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올라가보자. 아직도, 8년 전 송도벌에 퍼붓던 비를 기억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1999년 7월31일에 막을 연 한국 최초의 국제 록 페스티벌, 트라이포트(Tri-port)Airport, Seaport, Teleport 록 페스티벌은 강풍을 동반한 폭우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텐트촌이 거의 물에 잠긴 8월 1일 아침, 텐트촌에 있던 2천500여  명의 젊은이들을 인근 중학교로 긴급 대피시키면서 주최측은 결국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의 ‘취소’를 선언했다. 아직도 많은 록 팬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는 노장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우중투혼, 그들이 7월의 마지막 날 밤 앵콜곡으로 연주한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는 결국 페스티벌의 피날레가 되고 말았다. 한 밤의 빗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저 노인네들이 감전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6년, 트라이포트에서 품었던 한이 펜타포트(Penta-port)Airport, Seaport, Teleport, Business-port, Leisure-port 록 페스티벌로 부활했다. 그러나 역시 하늘은 주최측에 물을 퍼내려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스트록스(Strokes), 플라시보(Placebo)등 쟁쟁한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폭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송도행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2007년, 2회째를 맞은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드디어 하늘도 비를 거두었다. 살금살금 뿌리는 안개비는 오히려 아스라한 효과를 발휘했고 찌는 더위를 식혀주었다.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송도로 모이기 시작한 ‘페스티벌 제너레이션(festival generation).’ 그들은 N세대이기도 하다. 문자메세지, 이메일, 덧글, 입소문을 타고 송도의 축제 분위기는 실시간으로 동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퍼졌다. 첫날 밤, 이번 축제 최고의 구경거리였던 ‘화학형제’,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가 강력한 흡입력을 지닌 전자음악 사운드와 감각적인 비주얼의 놀랍고 신선한 유기화학 실험을 하던 때 인구밀도의 경계선은 메인 콘솔 부근이었지만 7월 29일 영국 밴드 뮤즈(Muse)가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을 때 그 경계는 훨씬 뒤 파라솔 부근까지 밀려 있었다.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이른바 ‘축제 세대’가 일상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공식적인 미디어보다는 이와 같은 지역축제를 통해 드러난다. 역사상 축제 세대는 40년 전인 1967년 캘리포니아에서 탄생했다. 집단적이고 개방적이며 거리낌 없는 히피즘(hippism)은 이른바 ‘여가 사회’, 레저 소사이이어티(leisure society)의 후기산업사회적 징후, 그 징후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의 행동방식이기도 하다. 1969년, 뉴욕 북쪽 야스거(Max B. Yasgur, 1919~1973)가 소유한 너른 풀밭을 닦아 무대를 세워놓은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1이 그 절정이었다. ‘3일간의 음악과 평화’라 이름 붙여진 이 축제에는 무려 50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설명하기 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월드컵이 이런 젊은이들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붉은 악마’는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단지 축제를 위해 그렇게 극성스럽게 모였던 것이다. 물론 이미 그 맹아는 한국 최초로 외국문물을 받아들였던 개항의 도시 인천에서 1999년에 싹이 텄던 것이다.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은 어른들의 공식적이고 폐쇄적인 윤리관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그들은 역설적으로 자기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사회의 시스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응급실과 앰뷸런스, 주변을 정리하는 경찰력, 하다못해 이동식 화장실까지, 축제가 열리는 지방 정부의 배려에서부터 축제 세대 자신의 민주시민의식까지, 축제는 성숙한 사회 시스템의 관용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펜타포트는 그와 같은 시스템이 비교적 무리 없이 돌아갔다는 점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올해 펜타포트, 사실 출연진은 그저 그랬다. 첫날의 케미컬 브라더스, 둘째날의 일본 밴드 라르캉시엘(L’arc-en-ciel), 마지막 날의 뮤즈. 물론 훌륭한 뮤지션들이었지만 그 정도의 헤드라이너 가지고는 이미 성숙한 축제 세대의 음악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첫째날 오후를 장식했던 우리나라 노장밴드 사랑과평화, 둘째날 헤비메탈 키드들의 추억을 자극했던 테스타먼트(Testament) 형님들, 흑인 블루스 록 뮤지션 스티브 살라스의 프로젝트 스티브 살라스 컬러코드(Steve Salas Colorcode), 그리고 마지막 날의 일본밴드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Asian Kung-fu Generation)이나 우리나라의 크라잉넛에 대한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마지막 날 공연했던 애쉬(Ash)는 1999년의 비를 추억하기도 했다.
그러나 축제의 세대는 소금기 머금은 바람 부는 송도벌에서 그와 같은 상황 자체를 여유 있게 음미했다. 텐트촌에서, 주변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밤을 보내고 그 사랑의 진동을 무대 앞에서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뮤지션들 역시 그 ‘바이브레이션(vibration)’을 느꼈다. 인공 모래사장인 이른바 ‘펜타 비치’에서 아일랜드 전통음악 프로젝트인 바드(The Bard)의 정다운 음악을 듣다가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 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젊은이들. 그 여유로운 즐김 속에 외국사람, 한국사람의 구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들은 있다. 주최측은 한국 밴드들을 정말 너무나 차별했다. 예를 들어 첫날 새벽 3시에 디제잉(DJ-ing)2을 마친 우리나라 디제이 유닛, 훌라룹스(Hoolaloops)의 멤버들은 그 어떤 이동수단도, 숙소도 제공받지 못한 채 장비를 싸짊어지고 서울 가는 친구의 차편을 알아봐야만 했다. 백 스테이지 보안도 지나치게 철저했다. 이번에 참가한 어떤 한국 뮤지션은 외국 뮤지션과 인사하려고 백 스테이지에 들어가려다 거절당했다고 하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 그러나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은 주최측의 그와 같은 불친절을 눈감아 주었다. 한국의 축제세대가 이제는 꽤 의젓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걸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이 모든 게 그 어떤 주상복합빌딩도 들어와 있지 않은 송도 벌판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발론자들은 이런 공터를 거의 죄악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텅 빈 벌판, 비어있는 상태 그대로 제발 놔두시길 간절히 빈다. 인천 송도의 공터는 한국 축제 세대의 메카로 자리잡을 잠재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가만 놔두기만 한다면, 단언컨대 몇 년 안에 인천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이는, 세계 록 페스티벌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다. 히피의 메카인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스티브 잡스(Steve P. Jobs)가 아이팟을 개발한 것처럼, 우리나라 축제 세대가 축제에서 얻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아이팟 이상의 것을 발명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공터는 개발된 땅 이상으로 생산적이라는 것, 인천이 증명해주길 진짜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