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품 60여 점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베르니(Giverny)1시대(1883~1926)에 그린 <수련>연작을 중심으로 한 이번 전시는 모네의 작품이 대규모로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전시였다. ‘빛의 화가’ 모네의 생애 및 작품세계 그리고 지베르니에서의 창작활동을 소개한 글이 전시장의 패널이나 카탈로그에 나와 있어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베르니 시대 모네의 작품에는 약 200점에 달하는 수련 외에도 붓꽃이나 등나무, 무성한 잎이 달린 가지가 수면을 향해 늘어진 수양버들 등 다양한 모티프들이 등장한다. 모네의 친구 제프루아(Gustave Geffroy)2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고 말했던 바와 같이 그는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각종의 광경을 천착하여 형상화하였다. 특히 말년 백내장으로 인해 색채의 인식 및 표현에 문제가 생겨 그림이 과도하게 푸르거나 노랗게 그려지기도 했지만, 지베르니 시대 <수련>연작을 비롯한 작품들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나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1935)와 같은 다음 세대 추상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모네의 색과 터치, 그것들의 향연으로 이루어진 작품들 그리고 그 습작이나 밑그림들은 추상화가들의 평가에 충분히 값하고도 남는다.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마르모탕미술관(Musee Marmottan) 소장 모네의 그림은 그의 큰며느리인 블랑슈 오슈데 모네(Blanche Hoschede-Monet, 1865~1947)가 사후 기증한 작품들이다. 그 때문에 마르모탕미술관은 모네 작품의 소장처로는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네의 위상이나 입장료에서 느껴지는 ‘무게’를 생각하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전시이기도 했다.

먼저 전시내용을 보면, 주최측이 선전한 만큼 모네 작품세계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는지 의심스럽고, 전시작품들의 구성 또한 충실하다고 평가하기 주저된다. 마르모땅미술관은 모네의 후반기 작품이 주된 콜렉션이고 실제로 10여 소장처의 작품들이 더해지긴 했으나, 모네의 각 시기별 대표작이 전시되었다는 것은 과장된 선전이다. 코너별 주제와 전시내용이 부합하는지 의심스러운 곳이 있는가 하면, 작품을 단순히 소재별로 분류한 주제를 수용하더라도 작품의 연대가 뒤섞인 채 전시된 곳도 있었다. 참기 어려운 ‘전시의 가벼움’이 있었던 셈이다.

전시내용과 관련하여서는 모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포니즘(Japonism) 즉, 일본애호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소홀히 다루어진 점 또한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사실 1883년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가 새로 살게 된 집에 정원을 꾸미고 수련을 심고 무지개다리를 만든 것은 모두 자포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70년대부터 자포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일본판화를 수집하였던 그는 부인 카미유(Camille Doncienux)에게 키모노를 입히고 일본식 부채를 들려 <일본여성>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일본을 좋아하고 그 영향을 받게 된 계기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일본의 다색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3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본 서민들의 풍속을 중심소재로 다룬 우키요에가 비록 수출용 도자기의 포장용지로 사용되었지만, 안도오 히로시게(安藤廣重, 1979~1858), 카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 등의 판화에는 당대의 풍속뿐 아니라 풍경, 동물 등 다양한 소재가 다루어졌다. 그리고 호쿠사이의 그림에서 보이듯, 각 소재는 근경을 클로즈업시켜 원경과 극단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때로 박력있는 장면으로, 때로 서정적인 내용으로 강한 시각적 임팩트를 느끼게 하는 화면으로 완성되었다. 비록 개별 모티프가 평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형적인 힘에 매료된 인상파화가들이 우키요에에 드러난 조형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진부한 살롱의 역사화나 종교화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조형적인 박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키요에 판화가 서양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이유는 인상적인 화면연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상파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우키요에 판화들이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공간표현이었다. 그 공간표현은 서양회화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간표현이 일본에서 사용된 것은 18세기에 전해진 서양화법 때문이었다. 양풍화(洋風畵)4로 불리는 그림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이 화법이 우키요에 화가들에게 수용되어 서양풍의 공간표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다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전해져 인상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우키요에를 통한 자포니즘은 서양화법의 고향찾기와 같은 성격을 가진다.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히로시게의 판화5를 베껴 그린 <다리 위의 소나기Bridge in the Rain>(1887)는 자포니즘의 영향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거니와, 당시 일본에 대한 서유럽 지식인들의 관심은 우키요에에서 멈추지 않고 정원, 장식적인 화조화(花鳥畵), 키모노에 대한 애호로 이어졌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국민국가 형성과 더불어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일본브랜드만들기의 토대가 된 우키요에는 무사도나 꽃꽂이, 다도, 젠(禪)과 함께 중요 브랜드로 자리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자포니즘의 형성과 확산을 염두에 두고 다시 모네의 작품세계에 주목하게 되면 그의 작품세계 형성과 전개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큰 자극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보이는 풍경이나 인물, 동물 등 대상을 평면적으로 배치하는 방식과 근경을 클로즈업한 화면구성은 우키요에의 영향을 잘 드러내준다. 일본에 대한 그의 동경은 정원을 꾸며 무지개다리를 만들고, 일본산 연꽃 씨앗을 구해다 심는 열의로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모네 작품세계의 모든 것이 자포니즘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인상파시대를 넘어 빛과 공기의 문제를 천착해간 1870년대 후반 이후 작품들과 추상화단계로나아간 지베르니 시대의 <수련>연작에서는 소재 외에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인상’으로, 일본화가들의 우키요에 작품을 ‘이미지’로 구별하기도 한다. 일본화가들의 그림에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 더해 관념이 개입되고 하나하나의 모티프를 그릴 때에도 면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는 판화의 특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시에서 느껴지는 아쉬움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생각은 관객들이 좀더 까다로와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 상품을 대하는 소비자의 판단도 필요하다. 보험평가액이 얼마인지가 가장 중요한 화제가 될 정도로 대규모 예산을 들인 블록버스터전시들이 늘어가고, 그만큼 입장료도 비싼 점을 고려하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전시였는지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비싼 입장료도 그렇지만, 또 한 가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점은 모네전이 공공미술관의 기획전시라는 사실이다. 국가 혹은 지자체의 세금이 재정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공공미술관의 경우 문화적 향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납세자에게 그 혜택을 돌려준다는 인식이 여전히 유효하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 달려드는 사업가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데 납세자들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충분한 조사연구와 전시연출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는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전시의 의미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좀더 엄격한 준비과정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