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큐멘타 부산Ⅲ : 일상의 역사展>은 부산시립미술관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중장기 기획으로 진행하고 있는 ‘도큐멘타 부산’ 시리즈의 세번째 전시이다. 한국현대사에서 1980~90년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전시는 사회변화의 파고가 너무 커, 예외 없이 그 영향을 받았던 1980~90년대 부산미술활동에 대한 보고서이다. 미술관에서는 1980~90년대 부산미술을 크게 3개의 범주로 나누어 설정하고 있다. 이 범주들이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상식적인 선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사실 미술관이 제시한 개념은 부산비엔날레의 모태가 되었던 청년비엔날레,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형상미술과 대안적 성격으로 운영되었던 사인화랑1, 그룹 ‘해빙’을 비롯한 민중미술작가들과 미술운동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형상미술과 사인화랑 , 민중미술작가와 미술운동을 각각 하나의 카테고리로 설정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기획자는 1980~90년대 부산미술의 자생적 혹은 독자적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타 지역과 변별되는 지점을 찾기 위한 섬세한 노력은 청년비엔날레, 사인화랑, 해빙 등을 중요한 거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데서 강하게 드러난다. 이 부분은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청년비엔날레를 모태로 자생적으로 형성된 국내 최초의 시도였으며, 사인화랑 역시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너무도 ‘대안적’으로 운영되어 온 비영리 화랑이다. 또한 민중미술운동사에서 그 언급이 미미했던 지역미술운동사를 개요수준이긴 하지만 새롭게 복원시키려 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될 사안이다.
1980~90년대 부산미술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바로 ‘형상미술’이라는 독특한 흐름이다. 물론 ‘형상미술’이라는 것이 분류개념으로 적절한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 사용된 개념이고 또한 대외적으로 1980년대 부산미술의 가장 특징적인 국면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중미술이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에 부산에서는 정치적인 미술을 넘어 개인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일구어낸 형상미술이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다. 형상미술은 민중미술과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정치적인 의도나 색채보다는 표현주의적 성향이 강한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실과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개인의 섬세한 자아를 그리는 경향이 망라된 형상미술은 추상미술의 정신적 엄숙성과 민중미술의 과도한 정치성을 넘어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바로 사인화랑이 있었으며, 그것은 1980년대 지역미술에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한 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사인화랑을 운영했던 4인(김응기, 박은주, 예유근, 정진윤)의 인터뷰 동영상, 당시 발행되었던 정보지 성격의 잡지 <미술통신>과 전시도록 등이 자료로 제시되었다.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광주비엔날레와는 달리 부산비엔날레는 지역의 자생적인 비엔날레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쌈짓돈을 모아 국제전을 치러냈던 지역미술인들은 그래서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1981년에 시작된 부산청년비엔날레는 1987년 국제적인 환경미술제를 표방한 바다미술제를 신설하였으며 1998년에는 국제아트페스티벌로 개명되어 개최해오다 2002년부터 부산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1980~90년대 부산의 민중미술 진영은 현장운동을 강조하면서 미술계 제도권내 운동에 소극적이었다. 형상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도 했지만, 민중미술을 대변하는 평론가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미술계 내에서 주도적인 담론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민중미술을 대표할만한 평론가가 없었다고 해서 그 흐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민중미술그룹 ‘해빙’의 발견과 민족해방운동사의 복원은 큰 의미가 있다. 1980~90년대 현실주의 미술운동에 대한 보다 섬세한 복원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지만 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1980~90년대 부산미술의 핵심적인 지점들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 전시를 보고 자료의 부족과 섬세한 언급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역미술관으로서 지역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 현실에서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도큐멘타 부산 Ⅲ : 일상의 역사展>은 지역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의미있는 전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