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금년 중국문화계에 흥미롭고 놀랄 만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사건 하나. 2006년 8월 21일 베이징의 가장 큰 서점 시단투슈따샤(西單圖書大厦)에서의 일이다. 한국의 교보문고에 해당하는 이 대형서점 앞에는 새벽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오후 3시부터 거행되는 한 사람의 사인회에 참석하려고 줄서기경쟁을 했고 경찰차 15대와 50여 명의 경찰이 출동하여 질서를 잡고 있었다. 이 날 사인회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NBA에서 활약하는 야오 밍(姚明)이나 중국 최고의 여배우 장 즈이(章子怡) 같은 빅스타를 연상하면 큰 오산. 어린 아이부터 90세 노인까지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 사람은 불과 얼마 전까지 중국학술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중톈(易中天)이라는 지방대학의 한 교수였다. 3시부터 시작된 이 날 사인회에서는 이 교수의 저서 『삼국지강의(品三國)』가 3초에 한 권씩,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천 권이 동이 났고 밀려드는 팬들 때문에 예정된 행사는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사건 둘. 방금 이야기한 ‘2006년 중국의 문화인물’이자 ‘2006년 중국 최고의 문화콘텐츠’ 이 중톈과 관련된 일이다. 2006년 5월 22일 중국국제TV공사가 주관한 도서출판권 경매현장. 유명한 중국 출판사 11곳이 참가한 이 날 행사는 책 한 권의 출판권을 놓고 치열한 입찰경쟁을 치렀는데, 막판에 초판인쇄 55만 권, 인세 14%를 제시한 상하이원이출판사(上海文藝出版社)가 판권을 따냄으로써 중국출판계를 경악시켰다. 이런 ‘인쇄신화’를 만들어낸 책은 바로 샤먼(厦門)대학 중문과 이 중톈 교수가 방송원고를 바탕으로 펴낸 『삼국지강의(品三國)』였다. 이 중톈의 책은 빼어난 말솜씨와 독특한 관점으로 기존의 삼국지 이야기를 완전히 재해석한 것으로 지난 1년 간 200만 권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 중국출판계에 따르면 불법 짝퉁 서적만 100만 권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 금년 3월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중국갑부 순위에는 연수입 약 8억 원(런민삐 660만 위앤)을 올린 그의 이름이 47위에 올라 뭇 중국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월급 30만 원(런민삐 2,500위앤)도 되지 않는 중국 대학교수들의 심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건 셋. 이 중톈의 베스트셀러 신기록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금년 3월 중국 출판사상 최초로 무려 100만 부의 초판을 찍은 책이 등장한 것이다. 화제의 서적은 이 교수와 똑같이 <바이쟈쟝탄(百家講壇)>이란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논어 강의로 일약 스타가 된 베이징사범대학 여교수 위 단(于丹)의 『장자심득(莊子心得)』이다. 현재 위 단은 이 중톈의 인기를 훨씬 능가하면서 놀라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위 단을 스타교수로 만들어 준 책은 『장자심득』에 앞서 출판된 『논어심득(論語心得)』인데, 일상생활 속 사소한 사례를 들어 난해한 공자사상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한 이 책은 작년 11월 초판만 60만 부를 찍었고 지금까지 2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대히트상품이 되었으며 <포브스>의 2007년 중국갑부 순위에 위 단의 이름을 98위로 올리는 등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 가지 이목을 끄는 점은 『논어심득』이 중국출판계에서 가장 명망있는 학술서적 전문출판사로 100년의 역사를 지닌 중화수쥐(中華書局)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이다. 중화수쥐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원전 위주의 순수학술서적만을 펴냈던 이 출판사에서 그동안 가장 많이 팔린 것은 30년 동안 총 200만 부가 나간 『중국근대사』란 책이었는데, 이번에 위 단 교수가 『논어심득』으로 불과 석달 만에 2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려 30년 기록을 순식간에 갈아치우며 대박을 안겨주었고, 시장 점유율 141위의 출판사를 단번에 6위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사건 넷. 2007년 4월 15일 베이징대학 100주년기념관에 수십 명의 기자가 몰려든 가운데 중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출판기념회가 개최되었다. 중국의 한 출판사가 주최하고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의 저명 교수가 참석한 행사장에는 ‘박사 10인 위단현상비판 기자회견’ ‘해독위단(解毒于丹), 공자와 장자를 능욕하지 말라’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어 이 날 어떤 내용의 발표가 진행될지를 짐작케 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최근 위 단 비판성명을 인터넷에 올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비판서까지 집필한 박사 10인을 대표하여 중산(中山)대학 쉬 진루(徐晉如)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마이크를 잡자 위 단이 시청자를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자의적이고 근거없는 방송강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고, 베이징대학의 리 쩐(李眞) 역시 쉬 진루의 비판에 동조하면서 위 단의 방송강의는 철저한 학술적 검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베이징 정반대편에 있는 쓰촨(四川)성 충칭(重慶)에서는 또 다른 박사 10인이 위 단을 옹호하는 인터넷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위 단의 방송강의는 쇠락해가는 전통문화를 부활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고, 설령 강의내용에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방송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시청자와 독자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비판자들을 강력히 성토했다. 요즘 중국 구글 창에 ‘위 단 현상’을 치고 검색하면 무려 257만여 개의 기사가 올라올 만큼 중국의 ‘여자 도올’ 위 단은 최고의 화제거리다.

최근 중국대륙에서 불고 있는 고전열풍의 진앙지는 <바이쟈쟝탄>이라는 중국교육방송(CCTV10)의 대중학술강좌 프로그램이다. 2001년 7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초기에는 시청률이 지극히 저조하여 방송개편 때면 늘 폐지대상 1순위에 오를 만큼 별볼일없었지만, 지금은 스타교수와 베스트셀러를 연속 배출하고 중국 전역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전읽기 바람을 일으키면서 ‘마이더스의 손(Hand of Midas)’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6년 간 이 교양프로는 다양한 고전명작을 소개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학자를 초빙하여 전통문화의 확산과 학술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점은 이 프로를 통해 어마어마한 부수의 판매량을 올리면서 스타 탄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은 정작 무명 인사요 비전문가라는 사실이다. 삼국지 강의로 빅스타가 된 이 중톈은 원래 삼국지와는 무관한 문예이론 전공자였고, 이 중톈의 뒤를 이어 논어 강의와 장자강의로 스타덤에 오른 위 단 역시 영화학을 전공한 비전문가였다. 비전문가라 하여 명강의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전문가는 기존 권위와 학설에 구애받지 않고 독창적이고 신선한 견해를 펼칠 수도 있을 터이니, 이 중톈과 위 단에게는 분명 그러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실체일까? 1~2년 후 지금의 ‘이 중톈·위 단 열기’는 ‘신인문학시대의 도래’를 알린 것이 아니라 방송매체가 만들어낸 스타교수의 반짝 명품이요 문화거품에 불과했음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지나친 폄훼일까?

한편 최근의 ‘고전 붐’에 대해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소위 사회주의체제 중국이 돈과 빽(중국어로는 ‘關係’)과 학력 없이는 좀처럼 성공하기 어려운 불평등사회가 되어가면서 커다란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는 중국인들이 교회를 찾아가 성경에 의지하는 대신 고전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이징의 한 문화평론가는 “위 단의 폭발적인 인기는 중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정신적 위기와 연관이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돈만 알고 정신적으로는 깊은 공허 상태에 처해있는데 위 단이 공자와 장자를 손에 들고 나타나 중국식 구원의 길을 제시했다”고 진단했다. 과연 종교 없는 중국에서 고전이 성경을 대체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