, 6월 24일 전국부녀연맹, 방송계를 비롯한 홍콩 각계인사가 참가한 가운데 북경인민대회당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을 배경으로 한 여성이 겪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개인사로 그려져 있지 않다. 주인공 청 짜이신(成在信)의 삶은 홍콩의 역사적 변화 그 자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남녀 간의 뚜렷한 경계를 발견한다. 즉, 악한 남성과 선한 여성의 대립구도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 영화의 남성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악하거나 어리석고, 여성들은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결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면서 끝내 자신의 행복을 찾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남편 뚜 린(杜林)은 갈수록 ‘잘 나가는’ 짜이신의 마음을 의심한다. 젊고 유능한 직장상사 청 삐총(程必聰)은 짜이신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배신한다. 니(健尼)는 사기꾼의 전형으로, 순진한 쏭 샤오통(宋曉)을 꼬셔 돈을 뜯어내다 이별통고를 받자 이별비용까지 내놓으라는 뻔뻔한 인간이다.

반면 영화 속 세 여성들은 시련에 단련되어 더욱 강하고 멋지게 거듭난다. 주인공 청 짜이신은 미모와 실력을 두루 갖춘 커리어우먼이자 남편을 위하고 아들을 잘 돌보는 현모양처이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녀는 마침내 보상받는다. 쏭 샤오통은 미성숙한 사랑을 끝낸 후 내적인 성장을 하게 되며, 우 따위(吳大宇)의 진실한 사랑도 받아들인다. 감초 역할 마오마오(毛毛)는 수다스러운 외판원으로, 결정적인 순간 그녀를 구원한다. 이렇게 세 여성은 각자의 시련을 딛고 뭉쳐 성공한 여성 사업가, 즉 ‘원더우먼’으로 변신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핵심은 성별구도를 가로지른다. 어째서 잘 나가던 뚜 린은 갑자기 해고당하고 청 삐총에게 자리를 빼앗기는가? 홍콩반환으로 씁쓸하게 돌아가는 영국과 아내에 비해 지나치게 나이든 뚜 린의 퇴장이 오버랩된다. “내가 스카웃되었을 때 그 이유는 내가 영국인맥이 많았기 때문이야”라는 그의 대사에서 우리는 뚜 린이 영국을 상징하는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영국은 물러가고 그의 자리는 청 삐총이라는 젊은 CEO에 의해 대체된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미덕을 갖춘 인물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주인공을 배신하는 청 삐총을 중국의 상징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금융위기 당시 그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홍콩특별구정부를 믿고 정부의 시장개입에 회사가 힘껏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중국정부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들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를 불신해 홍콩주식을 모두 처분한 뒤 파산한 뚜 린은 절망에 빠져 차 사고로 죽고, 정부를 믿은 청 짜이신과 청 삐총이 탈 없이 금융위기를 벗어난다는 설정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주인공 청 짜이신은 어떤 상징성을 갖는가? 그녀는 마치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온갖 시련에 부딪친다. 믿었던 숙부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쉬에 펑(學楓)으로부터 부당한 오해를 받는다. 결정적으로, 금융위기와 사스(SARS)로 홍콩이 휘청거렸듯 그녀는 각각의 사건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는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었을까? 마오마오에게 투자한 것이 기대 이상의 수확을 올려서일까? 그녀의 이름이 말해주듯 성공의 열쇠가 ‘중국-홍콩 정부에 대한’ 믿음에 있었음을 이 홍콩반환 10주년 기념영화는 암시하고 있다.

홍콩반환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중국영화는 <여인본색> 말고도 <니하오, 홍콩(好，香港)>, <노항정전(老港正傳)> 등이 있다. 중국의 영화산업은 군 창설 80주년을 기념한다든지 근래 강조되는 화해사회론1을 반영한다든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농후한 편이다. <여인본색>은 그 안에 사는 중국인들에게는 선하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고난극복기로 그칠 수 있겠지만, 그 바깥에 있는 우리에게는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읽는 훌륭한 텍스트가 될 수도 있다. 청 짜이신과 그녀의 동업자들은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홍콩은 앞으로도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번영과 행복을 맞보려면 청 짜이신처럼, 10년간 홍콩특별구정부처럼, 중국정부를 믿고 최선을 다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인이든 홍콩이든 그래야 비로소  ‘본색’으로 부활하고 전성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