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아 주연의 SBS 주말연속극 <황금신부>는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려진 응우엔 진주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이 일하던 결혼상담소를 통해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생면부지의 생부를 찾아가면서 시댁의 사업도 번창시키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 덕분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내 자신이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한 베트남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한겫?국제결혼은 상당히 드물었다. 주로 한국인 유학생들이나 주재원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배우자들을 만나는 정도였다. 남편도 1996년 가을 베트남에 어학연수 온 것을 계기로 나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고, 나도 1997년 봄부터 겨울까지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한국사회에 보다 친숙해질 수 있었다. 약 2년에 걸친 연애를 통해 1998년 10월 10일과 12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 하노이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남편은 베트남역사를, 난 한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혹은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는 형편이다.

남편의 유학으로 1999년부터 2007년 초반까지 프랑스에서 살다 돌아와 보니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한·베 커플 또한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한국 남성들의 대부분은 ‘본의 아니게’ 베트남 여성들과의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베트남 여성들 또한 ‘나름대로의 계산’을 갖고 결혼상담소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행을 과감히 결정한다.

한국과 베트남이 겉보기에 비슷한 점이 많지만, 차이 또한 적지 않으므로 베트남 출신의 새댁들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도 매우 크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 주변의 용감한 베트남 신부들을 만나 언어문제, 문화적 이질성, 경제적 어려움 등과 관련된 하소연을 듣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국드라마와 한류를 접하면서 갖게 된 그녀들의 코리안드림은 다른 한편으로 그녀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자녀 교육에 힘쓰고, 한국 음식과 풍습을 정성껏 익혀서 시댁 식구들에 대한 ‘봉사’를 다짐하지만, 그녀들 중 일부는 ‘사랑’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난다.

이와 같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는지, 아니면 기존의 문제들을 교묘히 회피하려 했는지, 드라마 <황금신부>는 어설프게 라이따이한1 응우엔 진주와 희귀한 마음의 병에 걸린 남편 준우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이영아의 어설픈 베트남어는 이해하고 넘어간다 치더라도, 베트남 남부 ‘황금의 땅’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진주의 어머니가 완벽한 북부말로 그 곳의 역사를 자신의 딸에게 들려주는 것 아닌가? 베트남의 전통적인 결혼 풍습과 관련된 장면에서도 응우엔 진주가 남편에게 쩌우 까우(trãu cau)2를 싸서 주는데, 실제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보쌈처럼 싸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예쁘고 자그마한 크기의 꽃 모양이나 봉황새 날개 모양으로 말아서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수는 응우엔 진주의 모습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한국의 평범한 전기밥솥을 마냥 신기하게 쳐다보는 진주, 한국어로 표현하는 데는 좀 서투르지만 한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는 진주, 베트남 여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진주의 모습을 보면서 이웃 베트남 여성들을 한국의 시청자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 등장한 밥솥은 베트남 현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어 구사와 이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의 어려움을 가볍게 넘겨 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베트남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라는 감동적인 대사는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맞추어 너무 손쉽게 베트남의 여성상을 재단해 버린 것은 아닐까?

냉엄한 현실을 고려할 때,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재미와 근거 없는 희망만을 주는 드라마는 기존의 무책임한 시각들을 재생산할 뿐이다. 서구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동양’의 여자들이 ‘서양’의 구미에 맞게 그려지고 표현되지 않았던가? 왜 한국의 드라마가 이러한 병폐를 베트남을 통해 재현하려 하는 것일까? 진주가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복잡한 감정과 어려움들이 사실 그대로 정확히 전달될 때만이 서구에서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역경도 보다 친근하게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