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정명(正名), 유엔독자가입, 대륙의 전쟁불사 위협……. 긴장된 정치적 전류 속에서도 양안 신세대들의 문화적 공감대는 거침없이 확산 중이다. 타이완대학 외국어과 졸업, 스탠포드대학MBA, 인기 TV프로그램 진행자,1 MTV 타이완지부CEO. 화려한 배경의 주인공 왕 원화(王文華)는 명실공히 양안삼지(兩岸三地)대륙, 타이완, 홍콩 최고의 스타작가다. 그의 출세작 『단백질소녀(蛋白質女孩)』(2001)는 대륙 입성2 석달 만에 3쇄를 찍고 판매부수 20만을 기록, 2년 뒤 100만 부를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뿐 아니다. 2002년에는 인기 감독 빠오 푸밍(包福明)에 의해 TV드라마로 각색되었고 2005년 상하이연극예술센터(上海話劇藝術中心)에서 연극으로 상연되는 등, 타이완제 ‘단백질’은 대륙 신세대의 신감각 영양식품으로 꾸준히 환영받았던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2004년에 나온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는 발간 1주일 만에 상하이 찐스탕(金石堂)3 베스트셀러 4위를 기록했다. 1980년대 떵 리쥔(鄧麗君),     야오(瓊瑤)의 뒤를 이어, 왕 원화는 대륙에서 성공한 타이완스타의 계보를 이은 것이다.

『단백질소녀』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대도시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다. 2004년에 일본어판, 2006년에 한국어판이 나왔고 거기에 홍콩 영화감독 왕 자웨이(王家衛)가 양 차오웨이(梁朝偉), 송혜교(혹은 전지현)를 주인공으로 영화화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타이베이, 베이징, 상하이, 도쿄, 서울 등 동아시아의 보편적 도시감수성’이라는 수식까지 덧붙여졌다. 그런데 이런 찬사는 좀 과해 보인다. 일본에서 별다른 반향을 못 일으켰고, 한국에서도 ‘단백질소녀’라는 별명을 가진 연예인의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긴 했지만 정작 판매실적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타이베이의 중산층 남녀 4인의 도발적인 연애관과 섹스라이프는 이미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열기를 거친 아시아 독자들에게 새롭지 않을 뿐더러, 아무리 글로벌시대가 도래했다 한들 맨하탄의 ‘도시 속 고독’이 아시아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는 설정에 쉽게 공감가지 않는 것도 그렇다.

유독 중국대륙에서 ‘단백질’ 열풍이 요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을 전후로 ‘포스트80’세대가 작가·독자군으로 문단에 대거 등장한 상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는 1980년대에 출생한 작가군의 별칭이었던 ‘포스트80’은 점차 그 세대를 특징짓는 용어로 확대되었다. 문혁이라는 좌편향의 극단에서 시장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극단으로 가파르게 선회했던 1980년대에 태어난 ‘포스트80’세대는 중국사회의 거대한 간극이 낳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개혁개방의 첫 수혜자인 부모 밑에서 ‘샤오황띠(小皇帝)’로 자랐다. 태어났을 때 이미 집에 칼라TV가 있었고 의무교육보급률 91.8%의 사회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중국청년보>가 소호뉴스센터, SINA여성채널과 공동으로 진행한 네티즌여론조사에서 ‘포스트80’세대의 특징으로 ‘영원한 자기중심주의’,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 ‘자기능력의 과대평가’ 등이 상위로 집계되었다.4 이런 특징들이 이들의 글쓰기·독서 경향으로 이어지는데, 1990년대 후반 문단에 부상한 ‘청춘문학(靑春文學)’은 이들 세대의 ‘신개념 글쓰기’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청춘문학’의 개념과 범주가 명확하게 확정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동문학, 소년문학, 캠퍼스문학, 성인문학 들에서 양분을 흡수하여 독자적 영역을 형성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주된 작가·독자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다시 말해 ‘포스트80’세대다. 여기에 일부 아동작가와 성인작가가 합류하여 영역을 확장하는 형세다.5 이들이 정전으로 삼는 작품들을 보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하루키(村上春樹)의 『상실의 시대』, 샐린저(J. 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이즈의 무희』 등 다종다양하지만, 혼돈과 고독 속에서 길찾기를 하는 어린 자아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성장소설의 일종인 셈이다. 그런데 ‘청춘문학’ 주인공들의 ‘성장이야기’는 정전급 작품의 그것과는 다르다. 화려하고 경쾌한 언어로 펼쳐지는 캠퍼스와 도시번화가 남녀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에 간간이 수식처럼 가미된 우울과 고독은 좀처럼 존재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신세대작가들은 더 이상 숭고한 문학을 추구하지 않는다. 탄탄한 문학적 기초, 진지한 창작태도, 작가의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이 약점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자들의 열띤 환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왕 원화가 그렇듯, 어느새 글을 쓴다는 혹은 읽는다는 것은 커피를 마시고 바에서 수다를 떠는 행위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왕 원화의 ‘단백질’은 이같은 중국판 신개념 성장소설의 붐 속에서 빠르게 섭취되었다. 세계로부터 소외된 개인이 고통과 좌절을 거쳐 세계와의 화해에 이르는 도정을 그린 것이 근대 성장소설이라 할 때, 80년대 이후 중국사회에 태어난 ‘개인’들은 그 화해를 너무 쉽고 가볍게 이룬 듯하다. 『단백질소녀』가 중국에서 누린 호황의 근저에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길을 고통없이 그려내는 가벼운 화해방식이 있다. 이른바 ‘동시대적 감수성’이 그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라난 세대의 도시감수성이 국경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시대감수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후기』에서 왕 원화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씀으로써 우리 모두가 “동세대인”임을 확인하려 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인물의 성격(character)보다는 ‘브랜드’를 매개로 한 ‘나’와의 호환가능성 속에서 구현된다. 단백질소녀, 조미료미녀, 안나수이, 사투리녀, CSR(Customer Service Rep.), 마이애미의 차가움, 나쁜 여자……. 고유의 이름이 없는 2000년대 타이베이의 여성들은 학력이나 직업, 애용하는 화장품과 핸드백, 섹스스타일에 의해 유형화되며, 중국 독자들은 그 유형 속에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나 역시 이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시대공감’을 불러낸다. 그러나 사실 이런 유형상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대도시 중산층’이라는 텅 빈 기호의 수천 개의 얼굴이다. 그들의 발칙한 대화들은, 한편으로는 “엿먹어라”며 중산층의 심리와 행태를 비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스스로가 중산층임에 안도하거나 혹은 “몸값을 올려” 우아한 중산층이 되기를 욕망하는, ‘동시대인’의 자화상을 독자와 함께 구성해간다. 

어쩌면 ‘포스트80’들에게 화해할 세계는 너무 거대해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격동의 시대를 지나 상대적 안정기에 태어난 이들은, 자유와 개성을 멋대로 구가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꿈을 버리고 하루빨리 돈 모아 집 사라는, 다시 말해 중산층이 되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짓눌려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중산층이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세계인(‘동시대인’)의 표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개인과 사회의 고리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성장’이 ‘동시대성’ 즉 글로벌한 세계와의 가벼운 화해로 미끄러지는 이 흐름이 비단 중국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단의 세대교체에 담긴 문화논리를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읽어내는 혜안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